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야!

나의 때를 기다린다.

by 골드가든


며칠 전부터 매미 소리가 한 두 곳에서 들리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맴맴 맴맴" 하며 목청을 힘껏 자랑 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매미 소리를 들으면 '아~ 이제 진짜 여름이구나.'라고 생각한다. 딱 한 철, 여름을 사는 매미의 소리가 그렇게 안쓰럽게 들린다. 이 날을 위해서 얼마나 견뎠을까? 어두운 흙 속에서 다른 매미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얼마나 밖으로 나가서 자신의 소리를 내고 싶었을까? 내 소리는 저것들과는 다를 것 같은데... 아직 밖으로 내보지 않은 자신의 목소리니 본인도 모르지만 자신의 목소리는 너무도 아름다울 것이라 확신하며 자신의 때를 기다리는 어린 매미들. 한 해 두 해,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기다렸다가 드디어 자신의 때가 되어 나무 위에 어딘가에 자리 잡고는 아마 신났을 것 같다. 이제 이 세상에서 내 목소리만 들리게 해 줄 거야,라고 말이다. 패기 있는 어느 매미들의 목소리라고 생각하니 안쓰럽다는 생각만 든다.

매미를 보니 아마 나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서였을까? 지금 밖에서 울고 있는 신나는 매미 말고, 아직은 땅 밑에서 그 매미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의 때가 차지 않음을 답답해하며 자신이 더 자라기를 기다리는 매미 말이다. 언젠가는 땅 위로 올라가 탈피하고 멋진 매미가 되어 "맴맴맴"하고 울테지만 지금은 그 모습을 꿈으로만 그려보기만 하는 어린 매미! 그래서 오늘 듣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여름을 알리는 소리로 들리지 않고, "드디어 나의 때가 왔어. 나 땅 위로 이제 막 올라왔다고."라고 들린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한다. 싹이 움트고 잎이 나올 때, 그리고 꽃이 필 때, 열매를 맺을 때 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이라 다 때가 있다고 한다. 신이 나를 보면 꼭 매미처럼 한 철을 사는 생물체로 보려나...


오늘 갑자기 옛 친했던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며 안부를 묻고는 대답을 기다리기도 전에 각자의 질문을 해댔다. 아마도 그동안 못 했던 질문들을 행여나 잊어버릴까 일단 내뱉고 보자, 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참 이상하다. 이렇게 많은 질문과 많은 얘기를 자연스럽게 하고 너무도 반가운데, 왜 이렇게 통화 버튼 누르기가 오래 걸렸는지...) 마치 20대 때로 돌아간 듯 옛이야기도 하고, 지금의 각자의 상황을 얘기했다.

"이렇게 전화로 말하니까 진짜 너무 보고 싶다. 우리는 언제 볼 수 있을까?"

"언니~ 언니 나 보면 못 알아볼걸. 나 완전 살 많이 찌고 아줌마 다 됐어."

"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다행이다, 둘 다 그래서! 하하하"

이런저런 수다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다 동생이 물었다.

"언니! 언니! 근데 언니 글 써?"

"아~. 그냥 재미 삼아 긁적이는 정도야."

"멋있다. 언니 언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거야? 작가야, 뭐야?"

"아냐. 아직.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야."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야...

이렇게 말하는데 내 가슴 아래, 어디선가 울림이 있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야." 난 지금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 시작하는 아이 같은 단계이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 당연하고,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어떤 모양도 만들어지지 않은 내 상태에 대해 이렇게 말하지 않고, 어떤 다른 말로 표현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작년 가을쯤이었다. 아들과 나는 아파트 옆에 있는 산책로의 참나무들 주변의 흙을 파고 다녔다.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의 애벌레를 잡기 위해서였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와 오후 5시가 되면 산책로로 채집통과 모래용 삽을 들고 나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나는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 애벌레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 채 아들이 좋아하니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들은 자기가 잘 알고 있으니 자기만 믿으랜다. 그러다 오래된 졸참나무의 부드러운 흙 밑에서 2마리의 제법 큼지막한 애벌레를 발견하게 되었다. 손톱만큼이나 작은 다른 애벌레와는 다르게 엄지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하는 애벌레를 보니 꽤 커 보였다. 아들은 확신했다.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 중 하나의 애벌레일 것이라고! 그런데 그것이 정확히 어떤 곤충의 애벌레인지는 몰랐다. 왜냐하면 비전문가인 우리가 보기에는 애벌레의 모양이 비슷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암컷인지 수컷인지는 정말 모르겠더라.

