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목: 무쇠솥 아궁이에선 통장작이 활 활 타고 엿물이 설설 끓었다.
페이스 북에서 퍼옴 (이동섭 화가 작)
우리 동네 윤 씨 아저씨 집 앞 공터에는 겨울에도 햇볕이 잘 들었다. 설이 가까워지니
뻥 튀기 아저씨 부부와 아들이 함께 담벼락 기대고 진을 쳤다.
뻥! 튀는 소리와 함께 산골짝 마을에 고소한 냄새가 골목골목 풍겼다.
방학 맞은 아이들은 서로 뒤질세라 우르르 공터로 몰려간다.
하얀 김이 기둥처럼 솟아오르자 튕겨 나온 튀밥을 주어 먹는 아이들이 구름 속에서 노니는 것 같다.
튀밥 자루에 시커먼 손으로 한 움큼 집어 입을 벌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놈들! 뻥튀기 아저씨 고함소리에 우르르 도망치다 넘어져 우는 아이들! 드디어 설 명절이 시작되었다.
쌀, 보리, 서숙으로 뻥티기 하고 들깨, 참깨, 검은콩, 땅콩 볶느라 고순 내가 집안에 진동했다.
하얀 쌀밥에 엿기름 넣어 단 밥도 해두었다. 무쇠 솥에 짜낸 감미료를 붓자 하나 가득 차서 찰랑거린다.
활 활 타오르는 장작불에 설설 끓이면 커피색 나는 조청이 만들어졌다. 뻥튀기와 볶아 놓은 재료로 강정 만들면 일손 돕기 위해 대평 할머니와 새 돔 당숙모가 오셨다. 늦은 밤까지 조청 끓여 버무리고 만들어 굳기 전에 네모 반듯하게 썰어 한 밤 지새웠다. 손님들 상차림이라 우리들 손 닿지 않는 높은 시렁에 올려두었다.
설 과자 중에 유과가 으뜸이다.
찹쌀은 며칠씩 물에 불려 발효되면 가마솥에 쪄내면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힘센 장정들이 떡메로 철떡 철떡 쳐대면 메리도 신이 난 듯 마당에서 뛰어다닌다.
찰기로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달라붙은 떡메를 끌어올리느라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마침내 반죽이 번들번들 윤이 나고 때왈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유과 반죽 홍두깨로 살 살 문질러 동글동글 만들고 깨끗한 홑이불 펴서 뜨끈 뜨근한 방바닥에 말린다.
청솔가지 씻어 말려 잘 마른 유과에 참기름 바르는 할머니는 그림쟁이 같다.
잘 달 구워진 무쇠 솥뚜껑 위에 고운 자갈도 함께 구워 참기름 바른 유과를 집어넣었다.
부글부글 거리며 하얀 꽃송이가 자갈 속에 피어났다.
쌀 튀밥은 방망이로 살살 밀어 얼개미로 치면 고운 가루가 눈처럼 쌓인다.
얼개 위에 남은 튀밥은 조총 바른 유과에 옷을 입혔다.
얼개 밑으로 흘러내린 가루 한 움큼씩 퍼 먹다 마른 목에 잠겼다.
분수를 품어내듯 기침을 해대며 형제들 얼굴에 분칠 해주었다.
김이나 밀감 껍질 말려서 얇게 잘라 고명 입힌 유과는 맛과 맵씨가 한층 덧보였다.
좀 더 되게 끓인 진한 조청은 뜨거운 김 쏘이며 등이 휘도록 서로 주거니 받거니 잡아당겼다.
엿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제일 힘들다. 저녁내 잡아당긴 조청은 어느새 하얀색 수수깡처럼 변했다.
송송 구멍 난 엿을 한입 깨물면 '파삭' 소리 내며 입안 가득 퍼졌다.
약과 만들 때도 밀가루 반죽에 계란, 설탕, 사과즙, 참기름, 소금 넣고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오래오래 치댔다. 솜씨 좋은 어머니는 장미꽃 잎 하나하나 빚었다. 잎사귀까지 빚어서 부쳐 놓으면 금방 피어난 꽃송이가 되었다.
갖가지 모양으로 만든 약과도 식용유에 튀겨서 뜨겁게 끓인 조청 붓고 재빠르게 뒤 적인다.
검은깨와 밤으로 얇게 친 고명 올려 주면 드디어 약과도 완성되었다.
푹 삶은 팥도 으깨 체에 걸러 놓았다. 한천, 설탕, 소금 넣고 주걱으로 잘 저어서 끓인 후 함지박에 퍼 두었다. 하룻밤 지나면 알맞게 굳어 '요깡'이 되었다.
