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그리고 둘

영화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까?

by 진민

영화는 참 이상한 매체다. 하나의 장면에 카메라는 여러 각도로 존재한다. 한 사건, 한 인물을 앞에서도 보고 옆에서도 보고, 위에서도 보고, 때로는 훔쳐보듯 바라본다. 우리가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뒷면까지, 영화는 아무렇지 않게 보여준다. 수많은 각도로 완성되는 하나의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아름답다.


그런데 현실에서 우리는 늘 앞면만 본다. 내가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사건과 사물의 앞면이다. 내가 뒤로 돌아가도, 그 뒷면은 결국 또 다른 앞면일 뿐이다. 진짜 뒷면은 결국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상상한다. 눈앞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대로 채운 상상이 합쳐질 때, 우리는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우리는 늘 반쪽짜리 세계를 보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 그리고 둘〉을 다시 보았다. 이 영화는 내가 10년 전에 봤던 영화다. 아마 그때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봤을 것이다. 왓챠피디아에는 이 영화가 1.5점으로 남아 있다. 솔직히 왜 그렇게 낮게 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의 나는 이 영화를 정말 지루하게 봤을 것 같다.


오늘 극장에서 다시 이 영화를 봤다. 여전히 지루하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드라마틱한 장면도 거의 없다. 그냥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이어질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지루함 너머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이 영화의 앞면만 봤다면, 지금은 그들의 뒷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말하지 않는 감정들, 정리되지 않은 우울함, 애써 외면하는 표정들. 영화를 보면서 문득 10년 뒤 다시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또 무엇이 보이게 될까. 지금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뒷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아이들은 항상 행복해야 한다”라는 문장을 좋아한다. 행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적어도 웃고 있어야 한다고, 막연하게 믿어왔다. 그런데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마도 점점 더 많은 것을 보게 되는 일인 것 같다. 보이지 않던 뒷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상상으로만 채워두었던 세계의 어두운 면들이, 실제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그 순간부터, 세상은 더 이상 마냥 아름답지 않다. 대신 우울이라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아이들은 아마도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사실로 믿었기 때문에 행복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뒷면은 상상으로 채우고, 그 상상은 대부분 따뜻했을 것이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행복에서 멀어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마냥 아름다운 상상을 하던 시절에서 벗어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경험과 상처들은 세계의 뒷면을 점점 더 구체적이고, 차갑고, 현실적인 형태로 바꿔놓는다.


그래서 문학과 예술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상상력을 키운다는 것, 시야를 넓힌다는 것은 결국 “뒷면에는 무엇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더 많은 답을 갖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답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지기보다는 오히려 슬픔과 우울에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 더 많은 세계를 보게 되지만, 동시에 더 많은 무게를 감당하게 된다.




그래서 묻게 된다.

영화는 우리를 과연 행복하게 해줄까?


나는 우리가 우울과 함께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점점 더 우울해진다는 것이고, 동시에 그 우울에 무뎌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무뎌진다는 것은 나아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견디는 법을 배운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참으로 아름답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여러 각도에서 비춰준다. 각각의 각도는 각자의 언어를 갖고 있다. 어떤 각도는 끝내 보여주지 않기도 한다. 그 부분은 관객의 상상력에 맡겨진다. 영화는 우리에게 수많은 상상을 경험하게 한다. 그것이 비현실적이든, 지나치게 현실적이든, 우리는 더 많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더 많은 불행과 가까워진다. 어쩌면 우리는 결코 완전히 행복해질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감정들 사이에서 우리는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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