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여기서부터 봄

by 은송하


이수는 방문을 닫고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와 지호 아저씨는 신혼여행을 떠났고 낯선 아줌마, 동갑 아이와 이 집에 있다. 그대로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켰다. 카메라 동호회에서 올린 공지를 확인했다.


12월 31일 경복궁 출사. 회장님 집에서 이수의 스무 살 기념 술 파티.


이수는 경희가 싸준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그 아이는 저녁도 먹지 않았다. 나름 ‘안녕?’이라는 말을 몇 번 연습했는데.


경희의 말로는 강진은 글을 쓰는 동안에는 방 밖에 일절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 집에 올 때 운전을 해주던 한 기사가 남편이고 마당에 있는 별채에 산다고 했다.


이수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컴퓨터 게임을 실컷 하다가 새벽에야 침대에 누워 뒤척였다. 낯선 집, 낯선 냄새. 흠 잡힐 짓을 하면 안 된다고 늘 말씀하시던 할아버지의 엄중한 목소리. 엄마의 간드러진 말투. 친구들의 수군거림.


이어지는 생각이 희미해졌을 때 잠들었고 다시 희미해지는가 싶을 때 잠이 깼다. 누군가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극세사 원단의 코발트색 로브를 걸치고. 아래에서 올려다봤을 때 분명 어제 봤던 동갑내기 그 아이가 맞긴 맞는데.


‘여자였어?’


이수는 강진이 어제 보던 책이 아른거려 괜히 볼이 발그레해졌다.


“경희 아줌마에게 들었겠지만, 나는 강진이. 강진경이라고 해.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들 나를 강진이라고 불러. 출판사 창작 지원 프로젝트 때문에 여기 산 지 한 달쯤 됐어. 수능 끝나자마자 왔고 내년 2월까지는 있을 예정이야.”


“...”


“대표님하고 사모님이 내 얘기를 깜박하셨다길래. 미안. 아침 일찍부터. 문자 보자 마다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해 버려서. 대표님 딸이나 뭐. 막장 드라마 같은 거 생각하고 있을까 봐. 너한테 궁금한 것도 많고. 질문을 좀 해도 될까?”


이수는 안 된다고 하기도 뭣해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키스나 성관계 해봤어? 우리나라 9%의 남성이 스무 살 전에 해봤대. 19살이라면서?”


진경은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가 침대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질문이 무례하네요. 이 집에 온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우리 엄마를 포함해서 이 집의 모든 여자들이 정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나뿐인가?”


진경은 자신의 질문에 대한 이수의 답만 기다리고 있었다.


“궁금해 미치겠다면. 저는 91%에 속해요.”


“나하고 키스해 볼래?”


이수는 벌떡 몸을 일으켜서 이불을 끌어다가 가슴에 꼭 안고서 벽에 붙어 앉았다.


“미안해요. 저한테 아무리 첫눈에 반했다고 해도 이렇게 불쑥 남자 방에 들어와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좀 지나치지 않아요? 그런 통속적인 책을 읽다 보면 호기심이 생길 수는 있겠지만.”


“통속적... 이라. 표지만 보고 하는 말? 무식하게?”


“무식?”


이수는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낯설 단어에 날이 섰다. 드로즈만 입고 있지만 않았어도 당장 일어나 따져 물었을 것이다. 처음 보는 남자에게 와서 이런 저속한 질문과 대담한 요구는 무식한 게 아니냐고 말이다. 옷을 입지 않은 것만으로도 벌써 다 져버린 기분이었다.


“난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필요했을 뿐이고. 네 얼굴이 좀 반반하다고 따라다닌 여학생들이 꽤 되나 봐? 아무렇지 않게 반했냐고 하는 거 보니까. 내가 글을 좀 쓰고 있는데 아무래도 경험이 많이 없어서 아쉬움이 많아. 이번 글은 나에게 중요하거든. 대표님이 숙식까지 제공해 주셔서 부담이 장난이 아냐.”


“아주머니한테 들었어. 글 쓰는 데 재능이 있다고. 문창과에 입학한다고?”


“재능이 있어. 유전과 환경이 있을 수밖에 없는. 그래. 물론 노력도 아주 많이 하고 있고. 그런데 왜 반말이야?”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나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데.”


“나이 많아 보이면 더더군다나 말 높이지 않나? 보통은. 우리 동갑이라고 네 입으로 먼저 말했잖아. 나 어디 가서 잘생겼다는 소리는 많이 들어봤지만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은 못 들어봤어.”


이수의 욱하는 말투가 웃긴 지 진경은 꺄르르 웃었다.


“미안. 못된 버릇 중 하나야. 당황하게 하는 말 하면서 상대 반응 관찰하는 거. 일단 통과”


“통과?”


