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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 Nov 10. 2021

              이모

<따스한 그 곳은>  니은 



 큰 이모가 허연 수박껍데기를 대문 밖에다 내놓을 때(쓰레기차가 알아서 수거해 갔던 시절) 이웃집에서 내버린 수박껍질에는 붉은 과육이 보였다고 했다. 그 이후로 이모도 애써 붉은 과육을 남긴 수박껍데기를 버렸다고 한다. 너무 깨끗이 먹으면 궁색한 살림이 들통나지 않겠냐며 농담처럼 말하던 이모가 나의 젊었던 어머니와 함께 웃던 것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7남매였고 나에게는 이모 셋과 외삼촌 셋이 있었다. 어머니가 장녀였다. 그 아래가 수박껍데기에도 사연을 담아 크게 웃던 나의 큰 이모다. 어머니와 이모는 다른 형제들보다 더 가까웠는데 타 지역에 살았던 탓에 보통은 전화로 통했고 가끔은 나의 부모님의 부부싸움 끝에 사네마네 하는 통에도 원더우먼처럼 나타나 급한 불을 꺼주고는 했다.

 이모는 내 동생들과 같은 나이의 아들을 둘 두었다. 딸이 없어 그랬는지 나를 참 예뻐했는데 한 번은 나를 이모네로 데리고 가 며칠을 보낸 적이 있다. 겨울이었고 사촌 남동생 A와 B는 여자 사촌이 집으로 놀러 온 게 신이 났던지 내 꽁무니만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우리가 미닫이 방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바람에 방에는 온기가 돌 틈이 없어서 이모는 하는 수 없이 방문의 잠금 고리를 걸었다. 우리는 새둥지의 새끼 새처럼 지저귀며 아랫목에서 삶은 고구마를 먹었다. 

 이모는 나의 튼 입술에 특효약이라며 아카시아 벌꿀을 발라주었는데 달아서 나도 모르게 입가를 핥으면 이모는 또 꿀을 발라 주었다. 겨울이면 잘 터는 입술 때문에 호주머니엔 늘 안티푸라민을 가지고 다녔는데 시린 것을 바르고 바르다 보니 입술이 파래지고 튼 것도 잘 낫지를 않았다. 이모가 발라준 벌꿀 때문인지 입술엔 다시 붉은색이 돌았다.

이모부는 경찰이었고 그리 무뚝뚝하지도 않았지만 살갑지도 않았을 것이다. 특별히 기억에는 없기 때문에.

겨울의 낮이 지나고 어둑해지면 추위가 드세졌다. 퇴근한 이모부가 마루로 들어와 방문을 벌컥 열었을 때 이모부의 등에 얹힌 찬 공기 덩어리가 얼음 부스러기처럼 방바닥으로 훅 끼쳤던 것은 생각이 난다. 녹이 슨 쇠 냄새도 났던 것 같다.     


 추석을 보내고 서울로 오는 버스에서 사촌에게 이모의 수술은 잘 되었냐고 물었다. 끝났어야 할 수술인데 여덟 시간째 수술실에서 아무 소식이 없다고 했다. 나는 걱정 말라고 했다. 정말 어떤 불길한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먼지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담당의가 말하길 이모의 뇌에 아주 작은 종양이 발견되었고 그것은 다행히 악성이 아니라서 간단하게 제거할 수 있으며, 놔두어도 되지만 앞으로 어떻게 변활 지는 누구도 모르니 지금 떼어내는 게 낫겠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면 누구라도 얼굴에 난 여드름처럼 톡 짜버리고 말지 싶어 수술에 동의하겠지. 

그렇게 해서 서울에 있는 한 병원에 이모가 입원하던 날, 오랜만에 보는 사촌 A와 B는 듬직한 청년으로 자라 있었다. 이모만 그대로였다. 볼 때마다 웃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사실은 긴장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몇 개의 검사가 더 남았고 수술은 며칠 뒤로 잡혀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이 될지 몰랐을 그날에 이모에게 수술 잘 되고 보자는 약속 같은 인사를 하고 명절을 지냈다.

