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리더쉽 상담
리더를 포기한 엄가가 답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육아 및 가사에 많은 시간을 쏟지 않는다. 아이들도 스스로 알아서 잘하고, 시어머님이 살림이며, 아이들 케어도 다해주신다.
나는 일만 잘하면 되는 상황인데, 어쩜 그 일이 이토록 어려운지 모르겠다.
만약 내가 조직 생활이 아니라 처음부터 창업이나 다른 진로를 선택했다면 우울증이 걸리지 않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본 적 있다.
이미 월급의 노예가 되어 아이들 키우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우울증과 동행하기로 결심했지만 말이다.
내 MBTI는 ENFP이다. 재기 발랄한 활동가! 대학시절 영국 어학연수, 미국 교환학생, 유럽, 호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등 배낭여행을 하는 모험을 즐겼다.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의 인생을 듣고 공감하고 배우는 게 좋았다. 두 번째 우울증을 심하게 격고 1년간 휴직하며 회사를 떠나 있으며 유화 그리기, 요가, 마크라메 등을 배웠는데 재미있고 나름 소질이 있다는 소릴 들었다.
반면에 남편은 ESTJ이다. 내가 부러워하는 회사에서 일 잘하는 사람들 유형이다. 논리적이고, 계획적이고, 이해력 빠르고, 말 잘하고, 한 번에 할 수 있는 일을 두 번 하는 것을 엄청 싫어하며, 숫자로 이야기하는 사람.
남편은 나의 세 번의 우울증을 모두 옆에서 지켜봤다. 신입사원 시절 첫 번째 우울증이 왔을 때 우리 부모님은 내가 어떻게 될까 봐 대전에서 회사로 짐가방을 싸들고 기차를 타고 부랴부랴 내려오셨다.나를 당장 회사를 그만두게 해야겠다며 짐을 챙기러 오신 것이다. 그때 남편은 우리 부모님께 다 큰 성인을 부모님이 이렇게 데려가는 것은 아니라고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우리 부모님께 회사생활이 장난이냐며 내가 극복하게 두라고 우리 부모님을 돌려보냈다. 두 번째 우울증은 내가 남경 출장 중에 심하게 겪은 거라 정신과 약을 챙겨서 남경으로 약을 배달을 해주며 약효가가 나면 좋아질 것이라고 하고, 이번 세 번째 우울증 때는 휴가를 내라, 휴직을 해라, 약조절을 하라고 할 정도로 나의 우울에 대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하지만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남편의 현실적인 조언은 가끔 나를 더욱 위축 들게 만들곤 했다.
“ 뭐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넌 포기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
“ 네가 노력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그건 노력이 아니냐 하기 싫어서 몰입이 안되는 거야. 노력은 그렇게 하지 않아”
“ 대한민국 70% 가 하는 직장생활을 왜 못하겠다는 건지 난 이해는 안 가”
“ 연차가 높아지면 더 도전적인 업무를 해야지, 그렇지 않은 건 도둑놈 심보지”
남편은 입사 초기 때부터 조기 진급을 수차례 했고, 별도 사이닝 보너스를 받으며 인정받으며 회사 생활을 했다. 365일 중 360일은 출근을 하며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그렇지만 회사가 어려워지며 남편에게는 조직장의 기회가 오지 않았다. 리더를 원하는 이는 리더를 못하고, 리더 역량이 부족한 내가 리더를 하니 남편도 뭐가 삶의 답이라고 하긴 어렵다며 이야기하는 그 사람의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성적인 조언 보다는 가끔 감성적인 공감이 필요한 순간이 많았다.
아이들 둘은 올해 학급 회장, 부회장이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이 첫 학급회의를 했는데 회장은 절차에 따라 회의 진행을 하고 정해진 대본 대로의 발언만 할 수 있다며 시무룩했다. 회장은 의견을 낼 수 없고, 반 친구들에게 의견을 말하라고 하면 절반 정도의 아이들은 딴짓을 하고 집중하지 않아서 속이 상했다고…
난 속상했겠구나 공감해 주고, 어떤 회사의 면접이야기를 해주었다. 6명을 하나의 주제로 3시간 정도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을 뽑는데 어떤 사람은 잘났다고 본인 이야기만 계속하는 사람, 자기 의견을 안내는 사람 등등 어수선한 와중에 어떤 이는 토론을 중재하하며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의 의견을 기분 나쁘지 않게 정리하고, 이야기 안 하는 사람의 의견을 끌어내고 결국 똑같이 6명에게 동등한 시간을 부여하는 진행 능력을 가진 사람이 뽑혔다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 대표적인 예가 유재석 씨라고….
너도 그런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아이디어가 많으니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해줬다.
아들한테 엄마는 리더를 포기했다는 소릴 하지 못하고, 리더의 고민 상담을 주제넘게 해 주었다.
리더를 하고 싶지만 못한 사람, 리더를 했지만 능력이 안 돼 포기한 사람, 리더를 하고 있지만 내 맘 같지 않게 상사(선생님)도, 팀원(친구들)도 안 따라 주는 사람…
누구의 고민이 더 크고, 작고는 모르겠지만 인생의 정답은 없으니까 다들 각자의 리더쉽에 대한 고민으로 한 뼘 성장하고 배움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