니맛도 내 맛도 없는 메밀도 확독에 갈아서 체에 바치면 묶고 진한 하얀 액체가 쏟아졌다.
솥단지에 붓고 솔갱이 타닥타닥 타는 소리와 함께 큰 나무 주걱으로 저어주었다.
되직하니 묵이 쑤어지자 넓지막한 장독 뚜껑에 부어 놓았다.
자극적이지도 않고 입에 넣으면 미끈둥 맛도 있는 듯 없는 듯했지만 지금은 그 메밀묵이 그립다.
서리 맞은 감도 할머니와 어머니는 저녁상을 물리고 밤 깊도록 돌려 깎았다.
마루 끝에 주렁주렁 매달자 늦가을 햇볕에 하얀 분을 내며 말라간다.
곶감으로 생강과 계피를 넣은 단물로 수정과도 만들었다.
설빔 하이라이트는 삼일 전부터이다.
떡가래 빼느라 방앗간에는 쌀 담은 함지박들이 길게 늘어섰다.
자리 비운 사이 차례가 뒤 바뀌면 이웃끼리 큰 소리가 났다.
동네 꼬맹이들은 떡 찌는 냄새로 코를 벌름거리며 방앗간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두 줄기 떡가래가 쏟아져 나올 때면 한가닦 씩 얻어먹는 재미로 방앗간을 들락 날락거렸다.
집집마다 철떡 철떡 떡 찌는 소리가 들리고 콩떡, 쑥떡, 무 시루떡, 절편, 설날 음식은 푸짐했다.
조청 찍어서 인절미 한입 베어 물었다. 자르르 흘러내린 조청이 설빔 옷에 묻자 혀로 날름 빨아먹었다.
어느 때보다 큰 함지박에 밀가루가 소복이 쌓였다. 약간 무른 듯 반죽해서 아이들은 고구마 전, 어른들은 무, 배추 전으로 먼저 배를 불렸다. 산적과 육전, 생선 전은 나중에 부쳤다.
우리 시대 시골 촌놈들은 여름방학 동안 하루에 두세 번씩 고란, 정자 또랑에서 일 년 치 목욕을 끝내버렸다. 섣달그믐날이 되어서야 큰 가마솥에 물을 데워 오랜만에 묶은 때를 씻어냈다.
종갓집이라 손님들께 차려드릴 다과나 음식은 우리 손에 닿지 않는 높은 시렁에 올려놓았다.
형제들은 석작에 담긴 다과를 몰래 훔쳐 먹느라 큰방 재봉틀 의자는 항상 제자리에 없었다.
튀밥 가루가 떨어져서 맨날 뒷덜미를 잡혔다. 그때마다 시치미 떼고 혼나는 자리에서 서로 발뺌하기 바빴다. 지금은 추억이 되어 형제들이 모일 때면 서로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다.
설날 이른 아침 종갓집인 우리 집으로 한복 차려입은 친, 인척들이 모여들었다.
뜰방에 벗어놓은 똑같은 자기 고무신 찾느라 두루마기가 땅끝에 닿았다.
페이스북에서 퍼옴 (이동섭 화가 작)
설 풍속이 시대 따라 변화되었다.
마을 회관에서 합동으로 동네 어르신들께 세배하던 풍습도 사라졌다,
지금은 가까운 친 인척들도 왕래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점점 친숙했던 고향 어르신들 별세 소식도 자주 듣게 된다.
냇가에서 빨래하던 예쁜 새색시들도 이제는 지팡이, 전동차가 다리 되어 다닌다.
위아래 다리에서 뛰어놀던 아이들, 튀밥 훔쳐 도망치던 아이들도 보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고향 찾은 자녀들 자가용만 군데군데 서 있다.
몇 년 동안 코로나로 부모님, 형제들도 만날 수 없던 설날에는 썰렁한 마당에 찬 바람만 불다 지나갔다.
한 달이 넘도록 손과 발 움직여서 음식 장만하느라 쉴 틈이 없었던 종갓집 설 풍속은 박물관 추억이 되었다.
색동저고리에 다홍치마 입고 댓돌에 놓인 고무신 신느라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면 외씨 같은 버선코가 살짝 드러났다. 형제들과 함께 복주머니 돌리며 새 돔 할머니 댁에 세배 가는 길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루 종일 세배꾼 떡국 끓이느라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의 불처럼 내 마음도 같이 행복하게 타올랐던 시절이다. 설날이 돌아오면 추억과 함께 어머니가 자꾸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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