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53점이면 잘한 거야

나를 세우는 말

by 골드가든


나는 보통의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사람이다. 나는 보통의 친절이 좋다. 불과 몇 년 전의 나는 다른 모습이었다. 신데렐라 증후군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타인에게 과하게 친절한 사람, 늘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은 사람... 내 의견도 꺼내지 못하고, 타인의 부탁에 거절도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뭐든지 내가 조금 고생하면 되지 뭐, 그러면 내 실력도 늘 테니 괜찮아, 내가 하는 게 편해, 뭐 어때 누군가는 해야 하는 걸, 등등의 말로 애써 내 불편한 마음을 잠잠하도록, 수면 아래로 끌어내리는 Yes-woman이었다. 나도 내가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 모습에 지치기 시작했다. 두 아이를 독박 육아로 키우면서 나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사람의 반응이 두려워 애써 괜찮다고 말하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내게 부탁하라고 말하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다. 나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만큼 힘이 드는데, 다른 사람에게 부탁은 하지 못하고 내게 부탁하라고 말하는 게 정상적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은 나보고 천사 같다고 한다. 나보고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한다. 그런데 왜 행복하지가 않지?



나를 관찰하기로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인정에 목말라 있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인정을 갈구했다. 그것이 신데렐라 증후군으로 발전했고, 나 자신에게는 인색한 사람이었다. 칭찬의 말은 할 줄 몰랐고, 그리고 나 자신이 고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했다. 나는 나 자신을 내면에서 학대하며 살아왔다. 내 생각 속에서 나를 학대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늘 심리적 경쟁 속에서 남보다 못한 내게 '그것밖에 안되는구나? 그렇게 어떻게 살려고?' 라며 가시 돋친 내면의 말들을 쏟아부어놓고는 그것을 자극제로 삼곤 했다. 왜냐하면 그래야 없던 힘을 내서라도 앞으로 나가려고 하니까. 난 날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고, 위로해주는 방법을 몰랐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칭찬과 위로의 말을 잘해주면서...

그런데 문제는 내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였다. 뭐만 해도 귀엽고 사랑스럽던 내 아이가 초등학교를 가면서 공부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니 난 내게 대하듯 아이를 대하고 있었다. 나 닮은 내 분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이 아이가 잘 되면 내가 잘 되는 것 같으니까.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고 내 마음에 아이를 향한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난 배 아파 낳은 내 아이를 사랑한다. 죽도록 사랑한다. 이 아이가 열이 나기라도 하면 나는 나이트 번의 간호사처럼 내 아이를 간호했고, 내 아이가 밖에서 놀고 싶어 하면 난 하루 종일 놀이터에서도 있었다. 자외선 알레르기가 있어 팔이 빨개지고 죽도록 가려워도 말이다. 하지만 진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아이의 결과가 좋으면 내 사랑의 힘이 닿은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뻔한 결과였겠지만 아이는 날카로워졌다. 짜증도 늘어났다. 그리고 결과 중심적인 모습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모습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좌절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아~~ 이건 아냐. 벌써부터 너에게 좌절하면 안 돼!


내 아이가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며 패배감을 느끼며, 자신을 궁지에 몰아가려는 모습을 보면서 찢어질 듯 가슴이 아파왔다. 나는 그렇게 나를 채찍질하며 살아왔지만 내 아이는 자신을 가장 사랑했으면 좋겠어! 긍정적인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어! 결과에만 집착하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무엇보다 미래의 자신을 미리 실패하도록 당겨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변해야겠다, 나를 바꿔야겠다, 그래야 내 아이를 지킬 수 있겠구나! 먼저 나를 위로하고, 날 사랑해주기로 했다. 사랑에 목말라하고, 인정에 늘 깊은 갈증이 있는 나를, 내가 보듬어 안아주고, '수고했다, 애썼다, 잘했다.'라며 칭찬해 주기 시작했다. 타인에게 내 능력 밖의 친절을 베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 친절을 나와 내 가족에게 베풀기로 했다. 타인에게 하는 친절의 피로감을 나 자신과 내 가족에게 짜증으로 풀지 않기로 했다.

"오늘 나, 애기 아빠 와이셔츠 사러 갈 건데 같이 갔다 올까? 같이 쇼핑도 하고 그러자."

"아~ 미안해요. 저 몸이 좀 안 좋아서요."

불편한 제안에 거절을 했다. 예전 같았으면 내 몸이 좀 아파도 거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친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중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가지치기 시작하니 내 시간이 생겼다.

