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전업맘, 익어 가는 시간을 기다린다.

수줍은 꿈에 대하여

by 골드가든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참 쑥스럽다. '대단치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느 집에서나 볼 법한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정말 재미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것을 글로 쓴다는 것은 더 재미없는 일이다. 특별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전에 읽었던 어느 책에서


<<한비야처럼 다른 사람과는 다른 삶을 살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은 흔히 경험하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으며 살았던 이야기나, 사업이 망해도 아주 크게 망했다가 재기에 성공을 했거나, 아니면 이미 아주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글로 써질 때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는 글을 쓰면 안되는 사람이다. 난 모험을 싫어하는 사람이어서 지금 내 삶은 아주 작은 시골의 보건소 의료 공무원의 삶보다 더 나른하고, 특별히 아프지도 않으며, 사업을 해보지 않았으며 그러니 크게 망해 본 적도 없다. 그리고 나는 이름 모를 들꽃, 들풀 같은 존재여서 유명과는 거리가 멀다. 대한민국 인천 어딘가에서 평범한 주부로 점처럼 살고 있는 사람. 그게 '나'다.




그런 내가 꿈을 갖게 되었다. 글을 쓰는 꿈을... 그리고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글 쓰기를 가르쳐 주는 강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말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이뤄질 수 없는, 안되는 꿈이다. 그냥 개인 일기장에 끄적거리기만 하지 뭘 또 책을 내겠다고 하는 것인지... 꿈이라는 것도 될 법 한게 있고, 전혀 될 것 같지 않은 터무니없는 꿈이 있지 않은가? 내 꿈이 딱 그 터무니없는 꿈이다.

나도 내 분수를 아는 염치 정도는 있다. 그나마 눈치로 산 세월이 있어 내 분수를 알 수 있는 눈치라도 있으니 그래도 덜 밉상이다. 아직은 내 꿈을 남들에게 말하기가 부끄럽다. '허생전'의 장사꾼 이전의 허생처럼 만날 돈도 안되는 책을 읽고 있거나 글만 쓰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구세대라 "꿈 = 직업"으로 생각을 한다. 직업은 바로 돈을 버는 수단이다. 거꾸로 얘기를 하자면, 나는 돈을 벌고 있지 않기에 직업이 없는 상태이고, 그러므로 꿈도 이루지 못한 상태이다. 아직 영글지 못한 내 꿈, 아직은 수줍은 내 꿈.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내 꿈이다. 아직은 영글지 못하고 익지 않아서 살살 일렁이는 바람에도 떨어질 것 같은 아기 포도알 같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내 꿈의 시기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20대의 나는 다른 20대의 친구들처럼 공부를 하였고 늦은 취직을 하였다. 30대는 바보처럼 아이만 키웠다. 그리고 40대가 되니 이제서야 꿈을 생각해본다. 코로나 시국이 내게는 꿈을 가져다준 고마운 시기이다. 내 아이들과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내 꿈을 찾게 된 것이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내게 코로나로 인한 두려움과 답답함이 책을 찾아 읽게 했고, 그리고 남편에게 더이상 의존하면 안되겠다는 경각심을 갖게 했다. 그러니 난 꿈을 구체화 시키기 시작한지 2살이 되었다. 만으로는 1살하고 3개월이 지났다. 그러니 아직은 참 애송이이다. 나의 꿈은 이제 걸음마를 뗐으니 얼마나 어린가?

