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희망사항'은 어떻게 절망으로 바뀔 수 있는가
트럼프노믹스 2.0의 골격은 단순하다. 고관세로 ‘국경에서’ 가격을 올리고, 대규모 감세로 ‘국내에서’ 수요를 밀어 올리는 조합이다. 문제는 이 두 조합이 동시에 작동할 때, 교과서적으로도 시장 체감으로도 결과가 뻔해진다는 점이다.
관세는 수입품과 중간재 가격을 끌어올려 비용 인플레이션을 만들고, 감세는 가계·기업의 지출을 부추겨 수요 인플레이션을 자극한다. 실제로 2026년 2월 미국은 전 세계 수입품에 10% 임시 일괄 관세를 징수하기 시작했고, 이를 15%로 올릴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런데도 이 조합이 ‘가능한 시나리오’로 포장되는 이유가 있다. 숨겨진 전제, 다시 말해 배수진의 마지막 탈출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AI가 단기간에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려, 관세·감세가 만든 물가 압력을 ‘공급 확대’로 눌러줄 것”이라는 기대다. 이 기대는 관측 가능한 수준으로도 공적 담론에 올라와 있다.
트럼프가 AI와 연준 인선을 묶어 90년대식 생산성 붐 재현을 기대한다는 보도 자체가 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AI가 정말 마법처럼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고 경제를 구원할 것인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 AI가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생산성을 올리지 못한다면, 또는 생산성 향상이 ‘성장’이 아니라 ‘대체’ 중심으로 나타난다면, 세계 경제는 어떤 불확실성의 영역으로 밀려 들어가는가?
경제학에서 기술 진보가 노동을 돕는지, 노동을 밀어내는지는 단순한 철학 문제가 아니다. 모형으로 분해 가능한 메커니즘이다. Acemoglu–Restrepo의 작업 기반(task-based) 프레임은 생산을 “수많은 작업(tasks)의 묶음”으로 보고, 이 작업들이 노동에서 자본(기계·소프트웨어)으로 재배치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다. 자동화는 노동이 하던 작업을 자본이 수행하도록 만들어 대체(Displacement)를 일으키며, 이는 노동의 몫(노동소득분배율)과 노동수요에 하방 압력을 준다.
여기서 중요한 통찰이 나온다. 기업의 생산성이 오른다는 것은 반드시 “노동자가 더 똑똑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특히 회계와 통계가 잡아내는 단기 생산성은 종종 “같은 매출을 더 적은 인력으로 만든 결과”로 관측된다. 즉, 인간의 능력 증폭(augmentation)이 아니라 인간의 제거(displacement)가 생산성 지표를 끌어올릴 수 있다.
이 논리의 현실 버전이 로보틱스에서 이미 관측됐다. “Robots and Jobs” 연구는 산업용 로봇 확산이 일부 지역 노동시장에 고용과 임금의 감소를 유발할 수 있음을 실증한다.
과거의 자동화가 주로 “공장”을 먼저 바꾸었다면, 프론티어 AI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사무직(문서·분석·코딩·고객응대)의 작업 단위를 정밀하게 쪼개고, 그중 규칙성과 반복성이 높은 부분을 빠르게 흡수한다. ILO의 작업 노출도 연구는 사무·행정(clerical) 직무가 가장 높은 노출을 보이며, 전문·기술 직무에서도 노출이 확대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아직 대규모 해고가 보편화됐다”라고 단정하긴 이르다. 실제로 미시 연구에서는 AI가 노동자를 대체하기보다 보조해 생산성을 높이는 사례도 강력하다(예: 콜센터에서 14% 생산성 상승, 특히 저숙련·신입에 효과).
