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들의 경제적 독립 만세 외치는 날을 위하여!
성장은 자신의 몫이다.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는 것을 굉장히 미안해하는 성격이었다. 아마 자라난 환경에서 습득된 성격이었거나, 아니면 혹시 태어날 때 나의 기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6~7살 때, 엄마를 따라서 오일장에 간 적이 있었다. 자그마한 어촌의 바다 짠 비린내가 나는 시골에서 자란 나는 시끌벅적하고 없는 것이 없어 보이는 오일장이 신기하기만 했다. 호기심이 많은 나이였으니 오직 했겠는가. 길거리 음식의 맛있는 기름에 튀긴 튀김 요리 냄새와 어묵 냄새, 떡볶이 냄새, 달콤한 맛탕의 냄새 등 온갖 맛있는 냄새란 냄새는 다 모아둔 것 같았다. 어느 곳을 봐야 하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여기저기 쳐다보는 나를 엄마가 힐끔힐끔 보시며 나의 움직임을 확인하셨다. 그러다 입맛을 다시는 내 모습을 본 듯하다.
"뭐 하나 먹을래?"
점심시간 즈음이었으니 배도 고프고, 여기저기에서 유혹하는 맛있는 음식 냄새, 과자 냄새, 달콤한 냄새들은 침샘을 자극하고도 남았다. 어린 시절 식탐이 있었던 나는 길거리 음식의 울긋불긋한 유혹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보통의 아이들이었다면 당장 엄마의 치맛자락을 흔들며 사달라고, 먹고 싶다고, 한 개 말고 두 개 사달라고 졸랐을 법도 하다. 그런데 나는 오랫동안 사용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는 햇볕에 색이 바랜 엄마의 푸른 플라스틱 장바구니를 눈으로 스캔했다. 그리고는 습관적으로
"아니, 괜찮아. 배 안고파요. 안 먹어도 돼요."
라고 말했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오는 그 말을 다시 주워 담고 싶었다. 실은 너무도 배가 고팠고, 먹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사달라고 하면 엄마의 지갑에서 안 써도 되는 돈이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얘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 말과는 다르게 내 뱃속에서는 소리를 냈다. 꼬르르륵!
"오뎅 먹을래? 오뎅 하나 주세요."
김이 모락모락 웨이브를 그리며 내 코와 입으로 들어오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입 안 가득 고소함과 짭 짜르함, 찰진 씹는 느낌이 나는 어묵을 한 입 물고는 얼마나 행복했었던지...
"아이고~. 애가 배가 많이 고팠는가 보다."
어묵을 파는 아주머니의 말에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너무 티가 났나? 내 마음을 너무 들켰나? 그 옆에서 엄마는 한 개 꺼내 든 어묵을 한 입 물고서는
"애가 그래요. 생전 누구한테도 뭐하나 사달라는 법이 없어요."
신세 지는 것 자체가 싫었다. 부모님께조차도!
결혼 전 직장을 다니면서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살 때 알았다. 내가 물욕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다만 부모님 사정에 눈치를 보며 나의 소비 욕구를 억압해 왔다는 것을. 하지만 이런 나의 태도는 나를 꽤 독립적으로 만들었다. 경제적 독립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면에서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포함해서 선생님, 친구들, 선배들의 도움을 가능하면 받지 않으려고 했다. 혼자서 해보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내 성격이 굳어져 갔다. 돈을 벌면서부터는 내 돈을 내 맘대로 써도 되기에, 한정된 돈을 내 성장에 꽤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20대 여자아이들이 흔히들 좋아하는 옷 쇼핑, 가방, 액세서리 쇼핑에는 가능하면 눈을 감으려고 했고, 명품은 아예 관심 밖에 두었다. 그 돈으로 영어 학원에 등록을 하거나, 책을 사서 읽거나, 혹은 문화 센터에 등록하여 만들기를 하곤 했다. 아깝지가 않았다. 그게 지금 당장 내게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나를 키울 일들이니까!
그런 내가 결혼을 하고 전업 주부가 되었다. 남편이 주는 생활비로 생활을 해야 한다. 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모르겠다. 남편이 눈치를 주는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혹여 부족하면 언제든 더 챙겨주기도 한다. 하지만 내 습성에는 맞지 않다. 10년이 지났는데도 익숙해지지 않는 걸 보면 난 정말 이 구조와 현재 이 상황이 참으로 불편하다. 결혼 후 처음 몇 년간은 아이 이유식이며 아이 물건을 사거나, 집안에 필요한 것을 사야 할 때는 남편이 주는 생활비 내에서 썼지만 개인적으로 나를 위해 저렴한 1~2만 원대 티셔츠나 가방, 혹은 구두를 살 때에는 결혼 전 모아뒀던 내 돈에서 쓰곤 했다.
