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화 기계, 혹은 양심의 산업적 무력화에 관하여
1편에서 우리는 윤리가 얼마나 이익관계에 취약한지를 구조적으로 살펴보았다. 개인의 인지편향에서 조직의 인센티브 체계, 국가의 이데올로기 장치에 이르기까지, 윤리적 판단은 이익의 중력장 안에서 체계적으로 왜곡된다. 그것이 인간 본성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면, 이제 물어야 할 것은 이렇다: 그 구조가 역사 속에서 실제로 어떻게 작동해왔는가?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윤리가 이익 앞에서 후퇴한 사례들을 나열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열은 감정적 공분을 자극하지만 이해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사례들을 관통하는 패턴을 읽어내는 것이다. 식민지배에서 담배산업으로, 제약회사에서 소셜미디어로 — 시대도 산업도 전혀 다른 이 사례들이 놀라울 정도로 동일한 문법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이 글은 보여줄 것이다.
그 문법에 이름을 붙이자. 정당화 기계(justification machine)라고 말이다.
서문: "문명화 사명"이라는 최초의 프로토타입
역사상 가장 대규모로 윤리가 이익에 봉사한 사례는 유럽의 식민지배다. 아프리카 대륙의 분할, 인도의 수탈, 동남아시아의 착취 — 이 모든 것에는 하나의 공통된 수사적 외피가 있었다. "문명화 사명(mission civilisatrice)"이라는 이름이다.
순서를 주목하라. 이익이 먼저 있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향신료와 면화의 교역 이윤을 위해 인도에 진출했다.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는 상아와 고무를 위해 콩고를 사유지로 삼았다. 네덜란드는 향신료 무역의 독점을 위해 인도네시아 군도 전체를 지배했다. 경제적 동기는 명확하고, 문서로 남아 있으며, 논쟁의 여지가 없다.
윤리적 정당화는 그 다음에 왔다. "미개한" 원주민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고, "야만적" 관습을 교정하며, "문명의 빛"을 가져다주겠다는 서사가 착취의 위에 덧씌워졌다. 러디어드 키플링이 1899년에 쓴 「백인의 짐(The White Man's Burden)」은 이 정당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식민지배는 지배자에게 부담이지만 고귀한 의무라는 것이다. 착취자가 스스로를 희생자로, 더 나아가 은인으로 재정의하는 이 놀라운 수사적 전환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도덕 심리가 가진 구조적 특성이다. 1편에서 다루었듯, 인간은 직관적 도덕 판단을 먼저 내린 뒤 합리화를 사후에 구성한다. 식민지배자들은 자신이 "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인식하지 못했거나, 인식하더라도 그것을 더 큰 선의 일부로 재해석했다. 이 자기기만은 의식적인 위선보다 훨씬 위험하다. 위선자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정당화 기계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거짓말을 진실로 믿는다.
식민지배의 윤리적 외피가 벗겨지는 데는 수 세기가 걸렸다. 20세기 중반의 탈식민운동은 "문명화 사명"이라는 서사가 허구였음을 폭로했지만, 그때는 이미 대륙 전체의 자원이 수탈된 뒤였다. 이것이 정당화 기계의 시간적 특성이다: 기계가 작동하는 동안 이익은 실현되고, 기계가 해체될 때쯤에는 되돌릴 수 없는 피해가 이미 완료되어 있다.
식민지배는 정당화 기계의 역사적 *원형(prototype)*이다. 이제 이 원형이 현대에 어떻게 반복 재생산되는지를 세 영역에서 추적한다.
I. 국가의 정당화 기계: "안보"가 인권을 삼킬 때
이란, 1953년 — 민주주의를 전복한 "자유세계"
1953년 8월, 이란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총리 모하마드 모사데크가 CIA와 MI6의 합작 쿠데타로 축출되었다. 작전명은 에이잭스(Operation Ajax). 모사데크의 "죄"는 영국이 통제하던 앵글로-이란 석유회사(현 BP)의 국유화를 추진한 것이었다.
순서를 보자. 이익이 먼저 있었다. 이란 석유의 통제권이 핵심 쟁점이었다. 영국은 자국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고 싶었고, 미국은 냉전 구도에서 이란이 소련 쪽으로 기울 가능성을 차단하고 싶었다.
정당화는 다음에 왔다. 모사데크를 "공산주의 위협"으로 프레이밍한 것이다. 실제로 모사데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민족주의자였고, 이란의 자원 주권을 주장한 민주적 지도자였다. 그러나 "자유세계 수호"라는 냉전의 대서사 안에서, 서방 기업의 이익에 반하는 모든 민족주의 운동은 "공산주의의 침투"로 재해석될 수 있었다. 이것이 정당화 기계의 작동 방식이다 — 특정한 이익을 보편적 가치("자유", "민주주의")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
쿠데타 이후 복귀한 팔라비 왕조는 26년간 독재를 지속했고, 비밀경찰 사바크(SAVAK)를 통해 수만 명을 고문하고 투옥했다. 그리고 이 독재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폭발했을 때, 미국은 "왜 이란이 우리를 미워하는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정당화 기계는 가해자의 기억마저 재편한다.
칠레, 1973년 — 경제적 이익의 군사적 관철
20년 후, 거의 동일한 시나리오가 남미에서 반복된다. 1973년 9월 11일 — 또 다른 9/11 — 칠레의 민주 정부가 군사 쿠데타로 전복되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사회주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몬에다 궁에서 사망했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군사독재를 수립했다.