“욕 안 했잖아. 이때다 싶어서 날 덮치지도 않았고. 어느 정도 절제할 줄도 알고 자기애도 적당히 충만하고. 대표님이 널 좋아할 만해. 단란한 가족의 탄생에 방해되지 않도록 빨리 작품 완성해서 나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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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은 일어나서 의자를 정리했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진경의 사위를 감쌌다. 진경이 넘기는 짧은 머리카락이 정전기로 나풀나풀하자 민들레 홀씨가 방 안 가득 흩날리는 것 같았다. 봄이 여기에 있었다. 여기서부터 봄이다.


‘너는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하고, 순수하면서도 치명적일 것 같고. 잡힐 듯하면서 금방 떠나버릴 것 같아.’


“아래층에서 만나. 친.구.”


이수는 나가려는 진경을 불러세웠다.


“저기.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돼.”


“뭘?”


“급하게 나가려고 안 해도 된다고. 네가 쓰는 작품 느긋하게 쓰라고.”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그런데 인간이란 마감 시간이 있어야 시간을 알차게 쓰거든.”


진경은 그날 이후로 아침마다 찾아와 이수를 깨웠다. 이수와 얘기하고 나면 글이 더 잘 써진다는 핑계. 이번 작품 계약금으로 대학 등록금을 낼 수 있었다고. 부모님은 몇 년 전에 사고로 다 돌아가셨지만, 유산으로 고등학교는 그럭저럭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출판사 대표인 지호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미래에는 왠지 테슬라를 추종하는 사람이 화성에 갈 수 있을 거 같다는 둥. 지구에 전염병이 창궐해서 마스크가 엄청나게 잘 팔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는 계시를 늘어놓을 때면 이수도 슬슬 지쳤다.


그렇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밥을 먹는 일상의 며칠이 지났다. 진경이 철부지 동생 같기도, 수다스러운 여자 친구 같기도, 미친 예술가 같기도 했다.




12월 31일. 기상예보에 따르면 오후 3시부터 눈이 온다고 했다.


“이모님~. 저 오후에 나가요. 저녁은 밖에서 먹을게요. 아는 형들하고 늦게까지 놀 거라 밤늦게 올 수도 있고요. 기다리지 마시고 주무세요.”


경희는 도련님의 외식이 반가웠다. 옆에서 점심을 깨작이던 진경이 이수를 돌아봤다.


“어디 가는데?”


“경복궁. 오후부터 눈이 온다고 해서. 가서 사진 찍으려고. 미리 가 있어야 누구도 밟지 않는 눈을 찍을 수 있거든.”


“누구도 밟지 않은 눈? 나도 갈래. 눈 밟고 싶어.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뽀드득 소리 들은 지 오래됐어. 경복궁의 ‘경’ 자하고 내 이름의 ‘경’ 자가 한자가 같아. 풍경 ‘경’. 밝고 아름다운 풍경 말이야. 이렇게 이름에 인연이 있으니 나도 같이 가야 하지 않을까?”


“...”


“갈 때만 같이 가고 경복궁에서는 혼자 놀게. 네가 하는 일에 방해 안 해. 절.대.로. 맹세해. 오랜만에 좀 멀리 나가보고 싶어서 그래.”


그러고 보니 진경의 외출은 드문 일이었다.


“이수 학생. 강진이 좀 데리고 가줘요. 이 집에 온 이후로 영어 학원? 거기 가는 거 말고는 집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어. 젊은 애가 또래 친구도 없고.”


경희는 진경의 핏기 없고 마른 몸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아들만 둘인 데다 모두 객지에 나가 일하면서 연락도 뜸한지라 경희는 진경이 딸 같고 예뻤다.


진경은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 경희의 말에 긍정했다. 친구가 너밖에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이라는 뜻이다.

“우리 한 기사 퇴근길에 강진이 데리고 오라고 할게요. 가는 것만 같이 가줘요.”


한 기사는 지호가 필요로 할 때는 운전을 해주고 평소에는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북카페의 시설 관리를 한다고 했다.


이수와 진경은 안국동 사거리에서 내려 함께 걸었다. 올해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이른 오후라도 광화문 일대가 붐볐다. 흐린 날씨에 간혹 부는 바람은 스산했다.


“무슨 글을 쓰기에 낮에는 두문불출인 거야? 어떤 내용이야?”


“19금 소설이라 상당히 힘들어.”


“어?”


“과감하게 시작했는데 그 세계가 상당히 흥미롭더라고. 대표님도 시도해 보는 게 내 글이 도야(陶冶)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하시고. 성매매 업소 여자 이야기야.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들.”

이수는 진경을 처음 만났을 때 봤던 데카메론이 떠올랐다. 전염병인 페스트가 휩쓸고 간 14세기의 피렌체, 사회의 참상과 인간의 본성을 다룬 이야기들을 묶었다는 걸 이수 또한 그 책을 펼쳐보고서야 알았다. 보이는 현실에 감각과 의도를 담아 재구성하는 것이 사진과 소설이 비슷한가 싶었다.


