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것은 무료잖아요.

- 전업주부도 꿈을 꿔야 한다.

by 골드가든

"엄마, 엄마. 나 지난번에 학교에서 적성 검사했었잖아. 오늘 그거 결과 나왔어. 나 뭐라고 나온 줄 알아?"

아직 집에 도착하기도 전인 딸은 뭐가 그리도 급하게 얘기하고 싶었는지, 전화를 걸어 랩을 하듯 말을 이어갔다. 학교에서 적성 검사를 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는데 오늘에서야 그 결과가 나왔나 보다. 한참 자신의 재능, 능력, 직업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을 보면 많이 큰 것 같다. 초등 고학년이 된 것을 이럴 때 느낀다.

"어떻게 나왔니? 궁금하다."

"나 자연과학 쪽이 1순위로 나왔고, 그리고..."

흥분된 채 신나게 떠들어대는 아이의 목소리가 참 밝았다. 지금 당장 자연계열의 직업을 갖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 아이에게는 그건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자기를 발견해 가는 것이 즐겁고, 자신이 이뤄낼 미래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꿈꿀 수 있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초등학생에게도 꿈꾸는 것은 즐거운 일인 것이다.


한 때 과거에 머물러 살 때가 있었다.

'그때 내가 가정 형편 생각하지 않고 그 대학을 갔더라면 어땠을까? 그때 의대로 전과 신청을 했더라면 지금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 결혼을 하지 않고 공부에 더 매달렸다면 난 어땠을까? 그래도 나 그때는 참 열심히 살았고, 잘 나갔었는데, 그리고 잘 될 줄 알았는데... '

그런데 참 희한하다. 내가 과거에 머물러, 과거의 나에 대해 미련을 가지고, 과거에 갇혀 살았을 때가 아이들에게 가장 손이 많이 가는 그 시점이었다. 나 아니면 절대 안 되는, 누구도 이 현실을 대체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첫 아이는 심한 분리 불안 장애에서 이제 겨우 벗어나 유치원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고, 둘째 아이는 젖먹이 아이였다. 누구보다 엄마가 너무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환경에서 벗어나 자꾸 과거로 도망을 가고 싶어 했다. 그때는 그 현실이 너무도 싫었다.

사랑스럽고 '엄마, 엄마'하며 맹목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아이들이 있었고, 내게 고마워하며 날 여전히 사랑해주는 남편이 있었으나 나는 나를 사랑할 수가 없었다. 현실의 내가 너무 하찮게 보였다. 초라하게 보였다. 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잠도 편히 못 자고, 화장실조차 문 닫고 갈 수 없고, 억지웃음 지으며 '까꿍'만 하고 있는 내가 그렇게 한심해 보이는 것이었다. 아침에 뾰족구두 신고, 예쁜 원피스 혹은 멋진 정장을 입고 차 키를 누르고 회사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났다. 나는 평생 이렇게 살 것 같은데, 그들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상큼한 향수 냄새만 맡아도 모르는 그 이웃이 그렇게 부러웠다.

난 언제쯤이나 저렇게 멋진 나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자꾸 과거의 나로 가게 되었다. 과거의 나를 쳐다보며 그때의 내 모습을 그립다고 말했다. 그리고 과거의 나를 미화시키고 있었다. 그때도 못난 모습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법이라도 걸린 듯 미래의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깜깜한 밤에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그저 나무 사이사이에 부는 바람 소리만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무서웠다. 내가 점점 작아져 가는 것 같았고, 꿈속에서도 내가 작아지며 땅 속인지 아니면 공중인지 어디인지 모르는 곳으로 사라지는 꿈을 꾸곤 했다.

그때 어느 쯤이었다. 대학 동기의 SNS를 보게 되었다. 꽤 좋아했던 친구였다. 나만큼이나 열심히 살았고, 같은 회사에 들어갔고, 같은 시기에 결혼을 하고,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하고, 또 같은 시기에 회사에서 퇴사를 했다. 공통점이 많았다. 그래서 첫째를 낳고는 비슷한 서로의 상황을 얘기하며 위로도 하고 위로도 받으며 지냈다. 그녀가 나와 같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내가 다른 지역에서 비슷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녀의 SNS에서는 다른 그녀가 있었다. 첫째를 키우면서 꿈을 키우며 공부를 계속하고 있었다. 까맣게 몰랐던 사실이었다. 내게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갓난쟁이 아이를 키우면서 외국에서 시험도 보고 오고, 대학원도 다녀서 석사 학위도 받은 당당한 그녀가 있었다.

