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이 없는 세상은 어떨까?
2년 전부터 눈에 밟히던 책이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읽게 되었다. 작가가 보여주고 우려한 작품 속 세상이 지금 우리가 나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에, 때로는 나도 어쩔 수가 없다며 체념해 버린 것이기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반전과 새로움을 선사하며 오랜 만에 방해받지 않고 오로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 책이다.
▷ 직위(직업)를 부여받을 수 있는 12살을 앞둔 주인공, 조너스가 사는 마을 규칙, 상황은 다음과 같다.
(작품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임무 해제라는 말은 안락사를 뜻한다.)
1. 가족
배우자와 자녀는 신청 후 배정: 사랑이나 선택이 아닌 원로들의 심사와 배정으로 결정된다.
아이 수는 최대 2명: 인구를 철저히 통제한다. 쌍생아는 둘 중 무게가 작은 아이는 임무 해제된다.
아이의 이름도 아이가 사회에 적합하다고 판정되면 부여받는다. 부적합시 임무 해제된다.
매일 아침 지난 밤 꿈을 나누고 저녁에는 하룻동안 있었던 감정을 나눈다.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규칙에 어긋난 감정은 부모에 의해 교정받는다.
성욕은 약에 의해 억제된다.
아이들은 위안물(애착인형)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동물을 본 적은 없다.
2. 직업과 교육
12세 의식에서 직업 지정: 원로들이 아이의 성격과 능력을 평가해 직업을 정해준다. 모든 곳에 스피커가 설치되어 감시와 지적이 가능하다.
직위가 정해지면 그에 맞는 훈련에 들어간다.
정확하고 적절한 언어 사용해야 한다.
무례함이라 여겨지는 모든 말과 행동은 잘못된 것. 즉시 사과하고 용서한다.
3. 기억과 역사
과거의 기억은 삭제되었다. 전쟁, 기근, 고통뿐 아니라 행복과 사랑의 기억, 색깔과 자연물에 대한 감격도 사라졌다.
기억 보유자만 예외: 사회의 안정을 위해 단 한 명만 모든 기억을 짊어지고 기억으로부터 오는 지혜로 원로들에게 조언하다.
조너스는 차기 기억 보유자로 선택된다. 시선 너머의 것을 볼 수있다. 기억 전달자는 시선 너머의 것을 들을 수 있다.
4. 사회 질서
개인의 선택권은 없다. 오직 마을 안에서 원로들의 결정에 의해 기계적으로 살아간다.
아이들은 출산 직위를 받은 여자들에 의해 생산?되고 보육 시설에서 돌봄 받다가 적합 판정을 받으면 공동체로 들어갈 수 있다. 노인들은 가족들과 떨어져 공동 시설에서 돌봄 받다가 임무 해제된다.
p35
릴리는 태어나자마자 맏았던 코끼리 위안물을 가지고 아버지와 함께 침실로 향했다. 조너스와 어머니는 그 모습을 사랑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어머니는 커다란 자기 책상에 앉아 서류 가방을 열었다. 사무실 일이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 조너스도 자기 책상으로 가서 숙제인 학교 신문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12월과 열두 살 기념식에 가 있었다.
조너스는 부모님과 이야기하면서 다소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원로들이 자신에게 어떤 직위를 정해 줄지, 그날이 되면 어떤 기분이 들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p80
수석 원로가 어머니 같은 눈으로 아이들을 똑바로 보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이 바로 차이를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마을 공동체에 적합한 사람이 되도록 행동을 표준화했습니다.
스스로를 모둠에서 떨어져 나가게 할지도 모르는 각종 충동을 억제하는 법을 배워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여러분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경의를 표합니다. 그 차이들이 여러분의 장래를 결정했습니다."
p108
조너스 / 기억보육자
1. 매일 학교 공부가 끝나면, 즉시 노인의 집 뒤에 있는 별채 입구로 가서 안내원에게 당신이 왔다고 알립니다.
2. 매일 훈련 시간이 끝나면 즉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3. 이 순간부터 당신은 무례함을 금지하는 규칙들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주민에게 어떤 질문이든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4. 마을 사람들에게 당신이 받는 훈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물론 원로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5. 이 순간부터 당신은 꿈을 이야기하는 데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6. 훈련과 관계없는 병이나 상처를 제외하고 당신은 어떠한 의학적 치료도 신청할 수 없습니다.
7. 당신은 임무 해제를 신청할 수 없습니다.
8. 당신은 거짓말을 해도 됩니다.
p140
잠에서 깨었을 때 조너스는 멀리서 기다리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그 먼 곳에 가고 싶어하고 심지어 거기 갈 필요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곳이 좋다는 느낌, 그곳이 자신을 환영하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은 의미심장했다.
하지만 조너스는 어떻게 해야 거기에 갈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p243-244
기억 전달자가 말했다.
"아주 오랫동안 그랬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기억은 언제나 그랬던 건 아니라는 걸 알려 주지. 사람들 역시 한 때 모든 것을 느낀 적이 있었다. 너나 나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한때 긍지, 슬픔, 그리고......"
"그리고 사랑."
조너스는 말을 이으면서 자신에게 아주 큰 영향을 주었던 그 가족 풍경을 떠올렸다.
"그리고 고통."
조너스는 다시 병사를 떠올렸다.
"기억을 품는 게 힘든 가장 큰 이유는 고통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그러니까 기억은 함께 나눌 필요가 있어."
조너스가 활기를 찾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네 말이 맞다. 지난 일 년 동안 너와 함께함으로써 나는 이제는 모든 게 변해야 한다고 깨달았지. 지난 여러 해동안도 그래야 한다고 느껴 왔지만 너무 가망 없는 듯 보였단다."
기억 전달자가 천천히 덧붙였다.
"그렇지만 이제 처음으로 어떤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두 시간 전에 네가 나에게 그걸 다시 깨닫게 했지."
기억 전달자를 바라보며 조너스는 그의 말을 새겨들었다.
작가는 '늘 같음 상태'를 지향하는 세상을 향해 정말로 '늘 같은 세상'이란 이런 것인데 괜찮겠냐고 묻는다.
마을을 떠난, 색깔을 보고 눈과 햇살을 느낄 수 있는 조너스와 아기 가브리엘은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