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는 재건축을 앞둔 빌라의 현관문을 벌컥 열면서 C컬 펌이 망가지지 않도록 손으로 머리카락 끝을 말아쥐었다. 희뿌연 먼지가 아득한 거실 중앙에 갈색 패딩 침낭이 큰 부피를 뽐내며 덩그러니 있었다.
“권이수! 일어나! 궁상맞게 여긴 또 왜 와? 네가 이런다고 네 아빠가.”
침낭이 꿈틀대자, 영미는 움찔하며 나긋하게 말했다.
“어제 무슨 날인지 몰라? 엄마 결혼식에 안 온 것도 모자라 여기에 이러고 있으니까 엄마 마음이 안 좋아 그러지.”
어제는 영미의 결혼식이었다. 재혼이라고 해서 약식으로 하지 않았다. 지인과 지인의 지인까지 모두 동원해 결혼식을 치렀다. 이수는 할아버지를 보러 간다고 말해놓고 며칠 전부터 여기에 와 있었다.
침낭 지퍼가 열리면서 이수가 머리를 내밀었다. 이수의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이수를 고요히 흔들어 깨웠다.
“나 엄마 따라 안 가요. 학교 근처에 방 잡아주세요.”
“안 가?”
영미의 표정이 굳었다. 남편 지호가 이수를 꼭 데리고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일찍 부모님을 잃고 어렵게 살다가 이제야 아내와 든든한 아들까지 생겨 온전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그이에게 실망을 안겨 줄 수는 없었다. 이수는 완벽한 아들이었다. 외모며 성품이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 입학까지.
“내가 이런다고 아빠가 다시 돌아올 수는 없으시겠죠. 오늘 철거 시작한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와 본 거예요. 보상금 꽤 되잖아요. 이 정도는 봐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영미는 이제야 말이 통하겠다는 식으로 답했다.
“네 아빠가 그런 사람이야. 병든 아버지하고 낡아빠진 이 아파트만 덩그러니 남겨놓고 죽었어. 죽기 전에 이 아파트 내 명의로 돌리고 이혼 안 했으면 이것도 못 건졌다고. 할아버지 계속 서울에 계시게 할 거면 일어나. 네가 찾을 수도 없는 지방 산골짜기로 보내버리기 전에. 서울에 있는 요양원이 한 달에 얼마나 드는 줄이나 알아?”
“...”
이수는 영미에게 질려버렸다는 듯 쓰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일어났다. 잠에서 깨려 얼굴을 찹찹 두드렸다. 부유하던 먼지들이 이수의 얼굴 앞에서 반짝거렸다.
영미는 이수가 물건을 챙길 동안 휴대폰으로 면세점 카탈로그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아이를 데리고 오면 좋으려나?”
이수는 청바지에 감색 터틀넥, 검정색 코트를 입고 나왔다. 짧은 머리 아래로 적당히 둥근 이마와 쌍꺼풀 없는 큰 눈망울, 진갈색 홍채는 세련되고 지적인 이수의 성격 그대로를 잘 보여주었다. 19살의 끝자락이지만 목에서 턱으로 타고 가는 굵은 턱선이 다분히 남성적이었다.
이수는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어깨에 멨다.
영미는 이수에게 다가가 까치발을 하고서 이수의 머리를 한 번 더 다듬어 주었다. 만질 필요도 없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쓸며 제 잘난 아들의 얼굴을 한 번 더 보는 것이었다. 이수가 착하디착했던 이수의 죽은 아빠를 닮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아들이지만 어쩜 이렇게 빠지는 데가 없을까?”
이수는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누르며 성깔 있게 고개를 돌렸다. 먼저 집을 빠져나왔다. 하얀 점박이가 찍힌 계단의 시멘트가 죽어가는 늙은 고래처럼 느껴졌다.
이층 주택 앞에 도착했다. 두꺼운 회색 콘크리트를 조화롭게 연결한 집은 어떻게 보면 을씨년스럽게도 어떻게 보면 세련되어 보이기도 했다. 이수는 살갑지 않은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 하얀색 철제 대문이나 빨간 벽돌 담장이었다면 다정도 해야 할 거 같은 부담이 드니 말이다.
딩동딩동.
이수가 무채색 담장 사이에 붉게 물들어 있는 돌나물을 유심히 보는 동안 영미는 서둘러 벨을 눌렀다.
“네~.”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우직하게 흘러나왔다.
“저 영미예요.”
초인종을 누르는 영미의 네일의 큐빅이 햇빛에 비춰 반짝거렸다.
“네 사모님.”
“오빠가 지금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바로 한 기사하고 가야 할 거 같아요. 아들 들여보낼 테니까 점심 좀 챙겨봐 주세요.”
“네 사모님.”
문이 지잉 하고 열리자, 이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원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낯선 곳으로 들어가는 게 익숙한 이수였다. 영미가 여러 남자와 사실혼 관계일 때 이수도 언제나 함께일 수밖에 없었다. 영미는 이수와 생계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이수가 보기에는 놀랍게도 그때마다 새로운 사랑인 것처럼 보였다.
