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씨. 욕이 터지나 참는다. 화가 나나 참는다. 참아야지. 그래. 아씨
지난해 term 3,4를 했고, 이번에 새로운 반에서 term1을 다니고 있다. 새로운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일까? 뉴질랜드는 기본적으로 친절하다. 한국과는 다른 시스템으로 커리큘럼이 이루어진다. 선생님은 어떨까?
겪어보니 한국의 선생님과 뉴질랜드의 선생님은 차이가 있다. 간단한 예로 아이가 발톱이 반쯤 부러지는 일이 있다. 한국의 선생님은 양호실에 다녀오라고 하거나, 선생님이 간단하게 밴드를 붙여 줬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냥 넘어간다. 아이가 서툰 영어로 선생님께 보여줘도 선생님은 "After school You gonnahome, your mum cut your nail. ok? " 하고 넘어간다. 한국과는 다르다. 이런 일이 있었을 때 선생님이 밴드를 붙여주지 않은 것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당연한 문화의 차이 인지 물어봤다. 그랬을 때 학교의 선생님은 뭐라고 했을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어제 볼 때 많이 다쳐 보이지 않았어. 어제 스쿠터 타고 집에 갔어? 스쿠터를 타고 가서 발톱이 더 다친 건 아니고?"라고 이야기를 한다. "인종차별은 아니겠지. 유학생이 와서 귀찮은 건 아니겠지. 원래 그런 거겠지." 애써 넘겼다. 아마도 나의 딸이 선생님 복이 이번 학년에는 없나 보다. 선생님은 분명 인사를 하면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이건 그냥 내가 반가워서가 아닌 서양 스타일인 거다. 집에 돌아와 아이의 가방에 밴드 두 개를 넣어 줬다. 만약 학교에서 다쳐 밴드가 필요한 상황일 때는 밴드를 붙여라고 알려 줬다. 이곳의 문화가 그렇다는데, 내려놔야지. 내려놔야 하는데 속은 부글부글 끓는다.
일요일부터 비가 내렸다. 비옷을 입고 스쿠터를 타고 가는 길이다. 비가 오니까 천천히 스쿠터를 타고 가며 물었다. "1부터 10까지 있어. 10이 제일 힘든 거야. 그러면 작년 term1 일 때 하고 지금 하고 비교하면 얼마나 힘들어?"라고 물었더니 10이라고 확실하게 대답을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아직 영어가 많이 힘들고 반 친구들도 어색하고 선생님도 무섭다고 했다. 그렇다. 아침에 가면 긴장한 표정으로 교실 안을 서성인다. 버디 친구가 오면 그때는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보기에는 아직도 많이 긴장하고 있고 얼어 있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이 모습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도 같은 모습이었다. 한국에서 학교를 갈 때는 긴장한 표정에 어깨까지 축 쳐진 채 털래 털래 울먹이며 학교 안으로 들어갔었다. 그래서 그냥 나는 울면서 학교를 가진 않으니까 괜찮을 거야 라며 자기 합리화를 한다.
영어의 벽은 생각이상으로 높다. 유학생에 대한 선생님의 특별한 배려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유학생에 대한 배려는 필요하다. 지금반 선생님은 그런 건 없는 것 같다. 내가 가르쳐 줘야지. 그래서 나도 영어 공부를 해야만 한다.
교실에 가면 같은 반 친구들의 사진과 선생님의 사진이 붙어 있다. 그 반에 사진이 없는 아이는 나의 딸 혼자다. 한 주 늦게 왔지만, 학생이 한 명 더 있다는 생각은 못하셨나 보다. 선생님은 나의 딸 자리는 만들어 놓지 않고 친구들 사진을 네모 모양 정확하게 만들어 벽을 꾸며 놓으셨다. 외국인 유학생 담당 선생님에게 나의 딸 사진도 저기에 붙여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외국인 유학생 담당 선생님의 답은 담임 선생님인 학기 초라 바쁘시단다. 어쩔 도리가 없다는 뜻인 것 같다. 기다려야 할까? 그래. 아직 2주밖에 안 됐으니까 더 기다려야겠지. 나도 원활하게 영어가 안되니 이런 답답한 일이 생길 때마다 기다렸다가 더듬더듬 이야기를 해야 한다. 다른 반에도 늦게 온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사진을 넣을 수 있게 해 뒀던데. 그반 선생님과 비교하면 안 되는데. 어쩔 수 없이 속상한 마음에 비교를 하게 된다.
