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할 나위 없이 친한 친구" 난 없다. 아니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야 왜 절친이 없었겠냐? 국민학교 시절에도, 중학교 시절에도,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대학교 시절에도 늘 절친이 있었다. 이것저것 얘기하며 웃고 울며, 틈만 나면 만나고, 얘기했던 절친들 말이다. "할 얘기를 다 못했으니 이따 다시 전화하자." 항상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다. 그런데 그 절친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 학교가 달라지면서, 일하는 지역이 달라지면서, 결혼하여 사는 곳이 달라지면서, 아이들 낳는 순서가 서로 달라서...
"..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 간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나의 절친들을 생각한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나의 절친들은 한 명 한 명씩 떠나갔다.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자책하며 외로워했다. 평상시 연락을 먼저 즐기는 성격이 되지 못하는 나의 성격이, 잘 챙기지 못하는 나의 성격이 나의 절친들을 내게서 떠나보낸 것이 아닌가 하고 나를 나무라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속상하며 서운하기도 했다. 내가 그리워하며 생각하는 나의 절친들에게 나는 절친이 아니었나? 그들은 왜 내게 연락을 하지 않는 거지? 절친을 챙기지 못해 그들을 떠나보냈다고 나 스스로를 나무라면서 가끔 먼저 연락을 했을 때 그들은 기뻐하는데, 그 기쁨이 거짓이었나? 그들은 내가 보고 싶고, 그립지가 않았던 걸까? 날 찾거나 생각하지 않은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 때면 그들과의 연락이 기뻐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는 즐거움과 작은 소속감에 만족도 했으나 이내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이런 죄책감과 슬픔이 즐거움보다 더 큰 탓인지, 나는 서서히 절친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절친이라고 생각해도 그 사람은 아닐 수 있고, 그러면 나는 분명 마음의 상처를 입을 테니까. 그렇다고 내가 널 특별히 더 생각하니 당신도 나를 그렇게 여겨달라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게 나도 얕은 관계에 익숙해져 갔다. 내가 회사 생활을 할 때도 그랬고, 아이 엄마가 되어 아이의 친구 엄마들을 만나 친해질 때에도 그랬다. 얕은 만남과 겉 보이기 식 대화에 만족하며 살아야만 했다. 늘 공허하고 불안감이 있었다.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 불안감! 정확히는 내 인생에 절친이 없다는 불안감이었다.
그러다 '코로나 시대'라는 것이 다가왔다. 핑계대기 쉬웠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보고 싶은데.. 어쩌니? 코로나라 만날 수도 없고. 이것 좀 잠잠해지면 보자." 참 그럴듯한 핑계였다. 누구나 인정해주는 핑계였으니 말이다. 얕지만 1년에 한두 번, 혹은 한 달에 1~2번 만났던 모임조차 사라졌다. 사람과의 만남이 끊기게 된 것이다. 이래도 되나? 나는 절친도 없는데 이런 만남까지 없어져 버리면 어떻게 하지? 그럼 난 외로움에 죽을지도 모르는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는데, 난 이제 사회적 고립까지 당해야 하나? 게다가 난 전업 주부이다. 만남이 없으면 굳이 집 밖에 나갈 이유가 없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러다 주변에서 누가 누구를 만났다, 라는 얘기가 들리면 다시 느껴지는 소외감에 밤새 괴로워했다. '그래도 나는 자기를 절친 가깝게 생각했는데, 나보다는 00 이가 더 가까웠구먼.'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나의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되묻게 되고 결론은 사회적 부적응자가 된다. 내 생각 속에서 말이다. 절친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외롭고, 그리고 슬프며, 무능력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별 스타에서 친구들과의 술 한 잔 하는 피드라도 올라온 것을 볼 때면 어김없이 작아지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절친.. 갖고 싶다. 나도 누군가의 절친이고 싶다. 나이 마흔이 넘은 이 시점에서도 나는 10대 소녀처럼 절친, 내게만 소속되는 친구들을 기다라고 있다. 그러다 문득 내 공간을 보게 되었다. 내 공간 안에 머물러 있고, 내게 웃어주고, 나랑 얘기하고 싶어 졸졸졸 따라다니는 내 가족들이 보였다. 난 그들에게 재잘재잘 얘기를 한다. 읽었던 책 내용이며, 내 꿈이며, 오늘 장 본 내용이며, 물가가 어떻느니, 딸기 값이 너무 비싸졌느니, 할머니가 어쨌느니... 뭐야! 내가 절친들에게 하는 수다들 아냐? 그리고 난 내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모든 걸 편안할 수 있도록 맞춰준다. 그들 역시 나에게 그렇게 한다. 남편을 비롯해서 나의 아이들까지. 우리는 우리끼리 있을 때 가장 편한 사람들이다.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도 함께 있고 싶어 하고, 맛있는 것을 보면 가장 먼저 생각나고 보고 싶고,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가장 궁금하고 얘기 듣고 싶고, 얘기하고 싶은 사람들. 그러면서 애써 서로에게 맞추지 않아도 되는 너무나도 편안하고 좋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나의 절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남편과 내 아이들.. 서로에게 가장 맞춤인 이 사람들과 나는 오늘부터 절친, 깐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