사촌 B가 알려오길 이모는 수술 시작 후 하루가 지나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고 했다. 의사는 사촌들에게 기다리라는 말만 할 뿐 다른 말은 일절 없었다고 한다. 이모가 깨어나지 않는다는 말에 각지에 흩어져 살던 외가 가족들이 불시에 중환자실로 모였다. 이모는 우리가 부르는 소리에도 하얀 시체처럼 누워만 있었다.  

심장박동 기계만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는데 그 기다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우리 중 아무도 몰랐다.

나는 혼자 1층 밖 어딘가로 걸어 처음 보이는 벤치에 걸터앉았다. 병원 건물의 뒤 쪽인 듯했고 햇살이 평화롭게 내려앉아 있었다. 점심시간이었고 병원 소유의 것으로 보이는 작은 운동장에는 환자가족 일리 없는, 환자 일리는 더더욱 만무한 사람들이 쌩쌩하게 족구를 하고 있었다. 중장년층이 섞여 있었는데 아, 의사들이구나. 저들 중 이모의 담당의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모의 상태에 대해 말하지 않고 도망간 의사라면 태연하게 자신의 생활을 누릴지도 몰랐다. 

멀지 않은 중환자실과 이곳 중 어느 하나는 꿈일 것만 같았다.

가을 햇살에 눈이 부셨다. 눈이 부셔서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수술실 안에 다른 문이 있는 거야. 그 문으로 도망간 거야. 

어떻게 수술을 맨 정신으로 24시간 동안 할 수 있냐며 우리는 상황을 추리했다. 그 의사는 이모의 열린 두개골을 채 닫지도 못한 채 수술을 포기했다. 그러곤 잠을 자고 족구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수습할 수 없는 이모를 짐짝 버리듯 중환자실로 내팽개친 것이다. 

지나고 보니 수술 담당의는 알고 있었던 거다. 이미 이모는 뇌사상태였다. 담당의는 사실상 사망 판정을 내려야 했지만 자신의 의료사고를 감추려 말을 아꼈을 뿐 아니라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다. 큰 병원이었다. 

 이모는 눈 한번 뜨지 못하고 중환자실에서 며칠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모부가 이모가 누워있는 침대에 두 손을 짚고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이제는 서류상 이모의 남편이 아닌, 한 때는 서로 사랑했을 그 남자가 운다. 소리 없이 운다. 

사촌 A는 부유하는 유령처럼 흐느적거리며 느리게 흐흐흡 흐흐흡 울었다.

그의 동생은 우는 대신에 입안에 피가 고이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이를 악물고 있었는데 나는 그 아이의 꼭 쥔 주먹을 잡아주면 악다문 입을 풀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한다. 

 의사를 부르는 외침에도 젊은 레지던트들은 모두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이 서류 따위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옆 칸에는 딸로 보이는 여자가 미동도 없는 노인의 옆에 앉아있다. 여자의 눈은 불안하게 떨렸지만 이 상황이 꽤 익숙한지 차분하게 앉아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생경한 그곳에서 아주 몹쓸 이물질처럼 외면당하고 있었다. 

이모들은 울고 삼촌들은 참다못해 소리를 질렀다. 중환자실에서 그러면 안 되지만, 그들의 처사가 대단히 잘못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레지던트 하나가 우리의 소란에 희번덕 웃었다. 보란 듯이 웃었다. 그것은 우리를 두 번 죽이는 잔인한 도끼날 같았다. 사람이 죽고 나가는 일이 예사인 병원이라도 사람이라면 저러면 안 되지. 막내 삼촌이 당장에 그놈 멱살을 잡고 니들이 사람이냐고 흔들었다. 나는 터져버린 눈물을 어쩌질 못하고 고개를 떨구자 밀가루 반죽이 퉁퉁 부풀어 오른 것 같은 이모 얼굴이 보였다. 중환자실로 옮겨졌을 때부터 이모는 이모가 아닌 얼굴로 누워 있었다. 죽은 이모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는데, 나의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주며 이모가 아직 죽은 게 아니고 이 상황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게 아직까지 이상한데, 왜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었을까.

 이모 다 듣고 있지? 이모 다 듣고 있는 거 알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죽음이었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앞에 처음으로 나타난 의사는 의료사고를 인정했다. 의사의 사과는 정치인의 사죄처럼 유감이라는 듯이 들렸다. 진정성이 있었다 해도 죽은 이모가 돌아올 수는 없었다.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우리도 싸울 이유가 없었다. 의사는 여전히 피구를 하고 또 수술에 들어가겠지. 번개처럼 아무도 예측하지 못할 찰나에 이런 일은 얼마나 쉽게 일어나는가. 

