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방에는 시간이 멈춘 채로 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앳된 신랑, 신부 결혼사진이 안방에 그대로 걸려있다.
아버지 열여섯 어머니 열일곱 살 때이다.
부모님이 생전에 계셨던 대문만 보아도 마음이 울컥한다.
대문 한쪽 편지함에는 혓바닥 내밀듯 우편물이 날름거리고 있다.
큰 나무 대문 밀치면 삐그덕 소리가 났다. 엄마가 틈틈이 풀 뽑고 가꾼 푸른 잔디는 마당에서 누운 채로 반긴다.
" 니그들 온 줄 알았으면 밥을 해놀건디, 미리 전화흐제 그랬냐"
몇 칠전부터 엄마 보러 가요 몇 번이나 일렀건만 언제부터인가
금방 잊으시고 처음 듣는 것처럼 하셨다.
작은 텃밭에서 고들빼기도 채취해서 김치도 담갔다.
"맛난가 모르것다 그냥 조물조물했다"
솔도 베났승게 니기들이 전을 부치던지 오이랑 같이 무쳐묵 던 지 해라 "
그냥 주물 주물 했다는 고들빼기김치는
밤채 썰고 갖은양념으로 담가두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엄마의 시간표가 멈췄다.
안방에는 지나간 달력이 그대로 걸려있고 밥통에는 밥이 눌어붙은 채 있었다.
" 밥 묵을라고 봉께 밥이 없드라" 금방 쌀 씻어서 흐면된다
불 때서 밥 한 것도 아니고 전기가 밥 해준디 먼 걱정이다냐.
가끔 학원에서 퇴근하고 오는 길에 전화드리면 지금 몇 시냐?
아침이냐? "아니 지금 밤 열 시 좀 넘었는디요"
그래 내가 언제부터 잤는가 모르것다. “저녁밥은 드셨어”?
금매 모르것다. 점점 어머니 기억이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어머니 살아생전 어제 일처럼 떠오르는 추억과 함께 고향으로 가는 날이다.
부엌문 밀치고 나서면 키 맞추고 나란히 서있는 장독대가 있었다.
오늘처럼 눈이 내리는 날에는 하얀 이불 푹신하게 뒤집어쓰고 눈사람이 되었다.
항상 땅 밑에 묻어있는 장독대위에도 소복이 눈이 쌓였다. 김장철이 되면 깨끗하게 씻어냈다.
새 또랑 밭에서 뽑아온 어른 주먹보다 좀 더 큰 조선무 씻어서 독 안에 차곡차곡 쌓았다. 속이 노랗게 꽉 찬 배추도 사이사이에 실고추, 대추 채 곱게 썰어 넣고 깨끗한 짚으로 묶어 넣었다.
옛날 할머님이나 어머니는 소금 몇 컵, 물 몇 리터, 무 몇 개 필요 없었다.
무가 해년마다 똑같이 자라지는 않았다.
무조건 독 안에 들어갈 만큼 무를 넣었다.
소금은 우리 집 놋 대접 나중에는 스텐으로 바꾸었지만 두 대접 정도 무 사이사이에 뿌렸다. 생강, 마늘도 꽁꽁 찧어서 베주머니에 넣고 독 안에 푹 집어넣었다.
묻어둔 항아리 크기에 맞추어 양철로 된 바케스로 두 개만 물을 부으면 간이 딱 맞아떨어졌다.
마무리로 대파. 무청, 청 갓, 대나무 잎으로 무를 덮었다.
그리고 싱건지 단지에 짚으로 만든 토시로 멋을 내고 뚜껑을 닫았다.
가을걷이할 때 미리 속은 무로 싱건지 담아서 먹어도 시원하니 맛있었다.
김장 때 담은 싱건지는 동짓날 팥죽 끓이고 나서 처음으로 꺼냈다. “잘 익었는가 모르것다.
조롱박으로 뜬 싱건지 국물을 맛보았다.
간도 맞고 시원하니 톡 쏘는 맛으로 흡족해하셨다.
(곡성 섬진강 문화원)
오늘처럼 눈이 내린 날에는 장독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뚜껑을 열었다.
무청 속에 숨어 있는 무를 꺼내고 조롱박으로 지그시 누르면 싱건지 물이 푹 올라왔다.
한 바가지 뜨고 무도 서 너 개 담아서 할머니 상에는 가는 채로 곱게 썰었다.
삼촌들 상에는 툼벙 툼벙 썰어놓았다.
찬바람 날 때 열었던 풋고추가 익지 않고 고추 대 매달린 채 뽑혀 리어카에 실려왔다.
틈만 나면 어머니는 뚝 뚝 따서 장에 담 궈 놓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푹 삭은 고추가 연한 빛으로 변해 있었다.
쫑쫑 썰어서 깨소금 듬뿍 넣고 양념장 만들었다. 싱건지 넣고 참기름 한 방울 쳐서 밥 비벼 먹으면 그날 저녁 진수성찬 못지않게 맛난 냄새가 진동했다.
손님 오신 날에는 짚으로 묶어두었던 잘 익은 배추를 꺼냈다.
배추 속에 넣어두었던 실 고추와 대추채,
청각이 노랗고 빨갛고 파랗게 하얀 사발 안에서 꽃을 피웠다.
톡! 쏘는 맛을 보려고 해년마다 싱건지를 담는다.
그래도 옛날 뒤 곁 장독대에서 익었던
그 맛은 감히 낼 수가 없다.
엄마 손 맛이 따로 있나 봅니다.
엄마만의 손맛이~
엄마 기일을 앞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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