그럼에도 기업의 의사결정 함수는 냉정하다. ‘도와주는 도구’가 ‘줄일 수 있는 인건비’로 바뀌는 순간, 생산성의 열매는 임금이 아니라 고용 축소·채용 둔화·외주화로 실현되기 쉽다. 연준 내부에서도 이 지점을 직설적으로 경고한다. 연준 이사 Lisa Cook은 AI가 노동시장을 “세대적 변환”으로 몰고 가며 단기 실업 상승이 나타날 수 있고, 이를 통상적인 금리 인하로 쉽게 상쇄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이것은 화이트칼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AI가 소프트웨어로 사무 작업을 먹어치울 때, 로보틱스·센서·비전이 결합된 자동화는 물류·제조·유통의 작업을 동시에 잠식한다. 즉, **“화이트칼라의 자동화 + 블루칼라의 무인화”**가 같은 시간대에 진행될 수 있다.
결국 미시적 결론은 이것이다.
기업의 손익계산서: 인건비 절감 → 마진 개선 → 주가·투자 유인 강화
가계의 현금흐름: 임금 정체/감소 + 실업 위험 증가 → 소비 위축
IMF는 GenAI가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이 국가·직무에 따라 다르지만, 노동소득 불평등이 커질 수 있고, 자본 수익 증가는 부의 불평등을 확대할 수 있다고 정리한다(생산성 이익이 충분히 크면 모두가 나아질 수도 있으나, 그 조건이 핵심).
이 지점에서 ‘트럼포노믹스 2.0의 숨은 전제’가 흔들린다. AI가 생산성을 올려도, 그 생산성이 ‘가계 소득’으로 환류되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을 잠재울 만큼의 ‘건강한 공급 확대’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수요 기반이 먼저 무너질 수 있다.
거시경제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AI가 만들어낸 더 많은 재화·서비스를 누가 사줄 것인가?”
AI 생산성이 ‘노동 대체형’으로 나타나면, 총공급은 늘어도 총수요는 약해진다. 여기에 관세가 물가를 올려 실질 구매력을 갉아먹는 충격이 더해진다. CBO는 트럼프 관세가 2025~2026년 물가를 연평균 0.4%p 올려 구매력을 낮출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실질 산출이 감소한다고 추정했다.
관세의 부담이 해외 기업이 아니라 국내 소비자·기업으로 전가된다는 연구는 이 충격을 더 직접적으로 만든다. 뉴욕연은 2025년 관세의 부담 대부분이 미국 내에 귀착된다는 결과를 제시한다.
즉, ‘관세 인플레이션’은 단지 가격표의 문제가 아니라, 실질소득을 깎아 내수를 약화시키는 구조적 압박이다. 그리고 AI발 고용 충격이 가시화되면, 내수는 “둔화”가 아니라 붕괴로 접근할 수 있다.
이제 연준은 전형적인 “정책 함정(Policy Trap)”에 갇힌다.
관세가 만드는 비용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 수요를 눌러야 한다.
AI 노동 대체가 만드는 총수요 붕괴를 막으려면: 금리를 내려 자산가격·신용을 떠받쳐야 한다.
연준 내부에서조차 “AI가 생산성을 올리는 과정에서 실업이 늘 수 있고, 그 실업은 기존의 수요관리 정책만으로 완화하기 어렵다”는 경고가 나온다. 쿡 연준 이사는 AI발 실업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이 ‘수요 부족’이 아닐 수 있어, 금리 인하가 오히려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는 딜레마를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재정정책까지 더해지면 함정은 깊어진다. 2025년 7월 4일 서명된 감세·지출 법안은 CBO 기준 10년 누적 적자를 3.4조 달러 확대한다. 부채가 불어나는 환경에서 금리의 ‘중립 수준’ 자체가 흔들릴 수 있고(국채 공급·차입비용), 통화정책의 기동성은 더 나빠진다.
관세는 공급 측 비용 충격, AI 노동 대체는 분배·소득 경로의 수요 충격이다. 둘이 결합하면 물가는 오르고
(또는 잘 안 내려가고), 성장은 꺾이고, 고용은 흔들리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조건이 형성된다.
