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정윤-제11강, 여행에세이-강진이 생각나게 하는 것들
그분은 여러 번 인사했다. 한강 캠프 때 주최 측이 마련한 음식을 내가 빛나게 했다고 했다. 나는 돼지고기를 쌈할 된장과 회에 싸 먹을 묵은지를 준비해 간 것뿐인데 말이다.
그런 연유로 강진 여행 때 묵었던 ‘임이랑 농장’에 김치를 부탁해 여러 곳에 선물했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그 집에서 일주일을 살아본 덕분이다. 여행 기간 동안 현지 식자재로 직접 저녁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푸소에서 안내한 여러 숙소 가운데 임이랑을 골랐다.
그해 가을의 끝자락, 어디 한 곳은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강진에 사는 친구와 ‘강진’을 이야기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함께 떠오르던 사람이었다.
주인댁과 나란한 별채 숙소는 한적하고 깔끔했다. 목욕 시설과 주방 기구가 잘 갖춰진 별도 공간이라 두 팀이 묵기에도 좋고, 대가족이라면 한 가족이 사용하기에도 불편함이 없었다.
여행 첫날, 도착했을 때는 안 계셔서 인사를 드리지 못했는데 바깥 어르신은 이미 아침을 드셨다며 우리만 식사를 하게 하셨다. 다음 날 아침은 함께 먹자고 권해 두었다. 나는 어른들과의 짧은 대화만으로도 그 깊이를 알아본다. 시골에 사는 지긋한 어른에게서 우리의 정신적 지주가 느껴진다. 아들 며느리와는 적당한 거리를 지키고, 조상을 모시는 일에도 분명한 소신이 있다. 문중의 일과 마을 일을 함께 돌보며, 하룻밤 묵는 길손에게조차 인품이 드러난다. 나는 그분의 멋스러움을 단번에 알아봤다.
무엇보다 그분은 내 초임지의 곽 장사님을 알고 계셨다.
주인장 부부의 성을 따서 지었다는 ‘임이랑 농장’이라는 상호는, 짐짓 아닌 척하지만 ‘내 임이랑’이라는 뜻이 숨어 있다는 것도 알아챈다.
아침은 주인댁에서 마련해 주는 밥으로 하루를 연다.
상에 오르는 반찬들이 하나같이 정겹다. 파를 데쳐 돌돌 말아 양념장에 찍어 먹는 파 숙지, 방 앞마당 거적 안에서 자라는 표고버섯볶음, 서로 떼주면 안 된다는 깻잎장아찌, 삼 년 묵은 배추김치, 아침에 쑤었다는 도토리묵 무침, 대밭에서 직접 캔 죽순 무침, 여자만 꼬막무침, 꼴뚜기젓, 말갛게 볶아낸 멸치볶음, 알맞게 익은 홍갓, 그리고 민어튀김과 소고기를 듬뿍 넣은 미역국까지. 영락없는 엄마 밥이다.
이른 새벽임에도 이런 아침이 전혀 부담되지 않는 이유다.
이 많은 음식에 얽힌 ‘강진’의 첫 기억은 내 소싯적 친구를 불러온다.
스무 살 초반, 초등학교 동창이던 그 친구는 조금 일찍 시집을 갔다. 강진으로.
나만의 기억이다. 그 친구의 결혼식은 시댁에서 치러졌다. 모든 식이 끝나고 친구들은 안방으로 안내받아 시댁에서 마련한 잔칫상을 대접받았다. 아마도 부잣집이었는지, 상은 어마어마했다. 왁자한 흥겨움이 잦아든 뒤라 내 눈은 자연스레 음식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곶감 탕이었다. 막 그릇에 손을 대려는 순간, 신랑이 냉큼 집어 들고는 벌컥벌컥 들이마시는 게 아닌가. 그때의 허탈함이라니.
며칠 뒤, 선배 몇이 모인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중 한 선배가 말했다.
“그 곶감 탕, 내 결혼식에서 먹어라.”
나는 몇 해 동안 은근히 기대했지만, 그럴 일은 끝내 없었다.
그 말은 약속이 되지 못했고, 우리는 서로를 향해 가던 마음에서 비껴섰다.
강진 하면 곶감 탕, 곶감 탕 하면 그 선배가 떠오르게 되었다.
강진은 그렇게 남아 있다.
음식의 온기와 끝내 오지 않은 약속과,
시간이 지나 다시 돋아나는 어떤 감각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