 훗날 수술실 안에도 카메라를 설치하자는 국민들의 의료 개안 촉구에 의사들이 반기를 들었다. 의사의 권위가 박탈된다는 것이다. 수술실 안에서 의사의 권위가 떨어질 일이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 수술실에서는 수술만 하면 되는 일 아닌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고 수술에 최선을 다하면 카메라가 있든 없든 그게 권위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의사의 권위가 환자의 안전한 치료보다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권위는 환자의 안전한 치료를 보장할 때 생기는 것 아닌가. 물론 카메라가 있든 없든 환자에게 진심인 의사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료사고에 관련된 보도나 피해자 가족들이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본다. 우리도 다음 피해자가 없도록 의사를 상대로 법적 책임을 물었어야 하지 않나 후회를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도 다른 방법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촌들은 수술비 면제와 약간의 위로금(어떤 위로도 될 수 없는)을 받았을 테고 먹고살기 바빴던 이모의 가족들도 그것이 최선이라 여겼던 듯하다.      


이모가 죽은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사촌 A의 종적이 묘연해졌다. 동생들과 외삼촌이 수소문했지만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숨바꼭질하다 어디로 숨어 잠들어버린 아이처럼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피라미드 다단계에 빠졌다,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 여러 잡 소문이 있었는데 사촌 A를 찾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남을 해치는 성정은 못 되는 아이라는 건 다 알고 있어서 그저 제 몸 하나 건사하길 바랄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흐르던 시곗바늘이 한 곳에서 교차하게 되었다. 경찰이 사라진 사촌의 행방을 알려온 것이다.

사촌은 눈이 쌓이고 녹고를 반복하던 그 겨울, 서대문 어느 공원에서 차디차게 얼어 객사한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사촌은 갑작스럽고 매서운 그의 혼돈을 고요 속에 얼려버렸다. 우리는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무엇도 알 수가 없었지만 그 아이의 혼돈 속에서 ‘어머니’는 폭풍의 눈이었다는 것을 짐작한다. 

나는 갓 태어난 둘째의 눈을 들여다보며 사촌 A를 생각했다. 외로웠을 것이다. 외로웠을 것이다. 지금은 엄마를 만났니? 하고 되뇌다 울었다. 


죽음은 언제나 외로운 길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놓고 떠나는 것은 나의 죽음보다 그들을 볼 수 없다는 그리움 때문에 영원한 외로움이 되고 만다. 하지만 너의 그리움은 성냥팔이 소녀의 꿈처럼 현실에 있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는 언제부터 잠이 들었던 것일까.

숨바꼭질이 끝난지도 모르고 잠들었던 아이가 어둠에 놀라 집으로 뛰어간다. 

텅 비어 있는 집을 보고 아이는 폭풍 속으로 우산도 없이 걸어간다. 

엄마가 집에 없어요. 엄마, 엄마? 

몸만 커다래진 아이가 유령처럼 부유하며 흐흐흡 흐흐흡 운다. 

폭풍으로 헤집어진 아이는 해골처럼 따그닥 따그닥 이를 부딪치며 흐흐흡 운다. 

너는 네가 어떻게 태풍의 눈으로 들어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엄마의 품처럼 따뜻하고 고요한 그곳으로.

이모, 아기에게 젖을 물리세요. 자장가를 불러주세요. 

남아있는 이모부는 씹어도 삼켜지지 않는 이물감을 느끼며 과거의 어느 지점에서 제거하지 못한 가시를 두고 영원히 후회할지도 모른다. 개운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에겐 개운한 과거란 있는 것인가. 

억울하고 아픈 것은 기억된다. 켜켜이 묵어 지워지지 않는 때처럼. 

이모, 이모가 안고 있을 그 아이의 동생은 가장이 되어 가정을 이루고 건강하게 살고 있어요. 그들의 안위를 지켜주세요. 달콤한 자장가를 불러주세요. 아카시아 벌꿀처럼 달콤한 자장가를요.

나도 모르게 입술을 핥는다. 이제는 트지도 않는 입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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