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강 숙제 - 나만의 비유적 에세이 쓰기
파란 도화지 위로 구름이 물결처럼 떠밀려온다. 바람이 이끄는 것인지, 구름이 앞서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흐름 속에서 가을의 잔해는 낙엽처럼 흩어져 모퉁이로 밀려간다. 눈비를 맞으며 사그라진 자리 위로 서리가 내려앉고, 겨울의 발자국이 느루하게 찍힌다.
시린 하늘은 홍시처럼 부드러운 빛으로 번진다. 바람은 서늘해지고, 억새는 파도의 포말처럼 흩뿌린다. 겨울바람에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든다. 굳어진 어깨 위로 잔빛이 잠시 머문다. 노을은 고단함을 풀어주는 쉼표 같다. 숨 가빴던 하루의 무게가 노을빛 속으로 스민다.
조각구름으로 무늬를 그리던 서녘 하늘은 마지막까지 남겨 두었던 숨을 천천히 뱉으며 붉게 물든다. 벌겋게 달아오르던 빛이 이내로 접어들자 살구빛으로 옅어지고 어스름한 푸른 기운이 번져든다.
나는 해 질 무렵, 지평으로 내려앉는 빛에 마음이 끌린다. 태양은 하루를 일으켜 세우는 강한 에너지를 뿜어내지만, 하루를 지탱해 온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것은 어둠이 내려앉기 직전의 빛이다. 그 찰나에 소란했던 순간들은 잠시 멈춘다. 저녁 공기에 이끌려 느루 걸음으로 그 빛에 머문다. 울부짖던 바람도, 새들도 해안 단애에 머물며 숨을 고른다. 정적인 멈춤이다.
이른 아침의 붉음과 정오의 압박감은 어느새 발끝으로 내려와 힘을 놓는다. 태양이 바다와 맞닿자 금빛으로 잔물결을 일렁인다. 곧 어둠이 모든 윤곽을 삼키겠지만, 사라지기 직전의 잔해는 여전히 발끝을 적신다. 나는 그 환영에 잠시 머문다. 끝을 알 수 없는 흐름을 따라 모퉁이를 돌고 또 돌아도 길은 반복된다. 발걸음은 집으로 향하지만, 마음 한편의 허전함은 바람 끝에서 흔들리는 풀잎 같다.
어둠이 완전히 스며들 무렵, 집집마다 하나둘씩 불빛이 켜진다. 오렌지빛과 하얀 불빛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저마다 온기를 밝힌다. 그 불빛 앞에서, 하루가 느루게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