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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는 김에 뉴질랜드 Apr 11. 2024

걷다 보면 보이는 것들.

한국에서는 주로 자동차를 타고 다녔다. 한국은 택시도 많고 버스나 지하철도 잘 되어 있으니 걷기보다는 대중교통이나 자가용을 이용했다. 한국에서 평소 걷는 생활을 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내 기준에서는 그러했다. 나는 언제 걸었더라. 생각을 해보니 재활용 버리러 갈 때, 마트나 백화점 갈 때, 박물관 갈 때, 시간을 짜내어 어쩌다 방문하는 공원, 지하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를 찾으러 갈 때였던 것 같다. 주로 내가 많이 걸었던 때를 생각을 해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한국은 안타깝게도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 많고, 가끔은 미세먼지 알림이 검은색으로 변할 때도 있다. 내가 사는 집이 40 층대인데,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하늘을 보면 색깔이 누리끼리하다. 누렇달까? 나는 특히 암환자라 미세먼지가 싫다.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걷고 싶어도 걷기가 싫은 하늘빛과 미세먼지 알람톡이 부산 길바닥을 걷는 걸 주저하게 만든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 나는 많이 걷는다. 새파란 하늘과 자주 보이는 무지개를 보며 1시간 거리도 걷고, 왕복 3시간 거리를 뛰기도 한다. 30분 걷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1시간 걷는 것도 타격이 없다. 한국의 부산은 골목도 많고 언덕도 많고 산만디 아파트와 집들도 많다. 타우랑가는 도시가 전체적으로 평지다. 자외선 차단제를 팔, 다리, 목, 얼굴 꼼꼼하게 바르고 모자를 눌러쓰고 러닝화를 챙겨 신으면 무작적 앞만 보고 걸어도 행복하다. 

부산과는 다르게 고층 빌딩, 고층 아파트가 없다. 고층 건물이 주는 위압감과 스트레스가 있다. 나는 높은 층에 살고 있지만, 고층 건물이 주는 스트레스나 시각적인 압박이 싫어서도 걷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타우랑가의 시티나 망가누이 쪽에는 높은 건물들이 몇 있다. 한국처럼 극단적으로 높지는 않다. 타우랑가는 한국처럼 우후죽순 너도나도 높은 건물로만 채워져 있진 않다. 

타우랑가를 걷고 또 걷고 뛰고 또 뛰어도 미세먼지가 내 뇌를 무너뜨리고 나의 호흡기 질병을 유발하고, 내 몸속에 있는 암세포를 자극하여 잠든 암세포를 급발진하게 만들 것 만 같은 극단적인 생각을 멈추게 만든다. 맑은 공기, 저토록 눈부신 새파란 하늘, 새하얀 구름, 선명한 무지개. 모든 것이 걸어 다니기 완벽하다. 당연히 길빵도 거의 없다. 2번 정도 본 것 같다. 자기 집 앞에서 전자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자기 차에서 전자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본 적 있다. 앞으로 또 보게 되겠지만, 한국처럼 흔하진 않단 것이다. 

내가 어디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국은 유명한 빵이 2가지가 있다. 하나는 파리바게트 빵, 또 하나는 길빵>


한국은 어딜 가나 길빵 천국이다. 어린이가 지나가든지 말든지, 아기가 옆에 있든지 말든지 흡연자는 자신의 폐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기 바쁠 뿐이다. 

길빵의 위협과 미세먼지의 고통으로 벗어나서 이곳 뉴질랜드에 와서 두 발로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다 보니 걷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걷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과 간단한 대화도 나누게 되고, 비슷한 시간대 산책하러 나오는 할머니들과는 자연스럽게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걸을수록 건강해지고, 걸을수록 친분을 쌓게 되는 신기한 경험이다. 


<걷다 보면 보이는 것들은 인연이었다.>


해외에서 만나는 소중한 나의 인연들. 또한 그들의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걷다 보니 보였다. 동물들과 함께 산책 나온 사람들, 동물과 함께 러닝 하는 사람들, 아픈 동물들을 개차에 태워 산책시켜 주는 사람들, 마트 앞에 강아지 묶는 곳에 묶어 두고 장을 보러 가는 사람들, 공원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의 모습 등. 마트 앞에 강아지를 묶어 두는 장소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모습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부산은 요즘 아파트 단지 내 애견 산책 불가능한 곳들이 있다. 처음 시작은 강아지 산책시킬 때 배변 봉투를 들고 다니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그다음은 배변 봉투뿐만 아니라 생수통을 들고 다니며 강아지가 소변을 볼 때 반드시 그 소변본 곳을 생수로 씻어 내야 한다는 문구였다. 얼마 후 또 이런 문구가 붙었다. 


<아파트 단지 내 애견 산책 불가. 길냥이 밥을 주는 것이 위법은 아니나 많은 입주민들이 반대함>


배변을 치우지 않는 몇몇 입주민들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시작된 벌금 부과는 결국 애견 산책 금지로 마무리되었다. 길에서 생활을 해야 하는 고단한 인생의 길냥이 조차 밥을 마음대로 줄 수없게 되었다. 안타깝고 슬프고, 씁쓸했다. 