왜?
나도 눈이 있다 이거야. 내가 영어는 잘 못해도 듣는 말들이 있다 이거야. 유학생이 내 딸만 있는 줄 아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참는다. 이러다 사리가 나올 지경이다. 이번 학기처럼 이렇게 속이 끓는 적은 처음이다. 유학원에 이야기를 해보고 싶지만, 발톱 사건과 네임태그 사건을 이야기했던 터라 또 이야기하기가 조금은 어렵다. 그래도 나의 딸이 속해 있는 유학원은 좋은 유학원이다. 원장님도, 담당 실장님도 친절하다. 또 실장님은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이라 나 역시 뭔가 이야기하기가 편하다. 그래도 일단은 조금 더 기다려 봐야겠다. 하나하나 일일이 다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야기하다 보니 네임태그 사건이 떠오른다. 한국에서 2달을 보내고 돌아왔다. 새로운 반으로 간 나의 딸은 그 주금요일부터 토, 일 3일을 울어 양쪽 볼이 벗겨졌다. 처음에 나는 아빠가 보고 싶어 그런 줄 알았다. 아빠가 보고 싶다고 자기 전에 울긴 했으니까. 그런데 금요일은 학교를 마치고 오는 길 내내 말이 없더라. 쳐다보니 눈물을 흘리며 스쿠터를 탔나 보다. 이곳에서는 씽씽이를 스쿠터라 한다. 스쿠터를 타고 가기에 나는 딸의 뒤통수를 보고 쫓아가기에 눈물을 훔치며 타고 가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한 번도 울면서 탄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보니까 울고 있더라. 왜 그러냐 묻는 엄마의 물음에 답이 없다. 그리고는 소파에 앉아 좋아하는 유튜브를 보는데도 울고 있다. 또 물어보 대답이 없다. 아빠가 보고 싶어? 물어보니 그렇단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운다. 어라? 계속 우네? 뭐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라고 해도 그저 돌아오는 대답은 아. 빠. 보. 고. 싶. 어! 란다. 그래서 아빠와 페이스타임을 했더랬다. 아빠와 페이스 타임을 해도 운다. 어라? 계속 끝없이 우네? 아빠도 답답한지 물어봐도 애는 계속 보고 싶다고만 한다. 그렇게 한참을 밤에 잠이 들 때까지 저녁도 먹지 않고 울었다. 2시 30분에 하교를 하고 12시쯤 잠이 들었으니 아주 긴 시간을 계속 울었다. 미련한 엄마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속상한 일이 있어나? 정도만 생각했지 다른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날 밤 딸은 침대에 실수를 하고 말았다.
다음날 토요일 아침부터 옆집 고양이가 와 있었다. 그래서 다행이다 싶었다. 딸이 좋아하는 고양이니까 마음이 좀 달래 지겠지 싶었으나, 아뿔싸. 고양이 간식을 주면서도 운다. 오메? 뭔 일이지?
그러고 나서 한참 후에 딸이 하는 말은 이랬다.
"엄마. 선생님이 네임태그 꾸미라고 줬어. 그런데 그거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다 매트에 가서 앉는 거야. 내가 영어를 다 이해를 못 하잖아. 그래서 눈치껏 아이들이 하는 거 따라 하는데, 내가 쓰윽 보니까 친구가 오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네임태그를 해야 하는데 나는 그거 하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 그래서 하던걸 책상 위에 두고 매트에 가서 앉았거든. 매트에 앉아서 선생님이 수업을 했을 거 아냐? 나는 못 알아듣잖아. 그래서 그냥 멍을 좀 때렸어. 다른 아이들이 또 뭐 다른 걸 하길래 눈치껏 그걸 또 했는데. 엄마도 알지? 내가 못 알아듣는 영어로 수업도 들어야 하고, 친구가 물어보면 대답도 해야 하고, 선생님 이야기도 들어야 하고, 하잖아. 그거 하다 보면 나 정신없단 말이야. 그래서 책상 위에 뒀던 네임태그는 까맣게 잊어버린 거야. 그러고 있는데 선생님이 네임태그 어쨌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 잃어버렸다 했어. 처음에는 선생님이 약간 단호하게 캐비닛을 찾아보라고 하셨었던 것 같아. 그런데 내가 그 말을 잘 못 알아 들었어. 그래도 내가 캐비닛을 열어 본 건 그냥 거기 열어 봐야 할 것 같았거든. 두 번째 다시 가서 없다고 했는데 그때 선생님이 화를 내시면서 "I don't give it one more. ok? go"라고 하셨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일단은 먼저 확인을 해야만 했다. 그 네임태그가 뭔지. 각자 사물함이 있다. 거기에 붙이는 이름이 적힌 종이란다. 아이가 잃어버렸다고 한다면 선생님이 다시 주면서 "다시 잃어버리면 안 돼. 다시 해와."라고 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가뜩이나 영어가 어렵고 새 반도 낯선 데 가자마자 그 주에 선생님께 아이들 앞에서 혼이 난다면 이 유학생 마음은 어떨까?