“...너 사모님 결혼식에는 왜 안 왔어? 크리스마스 이브에 예쁜 교회를 빌려서 하는 결혼식. 낭만적이고 숭고해 보이고. 좋았는데. 아들이 안 와서 그런지 사모님이 좀 슬퍼 보였어.”


“엄마 새해면 신년 운세 보러 마장동에 있는 단골 철학관에 가셔. 홍대에서 타로 보는 게 취미고.”


“아.”


“아저씨가 어릴 때 동네의 작은 교회에서 결혼식 하는 걸 보고 로망으로 생각하셨다나 봐. 초혼이라니까 그 정도는 맞춰주고 싶었다고 그랬어. 엄마가.”


“...나는 대표님하고 더 친하니까. 사모님이 어떤 상황에서도 아들을 포기하지 않는 게 멋져 보이셨대. 사실 대표님 지인과도 사모님이 인연이 좀 있으셨거든.”


“저기, 나 이런 얘기는 더 안 하고 싶은데.”


“미안. 너한테 어떤 상처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수 엄마는 이수하고 어떻게든 함께 생존할 생각을 하셨구나. 이 세상을 어떻게든 같이 살려고 하셨구나. 부러워서.”


이수는 진경의 불행이 지금 자신에게 위로가 되는 게 미안해졌다. 미끄러지지 말라고 진경의 팔을 살짝 잡았다.


경복궁 입구 앞에 다다르자, 동호회 사람들이 이수를 보고 손을 크게 흔들었다. 구성원이 다섯 명 정도 되는 작은 동호회였다.


경복궁 안은 오히려 한산했다.


이수의 동호회 형들은 나이대가 다양했다. 이수보다 네 살 많은 태선과 사십 대인 병철까지. 회원들은 빨간 털모자 아래 눈이 댕그랗고 귀엽게 생긴 이 여자아이를 이수가 어떻게 알게 된 건지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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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는 친척이라고 얼버무렸다. 친구라고 해도 ‘여자’라면 오늘 마칠 때까지 놀림감이 될 소지가 다분했다.

“사진 열심히 찍어. 나는 안쪽 둘러보고 있을게. 나중에 집에서 봐.”


진경은 어색하게 뒤돌아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한 근정전을 걸어 나갔다.


“집에서 봐? 야! 너희 어머니 혹시 또 동거하시니? 재혼?”


“...”


이수는 어금니를 지그시 물었다.


“여동생? 데리고 나올 정도면 친해졌나 봐.”


“태선아. 이수 곤란하게 왜 그래~. 친척이라고 하잖아.”


이수는 태선이 뭐라고 떠들든 진경이 걸어간 곳을 흘깃 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 쟤 연락처도 모르네. 나중에 집에 가서 물어봐야겠다.’


이수는 형들과 함께 향원정으로 향했다. 가을부터 다시 공개된 향원정에 가서 커피 한잔을 하며 눈이 쌓이길 기다렸다.


하늘의 쪽빛이 짙어지면서 눈이 제법 쌓였다. 조명 아래, 아무도 밟지 않은 소복한 눈은 정갈하면서도 곱게 빛났다. 담벼락 밑 쌓인 눈 사이로 보이는 노란 꽃을 발견한 이수는 진경이 이걸 보았다면 좋아했을 텐데 싶었다. 진경과 함께 5일을 살았다.


동아리 형들과 사진을 찍고 여기저기 둘러보니 시간이 한참 지났다.


‘진경이는 집에 잘 도착했을까?’


이수의 폰이 우렁차게 울렸다. 형들의 전화를 못 받을까 봐 설정해 놓은 탓이다.


“네, 엄마.”


[이수야, 어디야?]


“지금 경복궁. 출사 왔어요. 형들하고. 엄마 내일 아침에 온다고 했죠?”


영미는 신혼여행으로 일본 후쿠시마 이자카 온천에 가 있었다. 오늘 밤 형들과 술을 마시기로 한 거에는 영미의 부재도 한몫했다.


[이수야. 있잖아.]


영미의 목소리는 어딘가 익숙했다. 만났던 남자와 헤어졌을 때 이수를 찾던 목소리다. 그런 날에는 꼭 밤에 같이 치킨을 먹으면서 광고가 더 긴 것 같은 드라마를 보고는 했었다. 눅눅하고 실망이 가득 담긴 목소리. 여자로서 사랑받고 싶은 갈증을 다 해갈하지 못한 듯한 투정과 상대에 대한 욕을 잔뜩 늘어놓았다.


마지막에는 항상 이수의 친아빠를 찾았었다.


“이수야. 엄마는 말이야. 네 아빠를 정말 사랑했었어. 얼마나 다정한 사람이었는지 몰라. 네 할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엄마가 더 괜찮은 사람이었다면 너하고 네 아빠하고 셋이 잘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망할 노인네. 날 왜 그렇게 미워했던 거야? 시집살이를 그렇게 모질게 시키고.”


술에 취해 이수의 어깨에 기대어 간장 소스 냄새 가득한 숨을 내쉬며 새근거리던 영미였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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