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주부들!

자신을 찾고 싶어 하는 위기의 주부들.

by 골드가든

"난 왜 SR 엄마랑 얘기하면 이렇게 우는지 몰라. 나이가 들었나,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졸지에 나는 사람 울리는 여자가 되어 버렸다. 왜 그들이 나와 얘기하면서 우는 것일까? 내가 공감 능력이 뛰어나서? 공감 능력이 뒷받침되어 있겠지만 그들이 우는 포인트는 "위로와 인정"이다.

주부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삶에 위로를 받기를 원한다.

내가 만나는 이들은 대부분 주부들이다. 전업 주부 아니면 워킹맘! (나의 생활 반경이 굉장히 좁다. 동네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말이다) 다들 우리 아이들로 맺어진 관계들이다. 내가 사회생활을 활발히 하는 사람이 아니고, 성격 자체가 내향적인 부분이 많아서인지 어울리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그러니 고작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몇 명 되지 않는다.


나는 인기가 많은 주부는 아니다. 왜 주변을 보면 인기 있는 주부들이 있다. 그들은 말을 재미있게 하거나, 아니면 운전을 잘해 어디든 함께 가 줄 수 있거나, 아이들 교육 정보가 많거나, 사교성이 무지 좋거나, 골프를 잘 치거나, 요리를 무지 잘하거나, 쇼핑을 좋아하는 주부들이다. 그런데 난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 말을 진지하게 하는 편이고, 운전도 하고 차도 있으나 운전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아이들은 아이들에게 자율성을 준다는 명목 하에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난 여러 명의 사람을 만나는 사교성은 제로에 가깝다. 골프의 'ㄱ'자로 모르고, 쇼핑은 쿠팡으로 한다. 난 어디에도 속해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만남도 없이 늘 혼자만 지내는 건 아니다. 일주일의 대부분의 시간을 의미 없는 모임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을 뿐, 일주일에 1 ~ 2번 정도의 만남은 갖는다. 그 만남의 대부분은 1:1의 만남이다. 가끔 3~4명의 만남을 갖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난 오로지 한 명의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는 1:1의 만남이 편하고 좋다. 1:1의 만남은 가벼워 보이지 않아서 좋다. 그렇다고 해서 3~4명 만남이 가볍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성향에는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고 경청할 수 있는 단독 한 명과의 만남이 편하다.



코로나 전, 보통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반 모임이란 걸 했다. 한 엄마의 주도하에 반이 모이는 것이다. 아이들을 놀려주겠다는 목적이 크지만 실상은 어색한 상태로 엄마들의 안면을 익히자는 의도가 강하다. 3~4명의 모임도 힘든 나는 운이 좋겠도 큰 아이 초등 1, 2학년 때 반모임이 없었다. 반모임을 주도할 만큼 적극적인 엄마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3학년이 되면서 코로나 시국으로 들어서게 되었고, 지금 5학년이다. 이제는 고학년이니 반모임이라고 부를 모임이 없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하지만 첫째 아이 2학년 때 반모임은 없었지만 오다가다 알게 된 반 친구 엄마가 생기기 시작했다. 누구의 엄마라는 것 외에는 잘 모르는 상태였다. 하지만 오고 가는 우연한 만남이 잦아지니 자연스럽게 모임이 만들어졌다. 4명의 모임!! 3명의 모임은 사실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벼운 말들과 서로의 힘든 육아를 얘기하기 바쁘다. 물론 육아로 인해 맺어진 관계이니 어쩔 수는 없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인간 대 인간으로 알아 가고 싶어 했던 나의 생각이 잘못되어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렇게 모임을 이어 가던 중, 그중 한 엄마가 유독 자신을 찾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지상정이었을까?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구나, 라는 생각에 괜스레 마음이 더 갔다. 굉장히 진취적이며 뭔가를 꼭 이루고 싶어 하는 엄마였다. 생각도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향해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주부들 사이에서는 집에 있기에는 아까운 사람이 있는데, 그 A 엄마가 딱 그런 사람이었다. 능력도 있고, 사교성도 있고, 비전도 있었다. 하지만 육아에 묶여 있었다. 참 안타까웠다. 자신은 답답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이 시기를 묵묵히 견뎌가는 본인의 마음은 오직 할까? 한 번쯤 1:1로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A 엄마가 커피 한 잔 하자고 연락이 왔다. 몇 번의 만남과 몇 년동안의 만남으로 적당히 익숙한 관계인 터라 크게 어색하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 갔다. 아이들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집안에서 일어난 일 조금 했다가 그러다 자연스럽게 지금 답답한 현실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다. 원래 의상 디자이너로 일을 했다가 가게까지 차렸다고 한다. 감각이 있기도 하고, 워낙 수완이 좋아서 가게가 잘 됐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습관이 점점 엉망이 되는 것을 보고 돈은 나중에라도 벌 수 있으니 지금은 아이들에게 시간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마음을 먹은 즉시 가게는 아는 분께 넘겼다. 처음 몇 달은 아이들만 돌볼 수 있으니 너무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가만 보니 아이들의 습관을 잡는다는 게 엄마가 있다고 해서 딱 잡히는 것이 아닌 것 같아 보이더라는 것이다. 숙제를 다 하고 놀이터에 가자는 엄마의 말은 잊어버린 채 벌써 놀이터로 나가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화도 나도,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도 들기도 했단다. 책을 읽어주려는 엄마의 계획과는 달리 아이들은 미꾸라지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니 진이 다 빠졌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은 아이들을 대하면서 자신이 엄마로서 능력이 없어서 그런가, 다른 엄마들은 엄마표도 잘만 하던데 왜 안되는지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지금 내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사업안들이 떠오르고 아이들과 남편만 아니면 뭐든 하고 싶은데 현실이 그걸 받쳐주지 않으니 답답하다고 했다.