그렇게 집으로 모셔와 겨울을 함께 보냈다. 깊은 겨울잠을 자며, 자신들의 방을 만드는 것을 보고는 아들과 나는 궁금해했다. 과연 무엇이 태어날까? 장수풍뎅이일까? 사슴벌레일까? 암컷일까? 아니면 수컷일까? 기왕이면 장수풍뎅이 수컷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보는 재미가 있을 텐데, 하며 작은 희망도 가져봤다. 겨울이 깊어지자 애벌레는 번데기 방을 만들더니 마치 죽은 미라와 같이 움직임이 없었다. 우리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갔다.


그러다 지난달 6월 말쯤, 그들의 소식이 궁금했다.

"이 녀석들이 지금쯤이면 나오지 않았을까? 여름이잖아. 곤충들이 좋아하는 여름이니 나왔을 텐데... 아마 장수풍뎅이는 아닌가 보다. 그건 힘이 세니 뚜껑을 열고 밖으로 나오던데..."

이렇게 말하며 뚜껑을 열어 보았다. 어머 어른 엄지 손가락 한 마디쯤 한 곤충이 톱밥 위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나온지는 한참 되었는지 죽은 듯 움직임이 없었다. 급한 마음에 곤충 젤리를 넣고, 물을 뿌려 주었다. 등껍질이 금갈색으로 반짝반짝 빛이 났다. 무척 예쁜 아이였다. 그런데 곤충에 문외한인 나는 그 곤충의 종류를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우리가 기다렸던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들과 같이 겉 딱지는 단단하게 있었지만 모양새가 달랐다.

아들이 혹시나 실망할까 봐, 아들의 표정을 보았다. 하지만 아들은 크게 실망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인터넷 세상에서 검색하기 시작했다. 찾다 보니 이 녀석들이 '풍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애벌레일 때는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몰랐다. 그런데 그들이 번데기를 거쳐 자신의 때가 되니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그것이 풍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풍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내 상태가 딱 애벌레 상태구나.

크고 있는 것인지, 뭐가 될지 알지 못하는 상태! 그리고 자기의 때를 기다리며 꾸물꾸물하는 상태!!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좋다. 왜 좋으냐고? 그냥...

그냥 편안하게 내 얘기를 할 수 있고, 내 생각을 표현해 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그래서 아이도 잘 썼으면 하는 바람에 내 아이 글쓰기를 가르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부족한 것을 알고는 글쓰기 관련한 책도 찾아 읽어보고, 필사도 해보고, 그것도 좀 부족한 것 같아서 사이버 대학 문예창작학과에 편입을 하여 공부 중이다. 그리고 매일 글을 써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애벌레 상태인 것이다. 장수풍뎅이인지, 사슴벌레인지, 풍이인지 모르는 애벌레 상태!! 꾸물 꾸물 흙을 먹으며 살고는 있지만 난 나의 때가 오지 않아서 내 모습을 모른다. 나는 지금 가을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겨울이 오면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어 성충이 될 준비를 하듯 더 성숙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아직은 아니다. 그러니 나의 성충의 시기, 여름의 시기, 나의 때는 아직도 한참 남아 있다.

지인이 내게 그랬다. "글 쓰기... 이제 와서 왜? 왜 이렇게 애쓰면서 살아? 힘들지 않아?" 새벽부터 늘 분주하게 애쓰는 나를 염려해서 하는 말임을 안다. 그리고 그 말엔 작가는 아무나 하겠느냐, 이제 시작한다고 뭐가 되겠느냐, 라는 염려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도 안다. 괜히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돈을 벌고 싶으면 차라리 전공을 살려 다시 일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메시지가 있음도 안다.

그래도 내가 이 지인분께 감사한 것은 나를 진짜 염려해서 흘리듯 이야기라도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 지인분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대부분은 '이제 와서 글을 쓴다고 되겠어? 헛튼 짓 하지 마! 그래, 네가 언제까지 하나 보자.'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파이팅'이란 얘기를 듣지 못했다. 외로운 도전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나 자신조차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방법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가랑비에 옷 젖듯' 속담을 좋아한다(꿈보다 해몽이라고 해석하기에 따라 자신의 것이 되기도 하고,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은 공평하게 모든 사람들이 꿈을 꿀 수 있게 해 주셨다. 꿈을 꿀 수 있는 자유를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을 이뤄가는 과정은 늘 초보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한 계단 한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쉽게 지치지 않음을 알고 있다. 간혹 아이들이 계단을 오르면서 네 개의 계단을 한꺼번에 오르겠다며 애를 쓰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옆에 난관을 잡더라도 참 힘겹게 오른다. 그리고 더 오래 걸린다. 서두른다고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지금처럼 한 곳을 바라보고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가다 보면 언젠가는 꿈에 닿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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