무작정 걷던 그 길을 되돌아갈 용기, 사랑일까?
무작정 걷고 있는 한 남자로 영화는 시작한다. 손에는 물통이 있지만 이미 물이 다 떨어진 듯하다. 목이 마른 남자는 한 가게로 들어가 얼음을 집어 먹다가 결국 쓰러져버린다. 이 남자는 어디로 가는 길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영화가 시작된다. 처음 펼쳐지는 풍경은 넓은 사막이다. 짐작하건대 텍사스인 것 같다. 제목처럼 텍사스에서 파리까지 걸어가는 길일까, 그런 생각도 스쳤다.
영화 <파리, 텍사스>를 보았다. 빔 벤더스의 작품이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처음 썼던 글이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썼던 글이었다. 그 기억이 떠올라 이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관람하게 되었다.
무작정 걷던 남자는 결국 병원에 가게 되고, 그의 동생이 LA에서 텍사스까지 와 그를 데리러 간다. 그 남자의 이름은 트래비스. 그는 4년 동안 실종 상태였다. 트래비스는 동생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마치 말을 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도 동생은 트래비스를 데리고 LA로 향한다.
LA에는 트래비스의 친아들 헌터가 살고 있었다. 4년 전 트래비스가 떠나면서 헌터는 그의 동생 집에 맡겨졌던 것이다. 트래비스는 왜 떠났을까. 그 질문의 답은 영화의 끝에 가서야 드러난다. 그전까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그저 어렴풋이 느낄 뿐이다.
나도 무작정 걸어본 적이 있다. 정말 무작정 걸었다.
거의 모든 연락을 끊은 채로 40일 정도,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난 적이 있다. 사실 나도 왜 떠났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아마 또 떠났을 것이다.
그때 내가 내디뎠던 무작정의 걸음은 기이한 행동이었지만 동시에 필연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나는 온전하지 않았고,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 그야말로 텅 빈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내 마음속에서 흔들리던 것들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영화에서도 ‘empty’라는 단어가 꽤 나왔던 것 같다. 아니면 내가 그 단어에 유독 크게 반응했는지도 모르겠다.
트래비스를 보면서 2년 전의 내 모습이 많이 겹쳐 보였다.
트래비스는 LA에 도착한 뒤 동생의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된다. 그리고 그의 아들 헌터와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가 왜 헌터를 떠났는지는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트래비스가 헌터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뒤틀렸던 관계를 다시 복구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 트래비스는 아주 먼 길을 돌아왔다.
그가 잠적했던 4년이라는 시간은 트래비스의 인생에서는 짧을 수도 있다. 하지만 헌터에게 그 시간은 거의 ‘반평생’에 가까운 시간이다. 트래비스가 다시 다가가야 할 거리는 너무 멀어져 버린 것이다.
그래도 트래비스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헌터에게 다가가려 한다.
많은 영화와 문학 작품에서 주인공은 떠난다. 대개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작정 떠난다.
자유를 향한 갈망일 수도 있고, 무언가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일 수도 있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그들은 어려움을 겪은 뒤 여행, 즉 이탈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나 역시 항상 ‘쉬어가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한 번도 쉬어본 적 없는 사람은 멈추고 쉬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틈도 없이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현실로부터의 이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다음 이야기를 한다. 여행 혹은 도망 그 이후의 이야기.
그리고 결국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떠났던 여행에 대해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왜 떠났는지, 어디를 다녔는지, 어떤 길을 걸었는지.
하지만 단 한 번도 복귀에 대해 묻는 사람은 없었다. 나 역시 삶으로 돌아오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완전히 돌아오지는 못한 것 같다. 무작정 떠나면서 끊어져 버린 인연들도 있다. 연락을 남기지 못한 채 떠났고, 돌아온 뒤에도 다시 연락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완전한 ‘복귀’를 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나는 삶의 궤도를 틀어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만 집중했다. 나에게는 그들을 다시 마주할 용기가 부족했던 것 같다.
트래비스는 달랐다.
그는 헌터가 그의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준다. 트래비스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돌아온 것이 아니다. 자신이 망쳐놓은 것들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자, 그는 조용히 떠난다.
마지막 장면에서 헌터는 그의 엄마를 꽉 안아준다. 그 장면을 멀리서 바라보는 트래비스의 모습이 나오고 그는 다시 떠나며 영화가 끝난다.
헌터의 순수함은 어쩌면 어른들이 잃어버린 용기를 대신 메워주는 것처럼 보였다.
힘든 순간이 오면 누구나 떠나고 싶어진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는 용기도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다시 돌아와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줄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