어떻게 이렇게 주부들의 삶과 고민은 비슷한지 모르겠다. 우리 집 애들이나 그 집 애들이나 상황이 비슷하니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냥 그 상황과 심정이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었다. 사랑하는 내 아이들과 내 남편인데 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 모습을 보고 있는 듯했다. 엄마의 마음은 모른 채 막무가내 통제되지 않은 아이들,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싶지는 않으니 점점 엄마로서의 일부분이 망가져가는 느낌이 든다. 무기력해진다. 게다가 아이를 핑계로 내 능력을 열어보지도 못하게 막고 있는 남편을 대할 때면 괜히 서운해지기도 한다.



"혹시 아저씨라는 드라마 보셨어요?"

"아~ 그거, 난 아직 못 봤는데, 다들 그렇게 추천하더라고요. 한번 봐야 하는데... "

"저 그 드라마를 3번 봤는데, 그때마다 우는 거예요. 그것도 수도꼭지 틀어놓은 것처럼요."

"슬픈 내용인가 봐요?"

"아뇨. 그런데 제가 우는 시점이 다 똑같은 거예요. 처음에는 아이유가 우니까 따라 울었는데, 두 번째부터는 그 지점이었어요."

"어느 지점이요?"

"'나라도 그래. 그럴 수 있어.' 이선균이라는 그 아저씨가 아이유가 숨기고 싶어 하는 그 과거를 듣고서도 그 사람을 신뢰해주는 거예요. 근데 왜 저는 그 장면이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A 엄마는 어느새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지친 얘기들을 막 쏟아부어낸 뒤라 참 생뚱맞은 대화 내용인데 왜 갑자기 눈물이 나왔을까?

아마 그녀도 자신을 무작정 믿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엄마로서 무능한 것 같은데 남편은 다른 생각하지 말고 아이들 돌보는데 집중해 달라고 하니 그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상하게 전업 주부가 되면 자신이 굉장히 무능력하게 느껴진다. 자신이 능력이 없어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자신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게 된다. 아이들도 뜻대로 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건 객관적 사실과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보통적으로 그렇게 느끼게 되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자존감이 떨어진다. 그리고 외로워진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며 맘껏 얘기하고 싶지만 내 자식들 이야기이고, 내 남편 얘기이니 속 시원하게 얘기도 못한다. 자기 얼굴에 침 뱉기 아닌가?

온전히 나란 사람을 인정하고 내 모습 이대로를 받아주고 이해해줄 사람이 그립다. 남편이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건 환상이다. 남편은 어느 정도 아이들과 한 편이 되어 있다. 사이가 좋아서라기보다, 남편과 아이들은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교묘한 교집합이 있어서인 것 같다. 그러니 그들은 그냥 '엄마'라는 존재만 인정해주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어디 성에 차겠는가?

A 엄마도 지칠 대로 지친 마음에 '고생했어. 애쓴다'라는 흔한 말이 아닌,

'나라도 아이들한테 화내, 그럴 수 있어.'

'나라도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아이들 신경 덜 쓰고 내 일 하고 싶어. 그럴 수 있어.'

'그리고 네 상황이라면 나라도 그래. 네가 그런 행동을 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내가 널 아는데...'

의 말이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나의 얘기가 그렇게 들렸었나 보다. 아니면 정말 그냥 울고 싶었거나! 가끔은 나만의 꿈을 꾼다는 게 이기적으로 보여서 자책할 때도 많다. 그런데 이런 마음까지 보듬어 주는 말로 들릴 때면 마냥 눈물이 나온다.




현모양처가 꿈이어서 꿈을 이룬 전업 주부도 있다. 남편의 보살핌을 받으며 아이들을 돌보며 현재의 삶을 만족해하는 주부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같이 아이를 돌보는 것, 가정을 돌보는 것이 가장 먼저 되는 일임을 알고, 가치 있는 일임을 알기는 하지만 내 안에는 엄마, 주부로써의 모습만 있는 건 아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생각보다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밖으로 뻗어가는 꿈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위치를 잘 알기에 매일 자신과 싸운다.

그런데 나는 나를 포함해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주부들을 위로하고 싶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그게 이상한 게 아니에요. 그럴 수 있어요.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 내가 아는 당신이라면 충분히 해 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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