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의 마흔 중반의 도전, 말은 참 쉽다!

by 골드가든

예전에 가수 이적의 어머니, 박혜란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목"으로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신 박완서! 예전에 가수 이적의 어머니, 박혜란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목"으로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신 박완서 소설가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그들의 활동보다 나는 왜 그들의 나이와 그 동기에 가슴이 뛰었을까? 그들의 도전 동기와 도전에 대한 열정은 과연 쉬운 것이었을까? 그것을 몸으로 행하는 것은 과연 어려움이 없었을까? 과연 평탄했을까?


30이 되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난 자연스럽게 육아를 택했다. 너무도 내 아이가 소중했고, 그 아이가 준 "엄마"라는 타이틀이 너무도 과분해서 열심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가 온전히 나만 바라보고, 편하게 샤워하고 화장실에서 볼일도 못 보도록 나만 찾고, 나만 사랑해 주는 모습에 너무도 벅차서 한없이 아이 옆에 있고 싶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죽순처럼 아이의 하루하루가 너무도 신기했고, 예뻤다. 아이의 어린 시절의 많은 부분을 나 혼자 보고 있는 게 아까울 정도로 신이 났던 것 같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일하는 엄마들이 부러웠고, 아이와 함께 아이의 언어로만 이야기를 하는 나 자신이 작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말버릇처럼 "다시 일할 거야."를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독박육아, 그리고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두고 직장으로 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 마음이 일터의 발가락에라도 걸치고 싶은 마음에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도전해 보았었다.

집에서 아이들 공부를 봐주는 일, 학업 스케줄을 맞춰주는 일들.. 하지만 그것 역시 녹녹지 않았다. 나의 마음이 너무 우리 아이들과 남편의 평안에 맞춰져 있는 탓인지, 아니면 일을 지나치게 잘하고 싶은 내 욕심이 삶의 균형을 못 맞춘 탓인지 난 돈 100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벌면서 내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을 등한시했고, 여전히 홀로 집안일과 육아를 하게 하며, 한톨도 돕지 않는 남편에게 짜증이 늘어났다.


처음부터 맞벌이였으면, 맞벌이를 원하는 남편이었으면 좀 조율이 되었을까? 그렇게 나의 마흔의 첫 번째 도전은 실패로 끝났었다. 물론 그때의 개인적인 다른 고민들도 있기는 했었다. 미국에서 12년 만에 한국에 오는 동생네 가족을 극진히 보살피고,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고, 내 아이들을 방치하는 수준까지 내몰며 내 시간을 할애할 만큼 내가 받는 한 달 임금이 적절한가를 고민하다 그만두기를 결정한 것도 있었다. 어쨌거나 나의 돈 벌기 도전은 그렇게 1년도 못 채운 채 끝이 났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가정을 이루고 주부가 되면 도전이라는 것이 참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예전에는 나만 생각하고, 내 시간만 생각하고 일을 계획하고 할 수 있었지만, 주부의 도전은 그렇지가 못하다. 완전히 내가 이룬 내 가족을 내버려 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집안일을 나 몰라라, 하고 나만 생각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아이들을 방치하기 싫었다. 아이들도 잘 챙기고 싶고, 힘들게 하루 종일 일하다 온 내 남편에게도 적어도 불편함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가족만을 챙긴다고 나 자신을 방치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집에서만 10년 넘게 있으면 그전에 내가 가졌던 재능도 없어지는 법인가 보다. 사회로 복귀할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다. '과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집에서 밥하고, 청소하고, 아이들 돌보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 멍청이가 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꿈도 많고, 욕심도 많고, 호기로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이다.

그러던 내가 남편이 무심코 건넨 신문 하나로 공부를 다시 해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N잡러 회사원들의 삶에 대한 내용을 시작으로 보험설계사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어머~ 세상에 메인 직장도 있으면서 다른 일까지 겸업으로 하다니... 진짜 이들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난 그 기사에서 기자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초점을 넘어서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했다. '결국 사람을 키우는 것은 가정이 아니라, 밖이었네, 밖이었어!'

