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날 잘 아니?

나를 키우기

by 골드가든


"엄마, 엄마, 이게 내가 만들었다!! 진짜 나비 같지? 이걸 어디에 붙여놓을까~?"

아들은 만드는 것을 참 좋아한다. 남자아이답지 않게 꼼꼼하여서 색을 칠해도 선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우리 부부는 아들을 '테이프 장인'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테이프를 잘 만든다기보다는 테이프를 이용해서 이것저것을 참 잘 만들기에 붙여준 별명이다. 아들은 활동적이고, 운동을 꽤 좋아하고, 추론하는 것을 즐기는 아이이다. 자연 관찰을 굉장히 좋아하고, 무엇보다 곤충을 너무 좋아해서 에그 박사 책은 몇 번이고 읽는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 대해 면밀히 관찰하는 편이다. 부부라기보다 내가 그렇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물론 모든 부모가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색깔, 성격, 좋아하는 친구의 성향을 살핀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짜증을 더 내는지, 어떤 책 종류를 좋아하는지 등도 관심을 갖게 된다. 누구보다 내 아이들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을 한다. 심지어 아들, 딸 자신들보다도 엄마인 내가 더 잘 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게 맞는 말일까?



"잉? 뭐라고? 뭐가 됐다고?"

친정 엄마는 나의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말에 마냥 신기해하셨다. 가난한 살림에다, 챙겨야 할 시댁 식구가 많은 집에 시집와 아이 넷을 키우면서 아이 한 명 한 명을 꼼꼼하게 살필 틈이 없으셨던 엄마였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네가 그래도 어렸을 때 글짓기 대회 나갈 때마다 상도 받아오고 그러더니만, 그게 남아 있는가 보다."


날 낳아주신 엄마이다. 내게 생명을 주신 분이시고, 내 안의 유전자는 내 엄마와 아빠로부터 왔다. 난 아빠의 얼굴을 많이 닮았고, 발톱은 엄마를 닮았고, 내 머리카락은 아빠를 닮았다. 다른 여자들보다는 다리의 털이 많은 편인데 그것은 아마 엄마를 닮았나 보다. 이렇듯 나와 엄마는 외형의 것들은 누구를 닮았는지 구별해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나를 다 알 수 있을까?

20대에는 외모에 관심이 좀 있기는 했다. 관심이 매우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기왕이면 예쁘고 싶었고, 날씬하고 싶었다. 그러니 당연히 나의 외적인 유전자에 더 관심을 두게 되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외형은 그렇게 많은 부분 나를 표현해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재능과 내 내면에 형성된 인성, 성격 등이 한 명의 사람을 나타낼 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것의 일부분은 유전일 수도 있고, 자라난 환경, 겪어왔던 경험에 의해 조성되기도 하는 것 같다.

친정 엄마와의 통화를 마치고 난 곰곰이 생각했다. '부모인 엄마도 날 잘 모르는구나. 하긴...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잖아. 그런데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은 나를 잘 알까? ' 아마 부모님도 내 남편도 나를 완벽하게 잘 알지는 않을 것이다. 관심이 적어서가 아니다.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다 내보인다고 하지만 사실 자기 자신은 자기 본인이 가장 잘 아는 것 같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가 가장 즐거운지, 어느 때는 불편한지, 슬픈지, 우울한지... 친정 엄마는 나에 대해 잘 모른다.

어린 시절 글쓰기 대회는 시 부분이었고, 동시 위주였고, 주로 쓰는 패턴들이 비슷했기에 상을 받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글쓰기가 어디 시만 있는가? 산문도 있고, 독후감도 있고, 논술 및 사설도 있으며 여러 종류의 글이 있지 않은가? 시를 잘 쓴다고 산문을 잘 쓰는 것도 아니며, 산문을 기가 막히게 잘 쓴다고 시를 잘 쓰는 것도 아니다. 또 문학적 표현을 잘한다고 해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서 다 써 내려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별개이다.

나는 내 글 쓰는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음을 안다. 다만 좋아할 뿐이다. 글을 쓸 때 즐겁고, 글을 쓰면서 나를 찾는 것 같아서 행복하다. 그래서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을... 하지만 남편도 친정 엄마도 그런 것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설령 머릿속으로 알고는 있다고 한들 그 깊이를 알 수 있겠는가? 당연히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몸이니까. 몸이 다르니 생각이 다르고, 느끼는 것이 다르니까!



생각해보면 나는 나의 부모님보다 더 내 미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고, 나에게 더 집중했었고, 내 꿈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늘 관심을 가졌다. 어디 그뿐인가? 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나를 안다. 적어도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일 것이다.

가끔은 내 미래가 답답해서 역술인을 찾아가 내 사주를 풀어달라고 부탁할 때도 있었다. 현재가 답답하고, 아직 오직 않은 미래는 두렵고 무서우니까. 그러면 그들은 나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가지고 나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절반은 맞고 또 절반은 틀렸다. 그럼에도 나는 신통하다며 감탄하고 또 위로를 받고 온다. 하지만 그것은 한 이틀, 길면 일주일이면 잊힌다. 나를 어떤 틀에 놓고 짜 맞추어 만들었으니까. 아주 그럴듯하게 말이다. 답답한 마음에 잠깐의 소나기 같기는 했지만 가뭄을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 내게 어떤 재능이 있는 것 같냐고, 내가 뭘 하면 좋겠냐고 물어보지 말아라. 그리고 내 재능을 못 알아준다고 서운해하지도 말아라. 사람들은 다들 내 재능에 크게 관심이 없다. 그래도 감사하게 부모님은 우리의 재능에 관심을 가져 주시지만 겉에서 드러나는 것뿐이지, 나를 진심으로 즐겁게 해주는 것, 나를 몰입하게 하는 것까지는 모르신다. 겉에 드러나는 내 재능에라도 관심을 가져주시니 그것 자체에 감사함을 가져야 한다.

이 당연한 사실을 나는 이번에 친정 엄마와의 통화를 통해 알았다. '아~ 내가 나를 가장 잘 아는구나. 내 남편도 나를 잘 모르고, 부모님도 잘 모르는구나. 그들은 그들의 상황과 형편 속에서 제한된 나를 바라보고 있구나.' 난 이 깨달음에 기뻐했다. 이제는 내가 나를 만들어가면 되니까. 누군가에게 맞는 사람이 아닌 오로지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어가면 되니까 말이다.

나는 나를 만들 수 있을 만큼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인 것이다.



'백설 공주'라는 전래 동화가 있다. 그 동화에서 새 왕비는 매직 거울에게 물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니?"

새 왕비는 아마도 자기 자신을 면밀히 살피지 않은 사람 같다. 자신의 얼굴을 거울을 통해 훑어보았을 뿐 자신의 매력적인 부분을 하나하나 관찰하며,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왕비의 내면까지도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을 관찰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평가에 의존했던 것이었다. 내가 한 때 역술을 의지했던 것처럼 왕비는 매직 거울의 말을 듣고 소나기 같은 잠깐의 위로의 말에 만족하며 살았던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아는 것, 이게 쉽지는 않다. 어려운 일이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운가요?"라며 어떤 이는 내게 물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자기 자신의 깊은 곳까지 보려고 집중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일단 자기 자신을 알기 시작하면 두려움, 막연함, 막막함이라 이름 하는 구름들이 조금씩 걷히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부모라는 매직 거울에 의존하지 않게 된다. 또한 남편, 친구라는 매직 거울에 묻지 않게 된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니까!

나의 길을 열어줄 사람도 바로 '나'임을 꼭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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