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고뇌는 어떻게 표현되는가

한로로의 MV들 속 “달리기”를 중심으로

by 지적 지니


청춘(靑春)이라는 단어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빈번하게 차용되는 클리셰 중 하나다. 하지만 이 단어가 품고 있는 불확실성, 불안, 그리고 요동치는 감정선은 본질적으로 형태가 없는 ‘추상적 개념'이다. 우리는 청춘이 아프고 고뇌한다고 말하지만, 그 고통의 질량이나 부피를 잴 수는 없다.


이 지점에서 싱어송라이터 한로로(HANRORO)의 작업물들은 매우 독특한 시각적, 청각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의 뮤직비디오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달리기'는 단순한 청춘물의 미장센이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고뇌하는 청춘'이라는 추상적 덩어리를, 우리 눈에 보이고 느낄 수 있는 측정 가능한 단위이자 현상으로 변환(Conversion)하는 치열한 물리적 과정이다.


1. 심박수와 호흡: 추상적 불안의 '정량화'

한로로의 음악 속 화자는 자주 비틀거리고,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거나 혹은 무언가를 향해 맹렬히 돌진한다. 카메라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채 달리는 인물들의 땀방울과 헝클어진 머리카락, 흔들리는 동공을 집요하게 담아낸다.


여기서 '달리기'는 감정의 계기판 역할을 한다.

* 측정 불가한 불안감 -> BPM(심박수)의 상승

* 마음속의 짓눌림과 답답함 -> 산소 부족으로 가빠지는 호흡 (호흡수)

* 내면의 응어리진 슬픔 -> 피부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 (수분 배출량)


우울과 불안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총량은, 한로로의 세계에서 인물이 내딛는 발걸음의 속도와 헉헉대는 숨소리로 정확히 치환된다. 마음이 무거울수록 발걸음은 더 필사적이고 역동적으로 변한다. 즉, 한로로에게 달리기란 '고뇌의 질량'을 '운동 에너지'로 변환하여 증명하는 과학적이고도 감각적인 실험인 셈이다.


2. 목적지 없는 질주: 방향성을 잃은 세대의 운동성

보통의 달리기에는 시작점과 결승선이 존재한다. 그러나 한로로의 뮤직비디오 속 달리기는 철저히 '과정' 그 자체에 집중되어 있다. 인물들은 육상 트랙 위를 질서 정연하게 달리지 않는다. 텅 빈 도로, 어두운 골목, 들판을 폼이 망가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우당탕 뛰어간다.


이러한 ‘방향타 없는 운동성'은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사회적 현상을 정확히 은유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는 고뇌 속에서 가만히 멈춰 서서 침잠하는 대신, 이들은 일단 근육을 수축시키고 관절을 움직여 땅을 박차고 나간다. 목적지가 있어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쌓인 고뇌의 에너지가 임계점을 돌파했기 때문에 물리적인 폭발(달리기)로 터져 나온 것이다.


3. 통각의 이동: 정신적 고통을 육체적 피로로 덮다

현대 청춘들의 고뇌는 대부분 육체가 아닌 정신의 영역에서 발생한다. 한로로의 음악이 대중에게 짙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이유는 이 정신적 고통을 육체적 피로로 덮어버리는 해소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력 질주를 하고 나면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은 증발하고, 오직 '숨이 차다', '다리가 아프다'는 원초적인 감각만 남는다. 한로로의 음악은 록 사운드의 강렬한 디스토션과 터져 나오는 보컬을 통해 청자를 이 가상의 질주에 동참시킨다. 추상적인 고뇌에 잠식당하는 대신, 그것을 두 다리의 근육통과 터질 듯한 폐의 고통으로 변환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살아있음'을 실감하게 만드는 것이다.


맺음말: 살아 숨 쉬는 청춘의 물리 법칙

결론적으로, 한로로의 뮤직비디오 속 달리기는 단순히 젊음을 낭만화하는 시각적 클리셰가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고뇌(추상)는 질주(현상)를 통해 그 크기를 증명할 수 있다"는 한로로만의 독자적인 청춘의 물리 법칙이다.


그는 청춘의 아픔을 방구석의 일기장에 머물게 두지 않는다. 문을 열고 나가 중력을 거스르며 뛰게 만든다. 땀과 흙먼지, 거친 숨소리라는 명확하고 측정 가능한 물리적 현상으로 자신의 고뇌를 스크린 위에 쏟아내는 이 솔직한 방식이야말로, 지금 대중이 한로로의 음악에 기꺼이 자신의 심장 박동을 동기화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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