전화를 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그녀는 뭐 별거는 아니어서 얘기는 안 했었다며, 그동안 너무 고생스러웠다고,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어서 남편과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서 겨우겨우 지속할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 그때의 느낌이란... 그녀가 참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축하하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는 많이 울었다. 질투가 나서라기보다 나 자신에게 속고, 멍청하게 과거에 머물러 있는 내가 죽도록 밉고, 그런 내게 화도 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가슴이 쓰리고, 그리고 찢어지는 듯했다.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울다 울다 꺼익꺼익 울음을 삼기며 가슴을 치며 울었다. 왜 이렇게 멍청한지... 난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람이었다. 왜 과거 속에 갇혀서 괴로워만 하고 있는지, 왜 나오지 못하고 있는지... 그런데 여전히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나올 의지가 없는 나를 보았다.

그리고 끊임없이 내 환경을 탓했다. 친정 엄마가 날 도와줬으면, 시어머니라도 날 도와줬더라면, 애가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만 아니었더라면, 남편이 조금만 내게 공부할 시간을 줬더라면... 난 이미 내 환경을 미워하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며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나 자신을 점점 포기하기 시작했다. 겉에서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으나 내 내면은 꿈속에서처럼, 작아지고 작아지며 사라져 가고 있었다.

난 뭘 해도 안될 거야. 내가 이제야 뭘 할 수 있겠어?



그런데 꿈이 없다는 것, 미래를 꿈꿀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지옥 같은 삶인지 아는가? 자꾸 뒷걸음치는 나를 잡아 묶어 두고라도 싶었다. 하지만 현재에 갇혀 살고 있는 나였는데, 이상하게 시간은 갔다. 하루가 지나가고, 일주일이 지나가고, 한 달이 지나가고, 아이가... 2살이 되고, 4살이 되고, 5살이 되었다. 어라! 여전히 나는 현재에 갇혀 있는데 뭐야, 시간은 가고 있었네! 미래가 있었던 것인데 나만 보지 못하고 있었구나. 마치 시간이라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사방이 다 막혀 밖을 볼 수 없으나 거울 속 내 모습만 보여서 나만 보며 만족했다가, 불만족스러워 미워했다가 의미 없는 반복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그냥 서 있는데 어느새 10층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속았구나! 그때 깨달았다. 시간이 나를 속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난 그저 두려워했고, 그 두려움을 안고만 살았다는 것을! 그것을 달래기 위해 공부하지 않았고, 그래서 꿈마저 빼앗아 버렸다는 것을.


난 두려움에 취해 내 꿈을 빼앗을 자격이 없었다. 꿈조차 꾸지 못하게 만들면 안 됐었다. 어리석은 자들은 꿈을 꾸지 않는다. 가보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겁먹고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환경을 탓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과거에 머물지 말자고 결심했어야 했었다. 그리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공부해야 했었다. 꿈을 먹었어야 했었다. 그리고 작디작은 성공들을 맛보았어야 했다. 무엇보다 나를 위로해줬어야 했었다. 나를 사랑해줘야 했었다. 값을 지불해서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가장 소중한 것들은 거의 무료라는 사실을 말이다. 공기도 무료이고, 물도 무료이다. 신뢰도 무료이고, 사랑도 무료이며, 그리고 꿈도 무료이다. 여기에 반박하는 의견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물 사서 마시는데요? 신뢰도 돈을 들여 시간을 보내면서 생기는 거 아닌가요? 사랑도 그렇지 않나요? 다시 묻고 싶다. 마시는 물만 물만 필요한가요? 신뢰와 사랑이 정말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것인가요?


꿈을 꾸는 것은 무료이다. 그러니 꿈꾸는 것을 즐기자. 특히 나와 같은 전업 주부들은 꿈을 가져야 한다. 자녀에 대한 꿈은 자녀의 몫이니 그들에게 양보하자. 꿈꾸는 것 자체가 굉장한 행복인데 그 행복을 빼앗지 말자. 우리는 우리의 꿈을 꾸자. 뭐 어떤가? 지금 당장 이뤄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상관없지 않은가? 100세까지 사는 세상인데 우리가 70년 동안 전업 주부로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지금 전업 주부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여기에서 더 성장해야 한다. 우리도 김치 냄새가 배인 옷 말고, 향수 냄새 풍기는 옷을 입고, 뾰족구두를 신을 수 있다. 내 이름을 내밀고 세상에 나갈 수 있다. 미래의 내 모습을 꿈꾸며 멈추지 말고 공부하며 한 발짝씩 간다면 그 꿈이 우리를 찾아와 줄 거라고 믿는다.

아이들도 자신의 성장을 기뻐하며, 미래의 모습을 기대하며 깡충깡충 뛰며 즐거워하는데, 우리는 하면 안 되는 것인가? 꿈은 10대, 20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꿈은 모든 연령에게 열려 있다. 그 문은 언제든 찾아오는 이에게 열어줄 준비가 되어있다. 다만 내가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꿈의 문을 열도록 꿈의 손잡이가 반짝 빛나고 있다. 그러니 닿을 때까지 조금씩만 걸어가 보자. 좀 느려도 괜찮다. 나 역시 느리게라도 갈 생각이다. 이제껏 꿈을 꾸며 먹여주지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이 맛난 꿈을 먹여주고 빛나게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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