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유형기
- 뿌리를 내리는 시간들, 감춰진 시간들
곧 아이들의 여름 방학이 돌아온다. 사실 주부 대학생인 나는 이미 여름 방학이다. 원래 대학생의 방학이 학생들의 방학보다 빠르지 않은가? 코로나 시국 때 아이들과 집에서 학습을 하게 되면서, 아이들의 성장을 보게 되었다. 학원을 다닐 때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함께 지내는 2년 동안 옆에서 지켜보니 아이들이 조금씩 키도, 몸도, 그리고 지식도, 실력도 자라는 것이 보였다. '잘 크고 있구나.'라는 안도감과 함께 나도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사이버 대학교에 편입을 하게 되었다. 그게 작년 가을 학기이니 이제 2학기를 보낸 셈이다.
처음에는 다시 대학생이 된다는 생각에 설레고, 온라인 강의이기는 하지만 강의를 듣고 있는데 괜히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과제와 시험은 마흔이 넘어도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하지만 힘듬이 없으면 성장이 없겠지, 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이 없는 오전 시간을 이용해서 강의도 듣고, 과제도 하고, 시험도 열심히 봤다. 그렇게 사이버 대학에서의 두 번째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방학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 초등학교 5학년인 딸에게 산책을 제안했다.
"엄마, 방학했다! 좋겠지?"
"와~ 부럽다. 나도 빨리 방학했으면 좋겠다. 근데 엄마 방학 때 계획 세웠어?"
아~ 방학 때 계획을 세워야 하는구나. 딸의 질문에 지난겨울 방학이 생각이 났다.
지난겨울 방학 때, 겨울 방학을 했는데도 딱히 계획을 세우지 않는 딸에게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나 플라잉 요가 특강 듣고 싶어."
플라잉 요가... 그즈음 딸이 빠져 있던 취미이자, 특기였다. 초 5, 즉 빼박 고학년을 앞두고 있는 아이는 국, 영, 수 과목의 선행을 앞서 가겠다던지, 아니면 학기 중에는 힘든 컴퓨터 수업을 받겠다, 라는 계획을 전혀 세우고 있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남들 하니까 너도 선행을 나가야지,라고 채근하고 싶지 않았다. 공부에도 자기의 시기가 있는 것을 알기에 조급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존의 플라잉 요가 수업을 하고, 또 특강을 하고 싶다는 얘기구나?"
"응. 그러니까 주 4회를 하게 되는 거지. "
그렇게 겨울 특강으로 플라잉 요가를 가열차게 하게 되었다. 아마 초등학교 4학년 아이 중에서는 우리 딸이 가장 열심히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난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한 겨울인데도 아이는 늘 두 볼이 뻘겋게 달아왔고, 늘 허벅지가 아프다고 했다.
"살살하지.. 너무 무리한 거 아냐?"
"내 생각엔 평소 스트레칭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아. 스트레칭을 하다 보면 키도 크겠지?"
"키가 크고 싶구나!"
"응. 키도 키인데.. 사실은 마음도, 내 실력도.. 모든 게 자랐으면 좋겠어."
"어머? 너도 그래? 나돈데. 엄마도 그래."
"엄마도? 엄마는 어른인데?"
내 얘기에 진심으로 놀랬는지, 딸은 멈칫했다. 어른인데 자라고 싶다니... 그게 무슨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싶었을 것이다. 딸의 동공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응. 엄마는 멋진 어른으로 자라고 싶어."
"아~. 멋진 어른...."
그렇다. 난 멋진 어른으로 자라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현명하고, 온화하며, 듬직한 나무와 같이 성장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빨리 나이를 먹고 싶다. 성급히 자라고 싶다.
"엄마가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말이야. 중국의 어느 나무는 5년간의 '유형기'라는 것을 겪는대. 이 시기 동안 겉에서 보기에는 나무가 크게 자라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네. 그런데 생각해봐. 나무도 얼마나 빨리 자라고 싶겠어? 다른 나무들보다 빨리 높이 자라야 햇빛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지. 그런데 그 마음을 꾹 참고 뿌리를 땅에 더 깊고 넓게 내리기에 집중을 한대. 그래야 더 튼튼하고 큰 나무가 되니까."
"아~~ 그래?"
"엄마도 서린이도 지금은 그런 시기인가 봐. 엄마도 더 빨리 자라고 싶은데... 지금은 뿌리를 더 깊고 튼튼하게 내리려고! 우리 조급해하지 말자. 너도 엄마도 아주 크고 멋진 나무가 되는 준비를 하는 거야."
딸아이는 이 어려운 얘기를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해하지 않았어도 상관없었다. 실은 내게 한 말이기 때문이다. 내게 너무 성급해하지 말라고. 당장 성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금 바로 결과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흔한 사람이다. 결과 중심적인 사람. 빨리 결과를 얻기를 바라는 사람. 성급한 성격을 가진 사람. 그리고 급하게 포기를 결정해 버리는 사람이다. 이런 나란 사람을 데리고 40년 넘게 살아왔다. 수많은 도전이 있었지만 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며 포기했다. 그리고 실패 감정을 쌓아갔다. 난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며 내게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아팠다. 하지만 여전히 도전하고 있다. 나 자신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또 도전을 한다. 그게 그래도 내가 숨 쉬고 살아있다는 증거이니까. 하지만 그 못된 습성이 다시 나오곤 한다. 그런 내게 들려주고 싶었다. 유형기를 반드시 겪어야 한다고. 뿌리를 내릴 시간을 기다려줘야 한다고 말이다.
해님을 구름이 가린다고 그 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구름 뒤에 감추어진 해는 해의 시간을 가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 햇살을 내비친다. 우리도 결과가 당장 보이지 않지만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뿌리를 내리는 시간,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난 단지 그렇게 위로해 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