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분노버튼

남편

by 제니퍼

스크루지 버금가게 가족에게만 알뜰한 남편이 웬일로 최근 맛있는 생선구이집을 발견했는데 20일 이후 가격이 오른다며 가족들과 외식을 하자고 했다. 그의 마음이 바뀔까 봐 얼른 아이들을 채근해 그 식당으로 출발했다. 허름한 식당은 금세 손님들로 가득 찼고 음식 역시 너무 맛있었다.


정신줄을 놓고 식사를 마친 나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 남녀공용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이 잠기지 않은 걸로 보아 안에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손잡이를 잡아 돌려 화장실 문을 열려는 순간 갑자기 문이 확 열리며 내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너무 아파서 소리도 못 낼 정도였다. '퍽'하고 넘어지는 소리를 듣고 종업원이 와서 "괜찮냐"라고 물어봤고 한참 뒤 온 남편은 눈을 내리깔며 "그러니까 주변을 보고 다니라고 했지! 거긴 앉아있는 곳이 아니니 일어나! "라고 말했다.


'일어날 수 있었으면 벌써 일어났다! 이 놈아!'


속에서는 천불이 나고 서러웠지만 거기 앉아있는 것도 부끄러워 절뚝거리며 일어나 자리로 돌아왔다. 다리와 팔에 퍼린 멍이 들어있었다. 식당을 나오자마자 남편은 큰아이 이름을 부르며 "너도 항상 주변을 살피라고! 주! 변! 을!"라며 죄 없는 큰아이에게 잔소리를 시작한다.


절뚝거리며 집까지 걸어가는 길. 아이들 춥다고 남편이 파워워킹을 하며 아이들을 채근해 지 먼저 집으로 갔고 나는 세정거장이나 되는 길을 혼자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데 서러워 눈물이 난다.


'그래, 저 인정머리 없는 인간이랑 끝내자!'


집 앞에 다다르자 남편이 밖으로 나오는 게 보였다.


'너 지금 잘 만났다!'


나는 단호하고 낮은 목소리로 "너처럼 인정머리 없는 인간과는 이혼을 할 테니 그런 줄 알라"라고 통보하고 냉큼 집에 들어가 겉옷 한벌을 가방에 싸들고 집을 나왔다. 밖은 춥고 갈 곳은 없었다. 모텔을 혼자 들어가자니 무서웠고 호텔을 가자니 돈이 아까웠다. 기차를 타고 친정을 갈까? 혼자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검은 그림자 하나가 앞을 가로막아 섰다.


"집에 가자!"


남편이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출현에 너무 놀란 나는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나자빠 질 뻔했다. 한편 남편의 면상을 마주하자 또 혈압이 오르기 시작했다.


"사람이 다쳤으면 괜찮냐고 물어보는 게 먼저지, 주변을 잘 살피라고 잔소리를 하냐! 그리고 일어날 수 있었으면 일어났지 내가 거기가 좋아서 앉아있었겠냐!"


서러움에 악다구니를 쓰는데 발은 욱신거리고, 날은 추웠으며, 무엇보다도 집에 있는 아이들이 걱정되었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못 이기는 척 집으로 따라 들어왔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는데 서럽고 아프다.


그. 런. 데.


문득


'나는 남편과 같은 실수를 한 적이 없었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이 실수해서 다쳤을 때 나 속상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괜찮냐?" 보다 "그러니까 엄마가 조심하랬지"를 더 많이 말하지 않았나?


요즘 5학년인 큰아들이 나만 보면 짜증인데 어쩌면 나의 분노버튼이 남편이듯 큰아이의 분노버튼이 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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