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육이 새끼가 나보다 낫네_1

죽음을 헤아린다.

by 은송하

나의 죽음 후에 초래될 일들을 생각한다.

일차적으로는 가족들이 느낄 상실감이 크겠지? 자의적 죽음이라면 배신감과 측은지심 사이에서 널뛰는 감정들 때문에 오랫동안 힘들어할 것이다.


시부모님은 남은 아들과 아이들 걱정이 클 것이고 친정 부모님은 앞서간 딸로 인해 삶이 무너질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아이들은 어떨까? 나는 돌봄에 재능이 있는 편이고 노력도 아끼지 않았으니, 가족들은 더러워진 집안 꼴과 스스로 무언가를 챙겨야 하는 수고를 할 때마다 나를 떠올릴 것이다.


경제적인 영역은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다. 당근 마켓의 온도는 아직 체온과 다를 바 없고, 지역 사랑 상품권이 언제 제로 페이에 뜨고 식비를 어떻게 줄일 수 있나 하고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외벌이로 남편 혼자 아들 둘을 키우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남편은 절약이 몸에 밴 사람이다. 쳇GPT는 잘 써도 인터넷으로 쇼핑이나 배달을 시켜본 적은 없는 사람이다. 아이들은 배달 음식을 먹지 못할 것이다. 지금보다 건강해질 지도.


형편에 비해 생활력과 에너지가 따라주지 못하는 나는 자책과 불안이 심하다. 둘째를 낳고 심해진 폭식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을 때 청소년기부터 우울증을 앓았을 거라고 의사가 진단했다. 기억에 따르면 나는 어릴 적에, 누워서 책을 읽거나 TV를 보던 할아버지 옆에 오랜 시간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되었다.

가깝게 혹은 멀리 두고 매일 죽음을 생각한다. 존재보다는 쓸모, 효율에 초점을 맞추어서 상황과 타이밍을 조정하고 기도로 옮기곤 한다.


그런데 아직 기도의 효험이 없어 살아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내 기도를 곧이곧대로 들어주시는 편은 아니시다.


‘죽여 달라고요.’




작년 여름에 통영의 한 농장에서 아이가 사달라고 해서 가지고 온 다육이가 있다. 보통은 땅에 붙어서 크지도 않고 앙증맞게 있는 것 같던데 이 녀석은 베란다로 들어오는 햇빛을 쫓아 길게 늘어진다. 사왔던 알루미륨 캔 그대로 담겨, 모래보다 조금 굵은 약간의 토양 밖에 없는 주제에.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