난 당장 보험설계사 준비를 일주일간 하여 시험을 보았고, 합격을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희열이었다. 그렇게 나는 40대의 따뜻한 봄을 느꼈다. 지독하게도 따뜻하고, 먼 우주에서 보내는 태양의 한 열선이 나만을 향해 비추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 더 어려운 시험에 도전해 보자. 공부를 해야, 없던 능력도 생기는 것이지.' 그렇게 나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친정엄마를 간병하며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토익 점수를 얻어보기로 결심했다. 영어를 놓은 지 20년도 넘은 터라 듣기는 젠병이고, 리딩은 까막눈이었다. 하지만 해보고 싶었다. 애도 둘이나 낳았고, 2년 넘게 밤잠 제대로 자본 적 없이 보낸 나인데 뭘 못할 게 있겠냐고 생각을 했다. 그렇다, 40대 아줌마의 도전은 무식하게 용감하다. 내 주제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물론 20대 청춘의 도전도 그리하다. 도전이란 말 자체가 주는 빛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도전의 시기에는 차이가 있다. 찬란하기만 한 20대의 도전에는 희망이 보이지만, 40대의 무식하고 용감한 도전에는 한계가 보인다. 노안이 와서 글은 어지럽게 보이고, 집중력도 떨어져 산만하고, 이해력은 말할 것도 없다. 머릿속에는 이미 단기성 치매가 진행 중인지 방금 공부했던 것도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체력은 왜 이렇게 안 따라주는지....

그래도 40대 주부의 도전에는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은 절박함이 있어서 그냥 매일매일, 아무리 해도 안 되는 하루하루의 공부를 붙잡고 이어가기는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챙기고, 남편의 밥도 챙긴다. 집안일도 여전히 해낸다. 다만 이전처럼 깔끔하지 못하고, 간식의 질도, 식사의 질도 떨어진 것은 감안할 일이다. 침침해지는 눈을 겨우겨우 뜨며, 꾸벅거리는 머리를 일으켜 세우며 공부하는 것 자체도 힘이 드니, 이전처럼 내 에너지를 집식구들에게 쏟을 수가 없다.

이 시점에서 나는 또 생각한다.

'이 무모하기만 한 도전이, 과연 옳은 것일까? 되기는 된다는 말인가? 시간낭비이지 않을까? 내 무능력함을 결국 다 보이는 도전이 아닐까? 박완서 소설가도 박혜란 선생님도 태어나기를 머리 좋은 사람들이어서(애석하게도 두 분 모두 서울대 입학은 하시지 않았나?) 해낼 수 있는 도전이었는데, 그걸 너무 순도 100%의 눈으로 쳐다보며 '40대 주부는 같은 건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내 유전자와 내 능력은 너무 무시했나?'


물론 공부해서 나쁠 것은 없다. 모르는 지식을 알게 되니 얼마나 유익한가? 하지만 일로 연결시키고 싶은 마음이니 그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매일매일 공부가 하기 싫다. 때론 새벽 2시까지 하다 자기도 한다. 낮동안에 집안일을 하다, 볼일을 보다 못한 부분이 있으면 어떻게든 해나가려면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하루 수면 시간이 4~5시간 될 때가 많다. 잘 자도 모자랄 체력인데, 오히려 수면 시간을 줄이고 있으니 피로가 쌓이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시작했으니 끝내고 싶은 부담감이 내 안에 가득 차 있기에, 나 외에는 아무도 관심 없는, 40대의 도전을 매일 해나간다.

40대의 도전, 공부에 대한 도전은 그냥 도전이 아닌 것 같다. 간혹 인스타에 40대에 공부를 시작하거나 사업을 시작한 분들의 이야기가 올라온다. 왜 남들의 도전은 깔끔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대단해 보이고, 그리고 쉬워 보인다. 원래가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멋있어 보이고, 심지어 빛이 나 보인다. 하지만 그들도 개인적인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박혜란 선생님도 박완서 작가님도 어려움이 없이 그냥 찬란하기만 했을까?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이어가 보는 것이다. 20대의 도전보다 더 힘이 들고, 부담감이 있고, 온전히 즐길 수 없는 도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를 방치할 수 없기에, 나를 키우고 싶기에, 나를 다시 일으키고 싶기에 '도전'이란걸 하는 것이다. 40대의 도전? 말은 참 쉽다. 하지만 어디 실상이 말만큼 쉬우랴... 멋지지도 않고, 찬란하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1%의 가능성도 없지만, 뭐라도 도전해야 0.1%의 가능성이, 세상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열리는 것을 알기에 그냥 도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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