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넥서스> 독서 모임 1부

진실과 질서,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by 헤이터의 서재

독서 모임 '결갈피'에서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문학 책은 처음이라 다소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막상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니 인류가 쌓아온 정보의 역사를 따라가는 여정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인간이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믿고, 그 결과 어떤 생각을 하며 공동체를 만들어왔는지 들여다보는 과정은 마치 거대한 지적 탐험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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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보다 강력한 '연결'의 힘

책의 여러 내용 중, '점성술사'와 '천문학자'의 예시가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천문학자는 물리 법칙을 통해 별에서 객관적 정보를 도출하지만, 점성술사는 별자리에서 상상하는 정보, 즉 유사과학을 읽어냅니다.

과거 ‘순진한 정보관’을 가진 이들은 우주에 대한 진짜 정보가 많아지면 사람들이 자연스레 점성술 같은 유사과학을 버릴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오하아사, 타로, MBTI 같은 다양한 유사과학을 즐겨 찾습니다. 이는 정보가 반드시 ‘진실’이기에 힘을 갖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를 휩쓴 MBTI 열풍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MBTI가 과학적으로 완벽한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E’와 ‘I’라는 간단한 코드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강력한 유대감과 소속감을 느끼는 ‘연결의 수단’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하라리의 말처럼,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이 무제한으로 접속할 수 있는 거대한 연결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을 원하는가, 질서를 원하는가

토론은 자연스럽게 ‘진실과 질서’의 관계로 깊어졌습니다. 종교, 국가, 법, 화폐 등 인류 사회를 지탱하는 거대한 시스템들은 객관적 진실이라기보다는 수많은 사람이 함께 믿기로 약속한 ‘허구적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이 이야기의 진실 여부를 파헤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사회 질서는 순식간에 흔들릴 것입니다. 때로는 사회의 본질을 모르게 하는 ‘무지’가 질서를 유지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이 지점에서 ‘진실과 질서의 밸런스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라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모임에서는 아이스브레이킹으로 "평생 고통스러운 진실만 알고 살기 vs 평생 달콤한 거짓(질서) 속에서 행복하게 살기"라는 밸런스 게임을 진행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 약과 파란 약의 딜레마는 "만약 20년간 함께한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진실을 파헤칠 것인가, 혹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모른 척할 것인가?"와 같은 현실적인 질문으로 이어지며 토론에 불을 지폈습니다. 저는 제 신념에 따라 고통스럽더라도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2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 앞에서 쉽게 진실만을 택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정답 없는 질문을 시작으로, 우리는 진실과 질서의 무게에 대한 깊은 논의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서류 현실'과 신화

거대한 담론은 ‘관료제’라는 현실적인 주제로 이어졌습니다. 회사에서 실제 업무보다 서류상의 절차나 결재가 더 중요하게 취급되는 ‘주객전도’를 경험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라리가 말한 ‘서류 현실(Paper Reality)’이 바로 우리 일상이었던 것입니다.

과거에는 인간이 만든 서류가 현실을 지배했다면, 미래에는 AI 알고리즘이 만드는 데이터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입니다. AI가 내린 신용등급, 채용 여부, 범죄 예측이 인간의 실제 삶보다 더 절대적인 권위를 갖게 될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인간성을 지켜낼 수 있겠습니까?

더 나아가 우리가 속한 조직을 유지하는 ‘신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 회사는 세상을 바꾸고 있다" 같은 비전은 여전히 유효한 신화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 같은 분위기다"와 같은 슬로건은 더 이상 구성원을 묶어주는 동력이 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오히려 요즘은 강압적인 단합보다 사내 동호회나 취미 기반의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자발적인 결속력을 다지는 모습이 새로운 형태의 '조직 신화'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리더의 입장에서 비전 제시는 필수적인 전략일 수 있지만, 시대에 맞지 않는 신화를 강요하는 것은 기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를 가두는 정보의 벽을 넘어서

결국 <넥서스>는 우리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진실을 지키기 위해 질서를 포기한 경험이 있습니까?
혹은, 질서를 지키기 위해 진실에 눈감은 적은 없습니까?
지금껏 내가 믿어온 수많은 정보와 이야기가 사실은 허구였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금까지는 저의 신념과 반대되는 정보를 애써 외면해왔던 것 같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저와 다른 목표와 방향을 정해도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갈 뿐, 깊은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나와 밀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저도 새로운 사실을 배우고, 반대로 그들에게도 좋은 영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제가 더 깊이 고민해봐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독서 모임은 당연하게 여겼던 정보, 진실, 그리고 우리가 발 딛고 선 사회 시스템을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당신의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이야기는 과연 ‘진실’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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