영미는 돌아보지 않는 이수의 등 뒤에다 손 키스를 날렸다.
이수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사 도우미인 경희가 이수를 반겼다. 빠글빠글한 단발 파마에 후덕한 인상의 그녀는 억양에 경상도 사투리가 살짝 묻어났다.
“어머, 말씀 많이 들었어요. 듣던 대로 훤칠하네요. 사모님은 너무 좋으시겠어요? 이렇게 잘생긴 아들에 공부도 잘하고. 이제 사장님하고 셋이서 행복하게 살 일만 남으셨네요.”
‘시끄러워.’
“네.”
이수는 시큰둥하게 경희를 바라봤다.
“이수 학생 방은 2층이에요. 사모님은 사장님하고 1층에 있는 방 쓰실 거예요. 방부터 구경할래요? 아니면 밥 먼저 먹을래요?”
“편하신 대로 부르시면 돼요. 밥 먼저 먹을게요. 올라갔다가 또 내려오기 귀찮아서요.”
“아침은요?”
“아침은 못 먹었어요.”
“그래요? 아침은 꼭 먹어야 하는데. 아침을 먹어야 머리가 팽팽 돌아가잖아. 식탁에 앉아 있을래요? 밥은 금방 내올게요.”
경희가 주방의 안쪽 다용도실로 가자, 이수는 그제야 조용해진 집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거실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구도가 마음에 들어 이수는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창밖에 구름이 잔뜩 꼈지만 구름 사이로 여러 갈래로 직진한 빛이 신비로웠다. 신의 계시라도 내려올 것 같은. 떠나. 이수야. 이제 벗어나.
카메라를 돌리다 계단 옆 복도 끝에 해먹이 보였다. 누군가 귀에 이어폰을 끼고 누워있었다. 해먹 옆으로 다리 하나를 걸쳐 내리고 책을 읽고 있었다.
이수는 셔터를 눌렀다. 황량한 마당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누워있는 아이가 아직 어려서 그런지 생기 있게 느껴졌다. 머리가 짧고 키를 보니 중학생쯤 된 남자아이 같기도 했다. 새아빠 지호에게 자식이 있다고는 듣지 못했지만, 자식이든 친척이든 이수는 아무렴 했다.
“이수 학생. 밥 먹어요.”
“네.”
“사진 찍는 거 좋아하나 봐요?”
“가벼운 취미예요.”
“강진아~. 너는 점심 안 먹을 거지? ...사모님 아들왔어! 어제 사장님이 말씀하셨던 그 권이수 학생.”
이수가 돌아보자, 소파에 누운 아이는 책 위로 엑스 자를 그리고 다시 책 읽는 것에 열중했다.
“이수 학생이 이해해요. 강진이가 책 읽는 걸 워낙 좋아해서. 그러고 보니 강진이도 이번에 대학 가요. 문예창작과인가? 소설을 잘 써서 상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책 위로 얼핏 보인 아이는 단정한 커트 머리에 잡티 하나 없는 뽀얀 얼굴을 하고 눈썹은 짙고 가지런하며 콧망울이 둥글어 보였다. 생각보다 나이가 많았다. 학교에서 녹록지 않았겠다 싶었다.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서열을 매기니까.
이수는 자신이 온 줄 알면서도 여전히 누워있는 강진이라는 애가 불쾌하기는커녕 도리어 편하게 느껴졌다. 받은 예의가 없으니 굳이 먼저 애쓸 필요가 없었다. 경희가 챙겨준 밥을 먹고 식혜로 입가심하며 이수는 찍은 사진들을 다시 훑어보았다.
강진의 사진에서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다.
‘저 책은.’
이수는 재차 확인하려 확대해 보았다.
데카메론?
이수는 순간 멈칫하며 얼굴을 붉혔다. 표지에는 남녀의 적나라한 나체가 그대로 그려져 있었고 어디선가 야한 책이라는 말을 들었던 듯했다.
‘저 녀석. 보통내기가 아닌데? 벌건 대낮에 거실에서 저런 걸 보다니. 단단히 삐뚤어진 녀석이야.’
이수가 뒤돌아보니 강진이란 아이는 이미 소파를 떠난 뒤였다.
경희의 안내로 이수는 2층 방으로 올라갔다. 가운데 있는 미니 거실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방 하나씩, 화장실 하나씩 있는데 오른쪽이 강진의 방이고 왼쪽이 이수의 방이라고 했다.
경희는 방을 안내하면서 워낙 정적을 못 참는 성격인 건지 이수가 알아야 할 거라 여겼는지 방금 본 강진에 관해 이야기했다. 강진의 어머니는 희귀병 때문에 얼굴이 괴물로 변해갔다고. 그걸 못 견디고 강진이와 같이 죽으려다가 끝내 본인만 세상을 뜨고, 애 성격이 저 모양이 됐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