그런데 뉴질랜드에서는 마트 앞에 애견을 묶어 두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니 놀라웠다. 한국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나의 딸 학교 등하교 할 때도 그랬다. 나의 딸 친구들이 개와 함께 학교를 등교를 한다. 그리고 하교할 때는 엄마나 아빠가 개와 함께 온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강아지의 산책줄을 잡고 함께 집으로 간다. 또 많은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다. 

한국에서는 어떤가? 학교 땡 하고 마치면 태권도 차량, 미술학원 차량, 영어 학원 차량 등 각종 학원 차량에 타느라 아수라장이고, 픽업온 엄마들 차량으로 아사라판이다. 한국과는 다른 모습에 생각이 많아졌었다.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무엇을 위해 저토록 열심히 학원 가는 걸까? 부모가 원하는 건지 아이가 원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나의 딸이 학교를 마치고 학교 운동장에서 2-3시간 놀고 집에 올 때면 강아지도 만나고, 고양이도 만난다. 게다가 수많은 개미떼도 만난다. 한 번씩 꼭 쭈그려 앉아 개미집을 살펴본다. 한국에서 개미집을 살펴본다고 시간을 내고, 학교 운동장에서 1시간 이상 놀았던 적이 있었나? 한국에서는 없다. 한국에서는 단언컨대 없다. 


<하교 후 딸과 함께 걷다 보면 보이는 것들은 개미와 개, 토끼, 고양이다.>

자주 보다 보니 고양이도 우리를 보면 우리에게로 걸어온다. 강아지도 마찬가지다. 토끼는 아직 잘 모르겠다. 토끼는 늘 자니까. 이곳은 주택들이 높은 울타리로 되어 있지 않다. 어떤 집은 울타리가 나무가 아닌 집들도 있어서 마당에서 키우는 동물들과도 교감이 가능하다. 나의 이웃들의 집들이 대부분 그렇다. 그래서 나의 딸과 함께 걸어 다니며 이웃의 동물들과도 자주 소통을 하곤 한다. 


나의 딸은 식빵의 테두리를 싫어한다. 그래서 항상 식빵의 테두리를 잘라낸다. 그것을 모아 뒀다가 일주일에 2~3번 정도 오리들에게 나눠 준다. 나의 집 근처에는 수십 마리의 오리와 티푸케(?)라는 새가 살고 있다. 그리고 장어도 산다. 엄청나게 큰 장어들이다. 정글의 법칙에 나오는 장어처럼 크고 새까맣고 튼실하다. 자갈치 시장에서 먹었던 장어구이 보다 더 클 것 같다. 식빵을 잘게 잘라 던져 주면 그 아이들이 와르르 몰려와 먹는다. 이제는 우리가 식빵 봉지만 들고 있으면 저 멀리서도 오리들이 날아오고 장어가 몰려든다. 왠지 모르지만 장어가 지능이 있어 보인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 같다. 나의 딸 유튜브 채널에 영상들이 있다.

한바탕 주고 나면 우리 주변에는 어느새 오리, 비둘기, 갈매기, 참새, 티푸케가 둘러싸고 있다. 우리 가족은 가끔 차를 타고 다른 동네를 가기도 한다. 그 동네를 가려면 차를 타고 가야 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블랙스완이 살고 있다. 동물원에서 사는 줄 알았던 블랙스완은 동네 강가에 살고 있다. 사람을 잘 따르는 것 같다. 블랙스완 가족도 우리를 알아보고 우리를 향해 가끔 걸어온다. 

망가누이를 걸어 다니며 식빵 테두리를 잘게 잘라 던지면 갈매기떼와 참새가 몰려온다. 


<걸어 다니며 식빵을 던져 주면 갈매기, 비둘기, 참새, 티푸케, 블랙스완, 장어를 만날 수 있다.>

또 걷다 보면 타우랑가를 다니는 버스를 만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버스를 보고 손을 흔들지 않는다.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든다 해서 버스기사가 그 인사를 받아 주기가 어렵다. 하지만 타우랑가에서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면 지나가는 버스 기사들은 하나같이 손을 흔들어 준다. 나의 딸은 산책을 하다 지나가는 버스를 보면 항상 웃으며 손을 흔든다. 가끔 우리가 버스를 타면 버스기사들이 이렇게 말하곤 한다.


<가끔 우리 인사하지? 나는 너희가 언제 버스를 타나 기다렸어. 마침내 만났네. 손을 흔들어 줘서 고마워.>


이런 말을 들은 날은 머리가 띵하다. 고작 손을 흔들었을 뿐인데, 이토록 친절하게 고마움을 표시할 일인가? 인종차별을 하는 십 대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절하다. 버스에 앉고 나의 딸이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저 아저씨가 손인사 하는 거 기억하는 거지? 날 기억해 주네. 그래서 2달러만 받았나 봐. 저번에 그 아줌마 기사는 돈도 안 받았잖아. 내가 좋아서 손을 흔든 건데. 어떻게 이렇게 친절해? 신기해 엄마. >


어린 자녀와 함께 사는 이곳은 완벽하다. 학업 스트레스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 나는 나의 딸이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개미집을 살펴보며 개미 그림을 그리는 모습, 마당에 앉아 파란 하늘의 구름을 보고 하늘을 그릴 때 등의 모습을 볼 때면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친절을 친절로 받아들여 주는 이곳에서 만나는 인연들도 나의 딸에게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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