이건 참을 수가 없었다. 유학원에 이야기를 했다. 월요일 선생님을 만났다. 역시나 선생님은 밝게 인사를 했다. 주말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하셨지만, 나의 딸은 상처를 입었다. 게다가 유학생 담당 선생님은 나의 딸이 수업시간에 떠들어서 선생님이 조금 화가 났던 것 같다고 했다.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나의 딸이 잘못해서 그렇단다. 어쨌든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해주면 고맙겠다는 인사를 하며 잘 부탁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돌아왔다. 어미 된 입장에서 나는 을 아닌가. 한국이나 뉴질랜드나 학교에서 엄마는 늘 을이다. 유학생 담당 선생님이 말한 잡담이 신경이 쓰였다. 하교한 딸에게 물어보니 못 알아들으니까 수업을 놓치기가 일쑤란다. 그래서 옆자리 친구에게 뭐 하는 거야 물어보거나 어디야 물어보는 것을 선생님은 잡담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선생님이 잡담이라 오해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찾아가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 아닌가 싶어 참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나는 이방인이다. 나의 딸도 마찬가지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이방인의 학교 생활은 직장 생활의 그것과 결이 닮아 있다. 직장 생활은 어른이라 감당하지만. 여기는 이제 겨우 저학년 어린이 아닌가. 선생님의 무심함과 시크함이랄까.
< 원래 선생님이 그런 거겠지. 나의 딸만 그런 게 아니겠지.>
애써 참아 본다. 작년에는 겪어 보지 못한 선생님과의 일들로 심신이 지친다. 이럴 때는 솔직히 돌아가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있는 이유는 나의 딸이 학교를 가고 싶다고 한다. 한국에서 만났던 나의 딸 선생님은 가끔 과격한 표현을 하시곤 했다. 예를 들면 연필이다. "자. 얘들아. 연필이 날카롭지? 이거 들고 설치다 눈을 팍 찔러서 눈에 연필이 박힌 아니가 있었어. 너희들도 그런 사고 나지 말란 법 없지? 조심해야 해." 그 말을 종이에 써온 딸을 보며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뭔가 말을 보태지 않고 사실을 적어 왔으니까. 글자는 삐뚤빼뚤 틀렸지만 내용은 저랬다. 한동안 나의 딸은 연필 공포증이 생겨 뭉툭하고 두꺼운 색연필만 쓰려고 했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선생님이 한국이나 뉴질랜드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학부형은 을이다. 참고 또 참아야지.
아침에 만난 어떤 한국인 엄마가 그랬다. 주말마다 선생님이 이번주는 뭘 배웠고 다음 주는 어떤 내용을 공부할 거다는 메일이 오지? 난 안 온다.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 나는 몰랐던 내용을 친구 엄마는 알려 준다. 한국인 언니를 알아서 천만다행이다. 그래도 이곳에서 무언가 물어보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한국인 언니가 있어 천만다행이다.
그나저나 메일 이야기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 난감하다. 일단 기다려야 하는 건지, 학교에 물어봐야 하는 건지.
연거푸 네임태그 사건과 발톱 사건을 연달아 이야기를 한 통에 저 한국인 유학생 엄마 진상이다는 이미지를 줄까 봐 더 물어보지 못하겠다. 교실에 나의 딸만 사진이 없는 것도 속상한데, 그것도 기다려야 하고. 메일도 기다려야 하는 걸까?
내 마음에도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딸은 씩씩하게 학교를 간다. 한국에서는 학교가기 싫다 아침마다 울고, 안될때는 학교를 하루 쉬기도 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울지 않고 가니까 일단 견뎌보자.
- 그나저나 아오. 선생님 복 더럽게도 없네. 아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