그 시간에 엄마를 공부하기로 했다. 육아를 공부하고, 자녀 교육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심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책에서 말하는 좋은 엄마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천지 차이일 테니 공부가 나를 배신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믿었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부끄러운 모습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내 아이는 나처럼 결과 중심적인 사람으로 자라지 않기를 바랐다. 남과 비교하며 내 가는 길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으로 자라지 않기를 바랐다. 자신의 노력을 무시하는 사람으로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살아가는 하루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날마다 자기 자신을 키우는 재미를 알고, 매 순간 자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기뻐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그걸 엄마인 내가 돕기로 했다. 학습을 지시하고 감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 내면에 있는 아이의 씨앗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엄마, 나 오늘 과학 시간에 선생님 질문에 아무도 대답 못했는데, 내가 했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신나서 자랑을 했다.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말이 점점 빨라지며, 손동작은 더 커져갔다.

"있지, 엄마. 나도 사실 손을 들까 말까 했거든. 근데 다들 모르는 눈치더라고. 근데 나는 알고 있잖아. 그래서 말을 할 수밖에 없었어. 대답하고 나니까 애들이 '오~'하며 나를 보더라고. 선생님도 나보고 똑똑하다고 칭찬해주시니까 기분이 좋았어."

"와~~ 잘했다. 떨렸을 텐데 발표를 한 거야? 이야~ 대단하네, 우리 딸. 떨리는 그 순간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어, 맞아. 진짜 떨리더라. 근데 막상 하고 나니까 괜찮았어."

"근데 다른 친구들은 다 모르는 걸 우리 딸은 어떻게 알았어?"

"그게... 예전에 도서관에서 과학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갑자기 그 내용이 생각이 나더라고. 애들은 그 책을 안 읽어봤나 봐!"

"그랬구나. 우리 딸이 책을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읽어서 그랬구나. 와~ 멋지다."


아이는 계속해서 자신만이 말한 것, 자신만이 잘한 것, 자신만이 칭찬받은 것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했다. 조그마한 칭찬에도 하늘을 훨훨 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딱 내 모습!! 그런 그 아이에게 그 아이의 노력과 끈기가 있어서 그런 결과를 얻었음을 은연중에 말해주고 싶었다. 아이는 나의 의도를 알았으려나?



"으악~~ 엄마 망했어."

영어 단어 테스트를 하고 있던 아이의 외침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영어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아이는 매일 영어 단어를 학습하며 스스로 테스트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날은 특별히 모르는 단어들이 많았나 보다. 절망하듯 책상에 팔꿈치를 대고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자신이 원했던 점수보다 아주 낮은 점수를 받은 게 분명했다. 칭찬에 쉽게 흥분하기도 하지만 좋지 않은 결과에 쉽게 좌절하기도 하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몇 점인데?"

"아~ 몰라. 말하기 싫어."

짜증을 내며 대답하는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껏 올라간 눈꼬리, 눈꼬리 주변의 얼굴 근육까지 결을 잃은 듯 보였다. 삐죽 나온 입은 고집스럽게도 보였다.

"몇 점인데 그래?"

"53점! 아~ 진짜 짜증 나. 뭐가 이렇게 어려워?"

"53점? 우와~~ 잘했네. 괜찮아. 너 잘한 거야."

"응?"

아이는 나의 반응이 이상해서 한 번 더 확인을 했다. 53점이라고! 아마 내게 '응? 53점? 야~ 공부 좀 해라. 그게 뭐니?'라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반응을 반사적으로 생각해낸 것이 그리 이상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결과주의적인 나의 옛 모습은 그렇게 얘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아이의 점수를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툭, 그 말이 나올 뻔했다. 하지만 아이에게 티 나지 않게 몇 초간의 생각 전환을 했다. 나도 이러니 이 똑똑한 아이가 내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53점이면 엄청 잘한 거야. 그거 내가 후기에서 봤는데, 어떤 고 2 언니는 처음에 45점인가, 43점에서 시작했대."

"고 2 언니? 나랑 똑같은 거 한 거 맞아?"

"응. 맞아. 근데 그 언니가 인터뷰할 때가 그 점수 맞고 3개월 뒤였거든. 근데 96점 맞는다고 그러더라. 매일 30분 꾸준히 하니까 늘더래."

"아~ 그래? 그럼 나 잘한 거네? 난 초 5잖아."

"그럼. 엄청 잘한 거지. 너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그렇게 아이는 자신감 파워 50을 채웠다. 아이들은 참 순수하고 솔직하고,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그날, 퇴근하는 아빠에게 자신이 단어 시험 53점을 맞았다고 자랑을 하더라.




난 아이에게 과정을 말하는 것을 기뻐하고, 너의 매일의 성장을 즐거워하라고,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사실은 내게 말하고 있다. 마흔이 넘은 내게, 난 얘기해주고 있다.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리고 미리 포기하지 말라고. 해보지도 않고 좌절하지 말라고. 53점이면 어떤가? 매일 조금씩 1점씩만 올리면 되지 않은가? 그리고 1cm씩 자라는 나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며 응원해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괜찮아~. 53점이면 어때. 매일 성장하고 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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