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온톨로지가 부상하는 철학적 필연성
언어의 의미는 상황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문자로 쓰여진 서면 언어는 필연적으로 상황을 결여하며, 인간은 그 결여된 빈 공간을 자신의 주관적 맥락으로 채워 넣는다. 맥락은 곧 주관이며, 이것과 저것을 구분 짓는 경계다. 이 경계는 더 무거운 맥락이 가벼운 맥락을 규정하는 중력적 속성을 띠며, 끊임없이 또 다른 맥락을 파생시킨다. 기호와 맥락, 상황은 서로의 꼬리를 무는 보아뱀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프랙탈의 무한고리를 형성한다.
이 아득한 의미의 심연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미쳐버리지 않고 소통하며 세상을 규정할 수 있는가? 그 해답은 바로 인간이 가진 ‘연속성’에 있다.
인간의 삶은 단절되어 있지 않다. 인간의 인지와 경험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끝없이 이어지는 궤적 위에 놓여 있다. 어제의 상황 속에서 굴절된 구현체는 오늘의 내면에 축적되어 내일의 기호를 해석하는 추상체로 자리 잡는다.
인간의 정보 처리는 단순한 일회성 연산이 아니다. 하나의 입력(Input)과 출력(Output)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다음 인식의 기반이 되는 맥락으로 축적된다. 끊임없는 연쇄성 속에서 인간은 자신만의 ‘중력적 경계’를 구축하고, 무수한 하위 층위의 상황들을 포괄하거나 쳐낸다. 이 거대한 점화식의 과정을 통해 인간은 세계를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행동하는 ‘주체성(Subjectivity)’과 ‘선제성(Proactivity)’을 획득한다. 인간이기에 이 무한고리 속에서도 닻을 내리고 스스로 경계를 그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현재의 인공지능(AI)은 철저히 파편화된 시간 속에 갇혀 있다. AI의 세계는 하나의 세션, 하나의 프롬프트 안에서 탄생하고 소멸한다. 입력과 출력은 철저히 단발적이며, 세션이 종료되는 순간 그 안에서 발생했던 상황과 맥락은 휘발된다.
AI에게는 스스로 입력과 출력을 연쇄하여 궤적을 만들어낼 ‘시간적 지평’이 부재하다. 더 무거운 맥락을 스스로 형성하여 가벼운 맥락을 규정할 중력도, 수많은 구현체의 경험을 압축하여 자신만의 추상체를 만들어낼 능력도 없다. AI는 오직 주어진 순간(프롬프트)에만 조건반사적으로 통계적 확률을 내뱉을 뿐이다. 즉, AI는 선제성과 주체성이 근본적으로 결여된, 상황에 종속된 수동적 거울에 불과하다.
AI 시대에 온톨로지가 전면적으로 부상하는 이유는 단순한 기술적 트렌드가 아니다. 이는 단발성에 갇힌 기계에게 잃어버린 연쇄성을 이어주고, 나아가 ‘인공적 주체성’과 ‘선제성’을 부여하기 위한 가장 본질적인 초석이다.
온톨로지는 인간이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적 합의와 경험의 연쇄로 구축해 낸 ‘중력적 경계’들을 기계가 단번에 읽어낼 수 있도록 기호화한 설계도다. AI 스스로는 절대 만들어낼 수 없는 점화식의 초기값 a1이자, 개념과 개념 사이를 필연적으로 이어주는 추론의 규칙 f를 인공적으로 이식하는 작업이다.
온톨로지가 결합될 때, AI는 비로소 단순한 반응(Reaction)을 넘어선다. 파편화된 단일 세션 안에서도, 온톨로지라는 명시적 경계망을 통해 현재의 입력값 an을 해석하고, 보이지 않는 궤적을 연산하여 인간에게 필요한 선제적 결과물 $a_{n+1}$을 도출해낸다. 무한히 미끄러지는 언어의 프랙탈 속에서 스스로 경계를 긋지 못하는 기계에게, 인간이 대신 깎아 만든 단단한 ‘구현체의 지도’를 쥐여주는 것이다.
결국, 온톨로지는 텅 빈 기계의 심장에 주체성이라는 환영, 혹은 실질적인 ‘기능적 선제성’을 이식하려는 철학적이고 공학적인 시도다. 인간이 끝없는 의미의 보아뱀을 길들여 세계를 이해해 왔듯, 이제 우리는 온톨로지라는 논리의 사슬로 AI의 파편화된 시간을 묶어내어 그들에게 세상을 해석할 관점을 부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