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차 시 숙제-도입부 다시 쓰기
“나는 동생한테는 엄마야.”
아홉 살 손녀가 어느 날 조용히 내게 건넨 그 말은, 빗물이 가슴속에 고이듯 서늘하게 스며들었다. 첫돌 지난 동생을 재우고, 기저귀를 갈고, 조막만 한 손으로 먹을 것을 챙기던 아이의 모습이 떠오르며 마음이 아릿했다.
사위는 밤늦게야 집에 닿았고, 남매는 빈집을 지키며 두려움을 견뎠다.
“할머니, 밥은 어떻게 지어요?”
전화기 너머로 전해진 배고픔과 외로움이 심장 깊은 곳에 비수처럼 내려앉았다. 닿을 수 없는 거리는 불안을 안개처럼 피워 올렸다. 그즈음 사위는 나의 잦은 설득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은 이미 제주 바람결로 향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을 기다리던 어느 저녁, 남편이 물었다.
“우리는 손주들을 어떻게 키울까?”
그 말은 방 안에 오래 머물렀다. 우리 둘 다 일터에 몸을 두고 있었지만, 마음만큼은 이미 아이들 곁으로 기울어 있었다.
“잘 키워야지.”
그 한마디는 짧았으나 바위처럼 무거웠다. 자녀를 키우던 시절에도 서툴기만 했던 내가, 다시 누군가의 울타리가 될 수 있을까. 그 물음이 스치듯 지나갔지만, 아이들이 기댈 품이 되고, 그들의 앞날에 작은 빛이라도 건네야 한다는 결심은 오래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손주들은 올여름 제주로 왔다. 손자는 나를 ‘엄마’라고 부른다. 말이 늦어서일 테지만, 그 부름은 마음 깊은 곳을 잔잔히 일렁이게 한다. 그래, 나는 아이에게 엄마나 다름없다. 아이들과의 하루는 바쁘게 흘러간다.
아침이면 작은 목소리가 집을 깨우고, 저녁이면 어린 손길이 나를 끌어안는다. 고단함이 허리를 휘게 하는 날도 있지만, 그 틈새로 행복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아이들이 터뜨리는 해맑은 웃음은 내 노년의 시간을 비추는 새벽불빛 같다.
자녀를 키우던 때 나는 늘 서둘렀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아이들의 웃음도, 눈빛도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러나 손주들과의 시간은 다르다. 구름 흐르듯 천천히, 웃음과 손길을 오래 느끼고 싶다.
까르륵, 까르륵.
집 안에 퍼지는 그 웃음소리. 얼마만인가. 나도 모르게 입가가 풀린다. 텅 빈 둥지에 다시 봄빛이 스며들고,
빛바랜 가구에 온기가 돌며, 오랜 묵은 침묵 사이로 사람 내음이 구들장처럼 따사롭게 번져온다.
서랍 속에 넣어둔 글을 다듬어 올립니다.
아래는 서랍 속 글.
까르륵, 까르륵.
집 안에 퍼지는 웃음소리. 얼마만인가. 나도 모르게 입가가 풀린다. 텅 빈 둥지에 다시 봄빛이 스며든다. 빛바랜 가구에 온기가 돌고, 오랜 묵은 침묵 사이로 사람 내음이 구들장처럼 따사롭게 번져온다.
어느 날, 아홉 살 손녀가 말했다.
“나는 동생한테는 엄마야.”
순간, 빗물이 가슴속에 고이듯 스며들었다. 첫돌 지난 동생을 재우고, 기저귀를 갈고, 조막만 한 손으로 먹을 것을 챙기는 아이의 모습이 아렸다.
사위는 밤늦게 돌아왔고, 남매는 빈 집을 지키며 두려움을 견뎠다. 어느 날 손녀가 조심스레 말했다.
“할머니, 밥은… 어떻게 지어요?”
전화기 너머로 흘려온 배고픔과 외로움이 내 심장 깊은 곳에 내려앉았다. 닿을 수 없는 거리는 불안을 천천히 피워 올랐다.
아이들을 기다리던 어느 저녁, 남편이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키울까?”
그 말이 방 안에 오래 머물렀다. 우리 둘 다 일터에 몸을 두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아이들 곁으로 기울어 있었다. 고민을 길지 않았다. 나는 사표를 결심했다.
“잘 키워야지.”
그 한마디는 짧았으나 바위처럼 무거웠다. 자녀를 키울 때조차 서툴렀던 내가 다시 누군가의 울타리가 될 수 있을까. 그 물음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러나 아이들이 기댈 수 있는 품이 되고, 그들의 앞날에 작은 빛이라도 되어주겠다고 다짐을 했다.
손주들은 올여름 제주로 왔다. 손자는 나를 ‘엄마’라고 부른다. 말이 늦어서이겠지만, 그 부름은 내 마음 깊은 곳을 일렁이게 한다. 그래, 나는 아이에게 엄마나 다름없다. 아이들과의 하루는 바삐 흐른다. 아침이면 작은 목소리가 집을 깨우고, 저녁이면 어린 손길이 나를 끌어안는다. 고단함이 허리를 휘게 할 때도 있지만, 그 틈새로 행복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아이들이 터뜨리는 해맑은 웃음은 내 노년의 시간을 비추는 새벽 불빛 같다.
자녀를 키우던 시절, 나는 늘 서둘렀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아이들의 웃음도, 눈빛도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러나 손주들과의 시간은 다르다. 구름 흐르듯 천천히, 웃음과 손길을 오래 느끼고 싶다. 손주들은 우리 부부가 다시 살아갈 힘을 잇게 해주는 선물이다. 그들의 웃음은 내 안에 새로운 날개를 달아주고, 다시 살아갈 방향을 밝혀준다.
까르륵, 까르륵.
그 소리가 퍼지는 집 안에서 행복의 돛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