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우주는 눈앞에 존재하지만, 우리의 눈 뒤에서 펼쳐진다.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거대한 우주 속에서 티끌만 한 존재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공간과 수많은 별들이 있고, 그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광활한 우주는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우리는 각자의 마음속에서 서로 다른 우주를 만들어가며 살아간다.
어쩌면 우주와 세상은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 뒤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경이로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영화 〈척의 일생〉을 보았다.
이 영화를 보며 제목이 가지는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색, 계〉처럼 제목만으로 영화의 문을 열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다.
그래서 제목은 언제나 영화의 첫 관문이자, 관객을 초대하는 얼굴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척의 일생〉이라는 제목은 처음엔 전혀 끌리지 않았다.
너무나 담담하고, 어쩌면 지루해 보이는 제목이었다.
그럼에도 포스터에 적힌 “당신이라는 우주, 당신이라는 세계”
라는 문장이 마음에 남았고, 그 문장에 이끌려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이보다 더 직관적이고 정확한 제목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척의 일생’ 그 자체다. 특별한 사건도, 극적인 영웅담도 없다.
하지만 그의 삶은 이상하게도 깊은 위로로 다가온다.
영화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야기는 3부에서 시작해 거꾸로 흘러간다.
3부에서는 세상의 멸망이 그려진다. 사람들은 좌절하기보다, 다가오는 끝을 받아들이는 듯 보인다.
그리고 그 위에 기이한 광고가 반복된다. “찰스 크란츠, 39년의 위대한 해! 고마워요 척!”
광고 속 인물인 찰스 크란츠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이 알 수 없는 감사와 세계의 붕괴가 겹쳐지며,
3부는 마치 호러 영화를 보는 듯한 불안한 감각을 남긴다.
2부에서는 시간이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 이제 찰스 크란츠가 등장한다.
그는 길을 걷다 우연히 들려온 드럼 버스킹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춘다.
방금 연인과 이별한 제니스라는 여성과 함께, 잠시나마 세상과 분리된 듯한 거리 공연을 만들어낸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리듬에 이끌려 움직인다. 그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생기 있고 자유롭다.
영화를 보는 나 역시 그 순간만큼은 가장 흥겨웠다. 굉장히 미국적인 장면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이 살아 있다는 감각이 가장 순수하게 드러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1부에서는 찰스의 어린 시절이 펼쳐진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비로소 하나의 정체성을 완성한다.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그의 삶이 어떤 세계를 품고 있었는지가 서서히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세상은 멸망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멸망하는 세상이란, 결국 ‘척의 일생’이다.
이 영화의 세계는 척의 세계이고, 그의 삶이 끝나는 순간 그 세계 또한 끝을 맞는다.
영화 속에서 척의 담임선생님은 월트 휘트먼의 시를 낭송한다.
I am large, I contain multitudes.
“나는 거대하며, 수많은 것을 품고 있다.”
척이 이 구절에 대해 질문하자, 담임선생님은 척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며 말한다.
“이 손안에 뭐가 있지?”
그 장면은 세상이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세상은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칼 세이건의 우주 달력에 따르면,
우주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존재는 거의 의미 없는 찰나에 가깝다.
우주는 너무나 광활하고, 인간은 너무나 작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본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저 광활한 우주는 분명 존재하지만,
동시에 나의 눈 뒤, 나의 생각 속에서 펼쳐지고 있다.
만약 내가 더 이상 세상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우주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경이로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각자의 머릿속에서 자신만의 우주를 펼쳐가며 살아가는 존재.
머릿속에 우주는 눈앞의 세계보다 더 크고, 더 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거대한 우주를 품고 있는 나는,
또 얼마나 놀라운 존재일까.
연말에 보기 좋은 영화이다. 좋은 끝은 좋은 시작을 불러온다고 믿는다.
나 자신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며 올 한 해을 마무리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행복한 시작을 불러올 것이라고 막연히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