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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 Jul 06. 2023

Amour

병든 부모가 너무 오래 사니 자식은 불효가 된다

아침 산책 중에 동물병원 원장을 만났다. 매일 걷는 길에 병원이 있는데 가끔 출근하는 원장을 만난다. 세 놈을, 그러니까 죽은 아이들까지 치면 다섯 놈을, 6년 넘게 데리고 다녔으니 꽤 친할 수밖에 없다. 이른 아침인데 선글라스를 쓰고 출근하는 게 웃겨서 아니 무슨 흑장미파 두목이냐고 농을 했더니 당황스레 심각한 대답을 한다. 어제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단다. 엄마 아빠 때문에 울었단다. 요양병원에 있는 아픈 아빠가 불쌍해서 울었냐니까 아니란다. 자신의 처지가 불쌍해서 울었단다.


벌써 2년이 넘었나. 엄마가 곧 죽을 것 같아 병원에 입원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갈 수도 없었고 병원에 반강제로 갇혀 있는 누나와 매일 통화해서 상황을 듣고 의논을 했다. 마침 애들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을 때 누나가 전화를 하는 바람에 병원 원장이 내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자신도 아버지가 쓰러져 몇 년째 요양병원에 있다는 말을 했다. 하긴 우리 나이면 부모가 돌아가셨거나 아직도 살아있다면 이런저런 병으로 자신은 물론 가족들 모두가 고생하는 게 일반이다.


원장은 이제 예순인데 힘들어 병원을 그만두고 싶지만 요양병원에 있는 아버지 치료비와 간병비가 매달 오백만원이 넘는지라 일을 그만 두지도 못한단다. 교수인 오빠가 있지만 한 푼도 주지 않고, 남편도 자기 사업이 힘들어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다. 힘들게 번 돈은 모두 아버지 병원비로 들어가고, 혼자 남은 어머니도 돌봐야 하니, 아무리 효녀라 해도 힘든 일이다.


Amour 영화를 봤다. 칸 황금종려상 수장작이란다. 80이 넘은 부부의 사랑 이야기다. 아내는 마비가 온 후 점점 악화되어 혼자 걷지도 못하고 대소변을 받아줘야 하고 점점 더 기억도 말도 상실된다. 그런 아내를 돌보는 늙은 남편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다. 아내를 그렇게 잘 돌보니 존경스럽다고. 과연 남편은 사랑으로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있는 걸까. 그럴 리 없다. 내가 그렇고 내 주위의 사람들을 보면 보통의 인간은 결코 그럴 수 없다. 남편은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돌연 베개를 들어 아내를 질식사시킨다. 난 다 이해가 됐다. 저게 살인인가. 그동안 감내한 사랑과 희생이 거짓이고 위선이었단 말인가. 아무 가능성이 없다. 끝이 정해진 길을 같이 힘들게 갈 뿐이다. 극진한 병간호로 아내가 좋아진다면 그건 다른 얘기겠지만, 그저 죽어가는 고통스러운 과정일 뿐이다. 그저 하루하루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거다. 아무런 희망도 기쁨도 보람도 없다. 그런 걸 경험한 사람이라면 죽은 것과 다를 것 없는 아내를 진짜로 죽인 늙은 남편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수명의 마지막 10년은 병들어 지낸단다. 건강수명은 생각보다 짧다. 회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가 되면 살아있는 게 죽음만 못하게 된다.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하고 두려울까. 참기 힘든 통증이 있고 숨을 쉬지 못하는 고통은 상상만 해도 두려운 공포. 그렇게 살아서 하는 일이란 가족을 힘들게 만들고 어떤 이들의 돈벌이에 보탬이 되는 것뿐이다. 그러니 삶이 악이 되어버린 늙고 병든 이가 죽으면 그동안 고통당했던 모두가 안도하며 기뻐한다.


아픈 엄마를 돌보느라 나보다 더 고생이 많았던 누나는 엄마가 죽으면 슬퍼할까 후련해할까. 늙고 병든 엄마를 돌보는 나는 엄마가 죽으면 슬퍼할 것 같지 않다. 그저 무거운 짐을 벗은 후련함에 안도할 것 같다. 나도 늙었는데 내 소중한 삶을, 시간을, 빼앗고 있는 엄마. 미안해하지도 고마워하지도 않는 얄미운 엄마. 엄마가 죽으면 나는 빼앗긴 내 삶을 되찾았으니 기뻐할 지경일 거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오래 모시다가 상을 당한 후배가 있다. 형제들 간 사이가 나빠졌고, 어머니 때문에 온 집안이 우울했단다. 장례식장에는 슬픔과 아쉬움은 없었다. 후련함과 감사함 뿐이었다. 다 이해가 됐다. 슬퍼 울지 않는다고 그 자식을 불효라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치매나 다른 병으로 아픈 늙은 부모를 돌보고 모셔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는 말은 그동안 힘들었던 유가족에게는 자신들을 이해해 주는 진정한 덕담이다. 부모가 일찍 죽으면 슬프나, 너무 오래 살고 아프면, 자식들 마음엔 불효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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