내가 닮고 싶은 작가가 있다. 실제로 뵙게 된다면 감사하다는 인사를 꼭 드리고 싶은 분들이다. 김은희 작가님과 박완서 작가님이시다 (박완서 작가님은 이제 뵐 수 없으니 더 그 분의 책을 붙잡고 만나는 수밖에는 없다.). 왜냐하면 그 분들은 40대에 작가로서의 자신들의 꿈을 이루셨고, 늦지 않았음을 실제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분들의 40대가 이제 작가에 발을 내딛는 아기 발걸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20대에도 30대에도 꾸준히 읽고 썼을 것이다. 그 시간들이 익어서 40대에 열매를 하나하나 맺으셨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한 모든 인물들도 초보 시절은 있었을 것이다. 모차르트를 비롯한 몇몇의 천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실수 투성이이고 그저 막막하게만 보이는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입 밖으로 내뱉기에는 참 부끄럽고 쑥쓰러운 꿈이 있었을 것이다. 박완서 작가님도, 김은희 작가님도 처음은 있었으리라. 그들도 그냥 전업맘이었을 때가 있었으리라.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보이지 않을만큼 작은 점처럼 남들과 다르지 않은 하루하루를 살았었던 때가 있었으리라.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처음을 시작했을까?




나는 생각이 많다. 생각이라기보다 걱정이 많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을 미리 땡겨와 걱정을 하기도 한다. 가장 많은 부분이 내 꿈에 대한 부분이다.

"여보, 정말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많더라. 어떻게 그렇게 잘 쓸까? 그리고 참 특별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 멋있어 보여. 그 사람들에 비하면 난 너무 평범해. 쓸 이야기가 재미있지 않을 것 같아. 너무 뻔한 얘기라서..."

"난 이제 시작했으니... 한 10년 걸리겠지? 내가 10년동안 꾸준히 쓸 수 있으련지..."

푸념이라도 하듯 남편에게 얘기를 한다. 얘기를 하면서도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믿음이 깔려 있는 듯 얘기를 한다. 그런데 얘기를 하면서도 난 안다. 실은 내가 너무 잘 해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난 너무 잘해내고 싶다. 그 욕심이 시간을 앞서니 걱정이 되고, 비교로 이어진 것이다.


시댁은 주택에 살고 있는데 그 집에는 옥상이 있다. 옥상에 포도나무 한 그루를 심어 키우고 계신다. 재작년 추위를 못이긴 포도 나무가 죽어 새롭게 들여온 새식구이다. 작년에는 몇 개의 열매를 맺더니 올해는 가지마다 송이송이 많이도 열렸다. 녹두처럼 작았던 포도송이가 가끔 가서 볼 때마다 조금씩 커서 제법 포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그 사이 시부모님은 포도가 익을 때 새들에게 공격 받지 않도록 종이로 곱게 싸주었다. 그리고는 물을 주며 기다리신다. 포도알이 더 커지기를, 그리고 그 초록색의 포도알이 보라색으로 익어가기를 말이다. 그게 순리인 줄 아신다. 그래서 더 빨리 익어서 커다랗고 달콤한 포도 송이가 되라고 재촉하지 않으신다. 그냥 기다리실 뿐이다. 저절로 시간이 포도를 익게해 주기를...


나는 왜 내 시간을 재촉하고 있을까? 내 남편이 재촉하는 것도 아니고, 친정 부모님이 재촉하는 것도 아니고, 내 어린 자식들이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난 왜 내게 빨리 익지 못하냐고, 왜 이것밖에 못쓰냐고 재촉하는 것일까? 내 마음에서 글을 쓰고 싶다는 뿌리를 내렸고,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조금씩 쓰면서 내게 영양분을 주고 있는데 말이다. 내 글쓰기 열매들이 조금씩 자라고 있는데, 나는 충분히 익을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있다. 비교를 하고, 나의 꾸준함을 의심하게 된다. 미리 지칠 나를 생각한다. 열매가 익으려면 여름의 햇빛을 충분히 받을 시간이 필요하고, 밥도 맛있게 먹으려면 쌀이 익고, 뜸을 들이는 시간까지 기다려줘야 하는데, 그게 세상의 이치인데 세상의 이치를 거슬러 살려고 하니 근심이 많아지는 것 같다.




내게 필요한 것은 수줍은 내 꿈을 수시로 꺼내 보지 않는 것이다. 가끔은 잠시 접어두고 물만 주고 살펴만 보아도 좋을 것이다. 김치찌개가 빨리 끓기를 바라며 수시로 뚜껑을 열었다 닫고, 열었다 닫게 되면 더 느리게 김치찌개가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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