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동네 사람들은 내 엄마를 항상 'JD아~', 'JD이네', 'JD 엄마'라고 불렸다. 난 그게 참 서운했다. 1남 3녀 중 맏이인 오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이상했다. 내 엄만데... 왜 오빠 엄마라고 해? 그럼 내 엄마는 없어? 내 엄마 이름 좀 불러주지,라고 생각했다. 내 엄마 이름... 난 그때 우리 엄마가 'JJ 엄마'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마도 우리 엄마는 아니었을 것 같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나는 "SR 엄마"이다. 우리 부부가 고르고 고른 이름, SR. 너무도 예쁘다고 생각을 했고, 그 이름이 참 마음에 들었다. SR 엄마... 나도 같이 예뻐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불리는 것이 좋았다. 나도 예쁜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 예쁘게 키워야지. 옆집 아줌마도, 위층 할머니도 나를 SR 엄마,라고 불렀다. 괜찮았다. 난 SR 엄마니까. 세상에 많은 어른 여자들이 있지만 SR 엄마는 나 하나니까, 괜찮다. 그런데 점점 나를 'SR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난 'SR 엄마'에서 슬슬 'SR'이 되어가고 있었다. S.R.
둘째가 태어나고 자랐다. 둘째를 통해 알기 시작한 사람들이 나를 "LK 엄마"라고 부른다. 아~ 이제는 LK 엄마구나. 이제 곧 나는 LK가 되겠구나. L.K. 그래, 그 이름 또한 매우 고심한 끝에 지은 이름이고, 내가 사랑하는 내 아들이 좋아하는 이름이니 내가 'LK'로 불려도 좋을 듯하다. 그래... 그래... 그래...
우리 부부는 연애 때 하도 많이 다투어서인지 결혼 후 다툼이 많지는 않다. 다툼이 없다고 서운한 게 없으랴? 내게도 있다. 내 남편이 언젠가부터 나를 "SR 엄마"라고 부른다. 남들이, 시부모님이 나를 "SR 엄마야"라고 부르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남편이 나를 "SR 엄마"라고 부르는 건 서운했다. 소심한 투쟁의 의미로 "SR 엄마"라고 부르는 남편의 말을 못 들을 척했다.
"SR 엄마~ SR 엄마~ SR 엄마~"
이것 참, 야단 났다. 소심한 투쟁이 듣기 싫은 "SR 엄마"의 횟수를 늘리고 있지 뭔가! 지능이 높은 인간이다. 내가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참았다, 그리고 또 참았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난 미간의 주름을 잔뜩 만들어줄 수 있는 특기가 있는 사람이니까. '나 그 말 듣기 싫다고!'. 말하지 않아도 알만큼 이맛살을 찌푸렸다. 긴 지렁이 몇 마리쯤 만드는 거 문제없다.
"SR 엄마~ 그거 어디에 있지?"
됐다. 이 인간... 정확히 말하지 않으면 평생 눈치 못 챌 인간이구나, 말해야겠다.
"나 SR 엄마 싫어. 그렇게 날 부르지 마."
역시나 남편은 처진 눈이 동그랗게 말리더니 이내 큭큭대며 웃고 만다.
"왜? 왜 SR 엄마가 싫어? 난 좋은데. SR 엄마잖아. 우리 SR 이름 이쁘고."
"싫어. 그냥 싫어."
"크하하하. 별게 다 싫네. 왜 그래?"
"나도 내 이름 있어. 내 이름 불러줘. 잠자는 시간 빼놓고 다 나한테 SR 엄마래. 나 SR 엄마로 불리려고 태어난 거 아냐. 내 이름 불러줘. 아니면 '자기야'라고 해줘. 예전처럼."
"......"
이게 뭔 마른하늘에 번개 치는 소리인가, 하고 남편은 이해 못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남편에게서만이라도 내 이름을 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 습관처럼 "SR 엄마"라고 부르는 남편을 대할 때마다 "내 이름 불러."라고 얘기했다. 돌아이처럼.
난 첫 아이를 임신하면서 남편의 권유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는, 나 나름은 재미있었고, 보람도 느끼며 내 이름으로 친절상을 받거나, 내 이름을 부르며 고맙다고 해주는 이들이 있었다. 이쁘지 않은 내 이름이지만 내가 나를 만들어가며 내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며 키워가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키우기만 하고, 회사를 다니거나 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니, 어디에 내 이름을 적을 일도 적어졌다. 또 왜 이렇게 아프지도 않은지... 병원에라도 가야 내 이름 석 자라도 쓸 텐데, 감기 한 번 걸리지 않는 것이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니 드디어 학부모 이름 적는 칸에 내 이름 석자를 적을 수 있었다. 글씨로 써본지가 언제인지 분명 내 이름인데 한글을 처음으로 써보는 사람처럼 "K.J.J" 쓰는 것이 왜 이렇게 어색하던지...
하지만 결국 선생님도 나를 "SR 어머님~"이라고 친절하고 상냥하게 부르시더라.
그런데 부르는 말은 힘이 있기는 하다. SR 엄마로 사니, 엄마로 최선을 다 하고 싶지 뭔가? 나는 없어도 SR 엄마로 열심히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24시간 스텐바이 되어있는 SR 엄마였다. 내 머릿속 생각도 아이들, 내 시간도 아이들, 내 돈도 아이들... 아이들을 위해 살았다.
하지만 나의 이름 찾기 독립운동으로 내 이름을 찾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집이 아닌, 아이의 학교가 아닌, 아이 친구 엄마들이 아닌 내 취미 생활에서였다. 육아 우울감이 지속되고 있을 때였다. 아이들 엄마로만 사니 내 안에 것을 다 퍼주고, 빌려주고, 긁어주고 나니 내 안에서 '이젠 줄 게 없어'라는 심장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채워줘야겠다, 안 그러면 나 죽겠다. 나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그렇게 찾은 곳이 공방이었다. 초벌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고, 색칠하여 구워서 단단한 그릇을 만드는 도자기 핸드 페인팅을 하는 공방이었다.
원장님이 내 이름을 물으셨다. "아~ 저는 S..." 아, 하마터면 'SR 엄마'라고 말할 뻔했다.
"아~ 저는 KJJ입니다. " I am JJ,라고 말하는데 9년이 걸렸다.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지만 그곳은 아이들을 위해 있는 시간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KJJ"이다. 사실 내 이름이 이렇게 불리는 거 쑥스럽다. 부끄럽기까지 하다. 열심히 내 이름을 키워온 적이 없으니 내 이름이 한없이 초라해 보여서. 내 이름을 대하고 있으면 초라한 나와 대면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그동안 내 이름이 숨어 있었으니, 억눌려 있었으니 그건 당연한 결과이다.
내 이름이라는 거, 어떤 이유에서건 사라지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난 지난 10년간 그걸 몰랐다. 내 이름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내가 없어져 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직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만 남게 되는 무서운 일이었다. 지금이라도 내 이름을 조금씩 일으켜 세워주려고 한다. 삐적 마른 내 이름에 물도 주고, 밥도 주고, 때로는 꽃도 따서 옆에 놔주고, 싱그러운 바람도 맞게 하며 내 이름을 살찌우고 싶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의 이름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엄마들의 이름을 독립시켜줘야 한다.
아마 어린 시절의 내 엄마도, "CYS"으로 살고 싶어서, 교회 생활에 그렇게 헌신했나, 싶다.
"CYS 권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