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 엄마, 아싸에 감사합니다.

자발적 아싸에서 나다운 전업맘으로 독립.

by 골드가든

할 말도 없는데, 모이자고 하니까 가긴 가는데

영 불편해.


오늘은 그냥 좀 쉬고 싶기도 하고, 애들 오기 전에 청소 좀 해두고, 일도 좀 봐야 하는데

모이자는데 안 갈 수도 없고

마음이 좀 그렇네.

불편해.


겉치레식 만남이 좀 지치기는 해.

가면 늘 애들 얘기, 뭐 산 이야기, 어디 다녀온 이야기, 시댁 얘기뿐인데

어느 날은 내가 이런 얘기를 듣고 있어야 하나 싶기도 해.

그냥 집에서 쉴걸, 하고는 후회도 하게 되네.


내 사정이 있어서 못 가는 걸 이해 못 해주면서 만나자고 암묵적 강요를 할 때는

챙김을 받는다기 보다는 비자발적 참여를 하게 된다는 부담감이 더 크지.

불편해.


내게 말하는 주변 전업맘들의 하소연이다.




가끔 어느 드라마를 보다 보면 전업맘들이 굉장히 한가하고, 할 일 없는 사람들도 비치는 모습에 가슴이 아프다. 그거 아는가? 전업맘들의 스케줄이 어느 사업가의 스케줄만큼이나 빡빡하다는 것을. 모임의 종류와 목적이 다를 뿐, 횟수로만 따지면 전업맘들의 모임의 횟수는 상상 이상이다.

매일 아이들 등교를 시키고 나서는 간단하게 집 정리를 하고는 1차 모임을 간다. 간단한 커피 한 잔이거나, 혹은 브런치 카페에서 만나기도 한다. 어느 날에는 함께 장을 보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함께 점심을 먹기도 한다. 함께 운동을 하는 모임도 있다. 아침 산책을 같이 하거나, 골프 운동을 같이 하는 모임도 있다. 오전의 모임으로 끝인 줄 착각하지 말아라. 가끔은 가볍게 저녁에 만나 맥주 타임으로 2차 모임을 갖기도 한다.

이쯤까지만 보면 "전업맘들.. 참 팔자가 좋다"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다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먹거나, 운동을 하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수다를 떨거나>이니 말이다. 하지만 모르는 말씀! 어떻게든 어느 팀에 소속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다. 아이들의 학교, 학원 정보를 얻고자 하는 노력이며, 아이들이 좀 더 편하게 친구들을 만들어가게 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리고 엄마들의 이 친밀도를 통해서 나와 아이들의 학교 생활, 동네 생활을 편하게 하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때로는 전업맘들에게는 일과도 같은 것이다. 물론 직장 생활처럼 눈에 보이는 상하 관계가 있거나 직급을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이 안에도 좀 더 입김이 센 사람이 있고, 정보를 주고받는 상하 관계가 있다. 그리고 경제적 수준, 아이들 학업 성취 수준으로 알게 모르게 나눠지는 직급 같은 것이 존재한다. 엄마가 다른 엄마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면 아무래도 내 아이가 학교 주변에서(학교의 주변에는 전업맘들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며 그들의 존재감을 나타낸다.)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랄 가능성도 있게 된다. 하물며 남들 얻어먹는 아이스크림 하나, 우리 아이 혼자서 못 얻어먹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니 전업맘들의 모임이 결코 하찮은 모임이 아니다. 하지만 전업맘들은 이런 모임에 지친다. 전업맘으로서 육체로 집안일을 하는 것을 포함해서, 다른 집안일들을 챙기는 것, 아이들 간식 챙기기, 학원 챙기기, 숙제 봐주기 등 할 일이 태산이다. 게다가 엄마표 공부를 할 경우에는 일이 더욱 많아진다. 어디 이 뿐이겠는가? 독서도 신경 써야지, 체력 떨어질까 운동, 비타민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챙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업맘의 시간은 24시간이 아니다. 이런 와중에 이런 모임들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참으로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업무이다. 웃고 떠들 수 있는 시간이잖아?라고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이 모임들이 항상 에너지를 충전시킬 수 있는 모임이면 좋으련만 매번 그렇지는 않다. 가끔은 은연중 자식 간의 비교가 있기도 하고, 자신의 아이가 크게 잘못하지 않아도 사과시켜야 하는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와 속상함이 있기도 한다. 엄마들 사이에서도 비교는 늘 오고 간다. 시댁 비교, 남편 비교 등등의 비교 천지인 모임이다. 그러니 지치기도 한다.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아오기도 한다. 전업맘들은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벗어날 수가 없다. 이 끈이라도 잡고 있어야 고립되지 않으니까! 전업맘에게 고립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조선 시대의 최고의 형벌 중 유배와 같은 것이다. 전업맘들은 1인 기업이니 이런 만남을 일부러라도 갖지 않는다면 고립일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자의이든 타의이든 이런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전에 비하면 모임의 횟수가 많이 줄었다. 이전에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소개에 소개를 이어 만남을 가지려고 했었다. 그러면서 꽤 좋은 분들도 알게 되었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보물을 얻은 듯 기분이 좋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 역시 친구들이 생기고, 자신이 소속되는 그룹이 생기니 유치원 생활이 훨씬 즐거워졌다. 자신감도 얻어 가는 모임도 보였다. 집안일 좀 덜하면 어떤가?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그리고 내가 외롭지가 않았다. 양가 모두 떨어져 있는 외딴 도시에서 외롭지 않다는 것은, 그리고 사람 말벗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내가 급할 때 잠깐 내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그 든든함은 제2의 친정을 갖게 된 느낌이었다. 감사함에 "고맙다, 고맙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하지만 이런 모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억지로 웃어야 하고, 과하게 기분이 좋아져야 하는 모임도 있었다. 모임이 유익하지 않아도 모임 끝에는 "좋은 시간이었다."라고 메시지를 보내야 하는 모임도 있었다. 나의 가식이 어디까지일지, 걱정이 되는 모임에 마음 불편하기 시작했다. 나를 나로 보이지 못하는 모습이 점점 숨 막혀 왔다. 나보다 훨씬 나은 상황에 사는 사람의 푸념을 듣고 있기가 거북했고, 나보다 훨씬 시부모로부터 받은 것 많은 사람들이 시댁 욕을 할 때면 더더군다나 내 마음에서 그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비슷한 구석 하나라도 찾아내 공감하려고 애써도 안 되는 5분이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 같았다.