당신의 문제 제기처럼, 미국이 AI·로봇으로 고도 자동화된 공장을 자국에 구축해 한계비용을 극단적으로 낮춘다면, 전통적 의미의 “국내 일자리 보호를 위한 관세”는 논리적 힘을 잃는다. 일자리는 자동화로 이미 줄어든다. 보호할 노동이 사라지는 순간, 관세는 산업 보호가 아니라 가격 인상 장치로 성격이 바뀐다.
노동 대체형 AI 생산성은 내수를 약하게 만든다. 그때 남는 탈출구는 한 가지다.
글로벌 수출 시장.
생산력이 폭증해도, 물건을 팔아야 성장과 이익이 완성된다.
그런데 보호무역은 바로 그 유일한 출구를 스스로 좁힌다. 2018년 “보호무역으로의 회귀”를 분석한 연구는 수입관세와 보복관세가 수입·수출을 함께 크게 줄였고, 관세 대상 수입품 가격이 내려가지 않아(완전 전가) 결국 소비자·기업에 실질 손실이 발생했다고 정리한다.
OECD 또한 높은 관세와 정책 불확실성이 투자·교역을 위축시키며 2026년 성장 둔화를 예측한다.
이 지점에서 트럼포노믹스 2.0의 구조적 모순이 드러난다.
AI·자동화로 초효율 생산체계를 만들수록
그 생산물을 흡수할 국내 수요는 약해지고
남은 건 해외 수요인데
고관세는 보복과 분절화를 불러 해외 수요를 막는다
결국 “과잉 생산의 저주”가 현실이 될 수 있다. 공장은 돌아가는데, 시장이 없다.
이 상황에서는 생산성 향상은 축복이 아니라 디플레 압력과 수익성 붕괴로 돌아올 수도 있다(특히 수요 붕괴가 먼저 오면).
논리적 귀결은 냉정하다. AI 시대의 패권은 “국경을 세워 보호하는 힘”이 아니라 “초저비용 생산을 전 세계 시장에 파는 힘”이다. 그래서 진정한 패권 전략은 (역설적으로) 시장 접근성과 교역 안정성을 극대화하는 쪽, 즉 자유무역·규칙 기반 통상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의 조합은 정반대다. 관세는 물가를 올리고, 감세는 재정을 흔들며, 그 사이를 “AI 생산성”이라는 미확정의 변수로 덮으려 한다. 거시 생산성에서 AI의 효과가 아직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존재하고, 연준 내부에서도 AI 전환기에 단기 실업 상승과 정책 딜레마를 경고한다.
그리고 이 실패는 미국 내부에서 끝나지 않는다. 글로벌 수요 위축 + 환율 불안으로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곳은 수출 중심 경제들이다.
한국은 그 최전선에 있다. OECD는 한국이 미국에 대한 교역·가치사슬 노출이 크며(직접·간접), 대미 관세 체계 변화가 거시 변수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IMF 역시 “높아진 미국의 유효 관세가 한국 수출에 부담”이라고 명시한다.
실물에서는 현대·기아가 관세로 약 49.8억 달러 타격을 언급했고, 수출은 AI 투자발 반도체 호황에도 미국 관세 불확실성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환율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은 원/달러가 기본적으로 글로벌 달러 가치(DXY)에 크게 좌우된다고 설명하며, 2026년에도 달러 강세·엔 약세 등 대외 요인이 USD/KRW에 핵심 변수로 작동한다고 본다. 여기에 대외자산 투자 쏠림으로 인한 달러 수요까지 겹치면 변동성은 확대된다.
결국 결론은 하나다.
20세기 보호무역의 논리로 21세기 AI 혁신의 충격을 통제하려는 ‘배수진’은, AI가 약속한 생산성의 형태가 ‘고용과 소득을 동반한 확장’이 아니라 ‘대체와 분배 악화’로 나타나는 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