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저렴함
브랜드가 없는 브랜드가 있다? 말이 안 되는 말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브랜드이다. 바로 일본의 대표 브랜드 ‘무인양품(無印良品)’이라는 브랜드다. ‘매우 합리적인 공정을 통해 생성된 제품은 매우 간결합니다.’라고 말하며, 상품 디자인부터 포장 그리고 브랜딩까지 간결하게 처리하는 이 브랜드는 1980년 40여 종의 상품을 시작으로 지금은 수천 가지 상품과 주택사업까지 진행하고 있으며, 브랜드가 생활의 미의식을 판매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브랜드이다. 이 브랜드가 과연 어떤 브랜드이고 어떻게 사랑을 받았는지 한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무인양품은 1980년 일본의 버블경제 시기에 태어난 브랜드이다. 당시 일본의 경제력은 매우 높아,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던 일본 사람들은 명품이나 하이엔드 브랜드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브랜드의 가치에 대해서 맹신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인양품은 당시 시대상과 반대로 ‘이유 있는 저렴함’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무인’(無印-도장이 찍혀 있지 않은), ‘양품’(良品-좋은 품질)이라는 직관적인 메시지를 담은 브랜드를 론칭하게 되었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당시의 여유로운 일본 경제 상황에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가질 수 도 있지만, 결국 명품과 사치가 결국 자기 자신의 행복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지겨워하기 시작한 일본 사람들은 상품 본연의 가치를 찾아 비싼 물건이 아닌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상품을 찾게 되었다. 50여 개의 상품으로 시작한 상품은 버블경제가 끝나감에 따라 수천 개의 상품을 판매하는 브랜드로 성장하게 되었고 1991년에서 2001년 까지 성장률은 무려 440% 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영광이 계속되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니클로, 다이소와 같은 유사한 가치관을 가진 브랜드들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고, 이제는 무인양품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도 생겨 났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은 무인양품은 위기 쇄신을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하였다. 점포, 인원 정리와 더불어 오랫동안 처분하지 못하고 있던 재고를 과감히 소각시키는 등 0에서부터 시작하는 노력을 통해 변화하는 세상에 맞추어 하나씩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다움’은 잃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화로써 ‘이것으로 충분하다’라는 무인양품의 새로운 기조를 변경하게 된다. 기존의 ‘이유가 있어 저렴하다’라는 기조에 내재되어 있던 경제성과 실용주의적 측면은 일관성 있게 유지하면서도, 생활용품을 더욱 멋지게 그리고 기능성 있게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만들어진 상품은 마치 ‘흰쌀밥’과 같이 어떠한 브랜드와 어떠한 환경에서도 두루두루 잘 녹아내는 제품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이렇게 무인양품은 많은 이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는 브랜드가 될 수 있었다.
‘이유 있는 저렴함’
지금은 단순히 저렴하기만 하는 상품을 파는 브랜드는 아니지만, 무인양품에는 ‘이유가 있어 저렴하다’라는 컨셉이 여전히 유효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무인양품의 오픈 당시의 ‘소재의 선택, 공정 개선, 포장의 단순화’라는 상품 전략은 지금까지 유효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를 반영해 당시 재미있는 마케팅을 진행하였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은 ‘연어는 몸전체가 연어다’라는 마케팅 문구이다. 당시 연어를 가공하며 버려졌던 연어 머리나 꼬리 부분에도 당연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살 부분이 붙어 있었는데 이를 가공을 하여 상품화한 것이다. 이를 통해 합리적인 가격의 상품을 제공함은 물론이고 불필요한 폐기물을 줄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남다른 상품 기획의 관점은 지금의 무인양품의 상품을 만드는 데 있었어도 큰 바탕이 되고 있다.
자연, 당연, 무인
ESG는 요즘의 기업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가치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인양품은 1980년대부터 ESG를 실천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자연, 당연, 무인’ 1983년도의 무인양품 광고 포스터에 적용된 문구이다. '자연 속엔 당연히 브랜드는 없다(무인)'라는 자연을 강조하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은 슬로건인데, 이 슬로건은 2014년의 광고 포스터에도 똑같이 사용되고 있다. 시간은 지났지만 무인양품의 가치관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물론 말로만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는 무인양품의 오랜 스테디셀러인 ‘깨진 표고버섯’이 그 예시이다. 맛과 영양분은 전혀 문제는 없지만 못생긴 외형으로 버려질 수 있는 채소들을 상품화하고 저렴하게 판매 함으로써 불필요한 자원 낭비를 막기도 하며, 포장의 단순화를 통하여 제품에 따라 별도 포장 없이 태그만 달아서 판매하거나, 상품 자체에 필요 정보를 프린팅 하여 포장제를 최소화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여 주고 있다.
마무리하며
무인양품이 아니더라도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을 제공하는 브랜드는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지만 무인양품처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되는 브랜드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큰 차이를 보여주는 이유 중 하나는 기업이 가고자 하는 본질적 가치관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렌드에 맞춘 상품이 아닌 그들의 가치관을 가진 상품을 계속 늘려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저렴한 상품을 파는 타 브랜드들은 고객들 인식에서 일반적으로 '저렴하지만 품질까지는 좋지 않다'인 반면에 무인양품은 '합리적인 가격에 제품 본연의 가치를 충실히 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주고 있다. 물론 확고한 운영철학과 가치관이 있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브랜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공한 대부분의 브랜드들은 무인양품과 같이 확고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아래는 1980년 브랜드 론칭 당시 무인양품이 상품을 선정하던 기준이다. 오래전부터 무인양품이 지켜온 가치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1980년 무인양품의 상품 선정 조건]
1.일상생활 안에서 꼭 필요한 물건일 것
2.생활에 필요한 도구는 사용하기 쉬운 것을 중심으로
3.식품의 맛은 물론 안심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할 것
4.입을 것은 무엇보다 입었을 때의 착용감을 중시할 것
5.생산 과정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불필요한 비용이 들지 않도록 패키지를 최소화할 것
3줄요약
1. 간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브랜드
2. 불필요한 것은 과감히 없애는 브랜드
3. 가치관을 잃지 않는 브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