게다가 아이들이 커가면서는, 내 아이보다 훨씬 잘하는 아이를 둔 엄마의 은근슬쩍 자식 자랑과 원하지 않은 가르침, 지적질은 내 마음을 닫게 했다. 날을 세워 집에서 뭘 하는지 캐물으려는 질문들과, 내 아이가 상대적으로 못함을 두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모습은 내 마음을 떠나게 만들었다.


점점 지쳐갔다.

외롭지 않기 위해 붙잡았던 모임이 나와 내 아이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홀로 지쳐가는 내 모습을 인정하며 사회력이 떨어지는 루저 전업맘이 되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자발적 아싸가 되기로!




그런 의미로 나는 '코로나 시국'에 감사하다. 거절 못하는 내 성격에 정중하게 사양할 명분이 생겼고, 나다움을 찾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다운 전업맘'이 되기로 했다.


일단 내 아이들을 남들과 최대한 비교하지 않으며 키우기로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며 자라왔기 때문에 이게 마음먹은 대로 바로 고쳐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이를 나와 같이 타인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우쭐하며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내 아이를, 그것도 느린 아이인 내 아이를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하며 야단치며, 아이를 망가트리고 싶지 않았다. 모임이 줄어드니 다른 집 아이의 상황을 보지 않고, 내 아이만 바라보니 비교 횟수가 확실히 줄어들었다. 비교를 하며 아이를 주눅 들게 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른 집 아이와 맞춰 학원 스케줄을 맞추지 않고, 집 공부하는 아이들, 혼공 하는 아이들로 키우기로 했다. 예전에는 내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모임에서 어느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 내 아이도 소외되지 않기 위해 그 학원을 보냈다. 우리 집도 이런 학원 보낼 수 있는 경제력이 된다, 라는 것도 보여주고 싶은 허세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불편했었다. 이 얼마나 어리석었은 행동이었는지... 그런데 이제는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내 식으로 아이들을 집에서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한다. 좀 더 경제적으로 아이들을 키우기게 된 것이다. 나는 절약하는 것, 낭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데 딱 나답게 학원비 다이어트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나도 키우는 전업맘이 되기로 했다. 아이가 성장하듯 나 또한 성장시키기로 했다. 모임이 줄어드니 내가,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엄마들의 뒷말 때문에 날 성장시키는 것도 쉬쉬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독서하는 시간을 늘리고, 강의 듣는 시간을 확보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니 너무도 좋다. 아이들에게 본이 되는 엄마로 살 수 있는 시간을 나 스스로 만들 수 있으니 집안의 분위기도 달라진 것 같다. 이제 아이들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는 엄마 옆에 와서 본인의 공부를 한다.


마지막으로 터무니없지만 나다운 꿈을 꾸기로 했다. 모임을 나가다 보면 긍정적인 말보다는 부정적인 말들이 많이 오고 간다.

"에이, 우리 나이에 뭘 해요. 그냥 이렇게 애들 키우다 애들 다 크면 놀아야지."

"이제는 뭘 배우는 것도 귀찮아. 나이가 들었나. 힘들어.'

"아이 키우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거 하나 없는데 무슨 일을 해요. 식당일이나 해야 하나?"

"난 애들만 잘 됐으면 좋겠어. 나야 뭐..."

난 이런 말들을 듣고 오는 날이면 힘이 빠졌다. 그리고 말은 그냥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말은 살아 움직여서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생각 속에서 자란다. 나와 상관없는 것 같은 이 말들이 내 의식에서 꿈틀거리며 나를 자꾸 그런 멈추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모임이 줄어드니 책을 통해, 강의를 통해 긍정적인 말을 듣게 되면서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터무니없지만 '그냥 전업맘'이 아닌 '1인 기업의 전업맘'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루저 엄마 그리고 동네에서 아싸 엄마, 분명 외로운 일이다. 겉으로 보이는 시간 안에서는 시련이다. 동네에서 SR 엄마가 사라져 가는 것이니까. 하지만 시련을 기회로 바꾸어 보는 것도 참 값진 경험인 것 같다. 이런 시간들을 통해 나다운 전업맘, 1인 기업 전업맘으로 살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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