남편도 나의 이런 모습을 100% 다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가족인데 네 돈, 내 돈이 어디 있냐며.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걸 단순히 돈의 문제로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비록 지금은 아이들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길 수 없어 다른 일보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우선으로 삼고 있지만, '언젠가는 밖으로 나가야 하는 사람, 독립적인 내가 가장 편한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던 것 같다.
독립적인 내가 가장 편한 나
그래서 나는 무조건 성장해야 했다. 성장을 갈구했다. 내가 자라지 못하고 집 안에 가둬져 있는 것이 미친 듯 답답했다. 하지만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단순히 '일'을 하지 못하는 내 상태를 답답해했던 것 같다. '일'에 초점을 맞추고 살았으니까. 그래서 남편에게도, 주변 친구들에게도 늘 '나 일하고 싶다.'라고 밥 먹듯 얘기했다. 하지만 내 상황은 내가 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고, 첫 아이는 유난히 엄마의 손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큰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 아이를 맡길 수가 없었다는 내 마음이 더 컸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같이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가화만사성'이라고 내가 집안을 편안하게 해 줘야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상황이 답답하지만 참았다. 아이들과 남편은 가정생활을 꽤 만족해했고, 아이들은 안정적으로 잘 크고 있다. 문제는 나의 답답함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답답함의 차원에서 벗어나 불안감마저 들었다.
나 이러다 영영 쓸모없는 사람이 되면 어떻게 하지?
남편에게 의지해서 사는 것이 좋다고 하는 이들도 있으나, 나는 싫었다. 난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만 남아있고,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그런데 나를 찾기 위해서는, 독립된 나를 찾아야 했다. 독립된 나는 일단은 경제적인 독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흔히 말해 경력 단절이 된 지 8년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점점 세상과도 단절이 되어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 교육과 아이들 케어 방법, 집안 살림 기술, 요리 기술뿐이었다. 그 외 전공과 관련된 것도 잊은 지 오래이고, 새로운 기술은 더더군다나 모른다. 불안한 마음에 아이가 없는 낮시간을 이용해서 베이킹도 독학으로 배워보고, 미싱, 도자기 핸드 페인팅도 배우고 있다. (영어 공부도 틈틈이 하려고 하였지만 목적이 없으니 끈기 있게 하지는 못했다. ) 하지만 이것이 직업과 연결이 될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능도 없었고 꾸준히 할 만큼 재미있지가 않았다.
40부터는 20대 때와는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직업의 목적 또한 다르다. 20대의 직업은 누군가가 보기에도 그럴듯하고, 돈도 안정적으로 버는 직업이 좋았다. 그리고 부모님이 자식 자랑하시기에도 편하고 좋은 대기업이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40대가 되어 생각하는 직업은 좀 다르다. 아이들을 돌보는데 크게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직업이면 좋겠다. 그러니 더욱 직업의 범위가 좁아져간다. 20대에는 많은 돈을 벌고 싶었다면 지금 40대의 나이에는 적은 돈이라도 떳떳한 사회적 동물, 인간으로 살아내기 위한 정도면 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자존감을 잃지 않을 정도의 돈!
그러기 위해서는 성장을 해야 한다. 전업 주부에게 특히 필요한 것은 성장이다. 전업 주부는 워킹맘들보다는 사회와 단절되어 있기도 하고, 고립되어 있어 성장의 자극을 받을 기회들이 적다. 나태하기도 쉽다. 그러니 전업 주부들은 특히 더 깨어있어야 한다. 성장을 갈구해야 한다. 아이들의 능력 키움, 성장, 공부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내 자람에도 관심을 가져줘야만 한다. 나에게도 관심을 가질 마음의 자리를 남겨둬야 한다. 아이들이 다 자라고 그 빈 둥지만 안고서 쓸쓸해하며 신세한탄만 해서는 안된다.
어느 날 남편에게 물은 적이 있다.
"내가 내 재능을 찾고 잘 키워서 잘 된다면 어떨 것 같아?"
"당연히 좋지."
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성장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인 것 같다. 아내 개인의 성장보다는 퇴근해서 돌아왔을 때 집이 편하고, 자식들이 엄마의 돌봄 아래에서 정서적으로 안정되며, 엄마의 관리를 받아 자신이 퇴근하고 돌아와서 신경을 덜 쓰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그런데 그건 어쩌면 아내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성장은 각자의 몫이다. 자신이 결정할 일이고, 자신이 키워내기 나름인 것이다. 나를 가장 쓸만한 사람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도, 나를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는 나로 만들어낼 사람도,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 사람도,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 있게 만들 사람도 '나'다. 남편도 아이들도 아니다. 오직 '나'다! 나 외에는 해낼 사람이 없음을 명심해야한다. 24시간 중 나를 위한 시간을 꼭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