미국의 관여는 이후 기밀해제된 문서들을 통해 확인되었다. 닉슨 대통령과 키신저 국무장관은 아옌데 정부를 불안정화시키기 위한 공작을 승인했다. ITT(당시 칠레 전화회사의 대주주)와 아나콘다 구리회사를 포함한 미국 기업들의 이익이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었다.
여기서도 정당화의 문법은 동일하다. "공산주의 확산 저지"라는 냉전의 대의가 민주 정부 전복의 윤리적 비용을 가려주었다. 키신저의 말은 유명하다: "칠레 국민이 무책임하게 투표했다고 해서 우리가 그냥 서서 지켜보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이 문장은 정당화 기계의 내부 논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자유세계 수호"라는 명분은 자유로운 선거의 결과마저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상위 가치로 기능한다.
패턴의 추출: "안보" 예외주의
이란과 칠레, 그리고 과테말라(1954), 인도네시아(1965), 아르헨티나(1976)에 이르기까지, 냉전기 미국이 지원하거나 묵인한 쿠데타와 독재 정권의 목록은 길다. 이 사례들을 관통하는 것은 하나의 논리적 구조다: "안보"라는 상위 가치가 인권이라는 하위 가치를 체계적으로 삼키는 구조.
이 구조의 핵심은 "안보 예외주의(security exceptionalism)"다. 안보 위협이 존재한다고 선언되는 순간, 평시의 윤리적 제약은 "현실을 모르는 순진함"으로 격하된다.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realism) 전통은 이 예외주의에 학문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 국가는 무정부적 국제 체제에서 생존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행위자이며, 도덕은 그 생존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밀해제된 문서들이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안보 위협"의 판단 자체가 경제적 이익에 의해 오염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란에서 진짜 위협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석유 국유화였다. 칠레에서 진짜 위협은 "소련의 팽창"이 아니라 구리 산업의 국유화였다. "안보"라는 단어는 경제적 이익을 윤리적으로 세탁하는 용매(solvent)로 기능했다.
II. 기업의 정당화 기계: "과학적 불확실성"이라는 방패
국가가 "안보"를 통해 윤리를 무력화했다면, 기업은 "과학적 불확실성"을 통해 동일한 작업을 수행한다. 이 전략의 원조는 담배산업이고, 그 전략은 이후 석유산업과 제약산업으로 정확하게 복제되었다.
담배산업: 의심 제조의 발명
1950년대 초,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과학적 증거가 축적되고 있었다. 리처드 돌과 브래드퍼드 힐의 역학 연구(1950), 에른스트 윈더의 동물 실험(1952) 등이 잇따라 발표되었다. 1952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한 갑의 암(Cancer by the Carton)'이라는 기사는 이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전달하며 담배 매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담배 기업들의 내부 문서가 보여주는 것은, 이 시점에 기업의 과학 자문들도 흡연의 유해성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 과학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담배가 사람들이 끊을 수 없는 습관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또 다른 임원은 말했다: "우리 회사가 최초로 암을 유발하지 않는 담배를 만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발언들은 기업 내부에서 흡연의 유해성이 이미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1953년 12월 14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주요 담배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모여 내린 결정은 과학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PR 회사 힐 앤 놀턴(Hill & Knowlton)을 고용하여 과학에 맞서는 전략을 설계했다. 힐 앤 놀턴의 내부 메모가 그 전략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하나의 본질적 임무가 있다 — 대중의 공포를 멈추는 것."
이 전략의 천재성은, 과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대신 "불확실성"을 제조했다는 점에 있다. 1954년 1월, 담배 기업들은 미국 전역 448개 신문에 "담배 흡연자에게 보내는 솔직한 성명(A Frank Statement to Cigarette Smokers)"이라는 전면 광고를 게재했다. 이 광고는 흡연이 안전하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 그렇게 했다면 쉽게 반박당했을 것이다. 대신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라는 증명은 아직 없다"고 주장했다. 과학의 표준 — 절대적 확실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지식은 잠정적이다 — 을 역이용한 것이다. 과학이 "99% 확실하다"고 말할 때, 그 1%의 불확실성을 확대하여 마치 과학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연출하는 전략이었다.
1969년의 브라운 앤 윌리엄슨(Brown & Williamson) 내부 메모는 이 전략의 논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의심이 우리의 상품이다(Doubt is our product)." 이 문장은 20세기 기업 역사에서 가장 솔직한, 그리고 가장 파괴적인 문장 중 하나다. "의심"이라는 단어를 "상품"이라는 단어와 결합시킨 이 표현은, 인식론적 조작이 하나의 사업 모델이 될 수 있음을 선언한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힐 앤 놀턴이 담배산업과 계약한 1954년부터 1961년까지, 연간 담배 판매량은 3,690억 개비에서 4,880억 개비로 증가했다. 과학은 흡연이 암을 유발한다고 말하고 있었고, 기업의 과학자들도 이를 내부적으로 인정하고 있었지만, "의심 제조" 캠페인은 대중의 행동 변화를 수십 년 지연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수십 년 동안 수백만 명이 폐암으로 사망했다.
이것이 정당화 기계의 기업적 변형이다. 국가의 정당화 기계가 "안보"라는 상위 가치를 통해 윤리적 비용을 가려주었다면, 기업의 정당화 기계는 "과학적 불확실성"이라는 인식론적 연막을 통해 동일한 작업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 연막의 가장 악랄한 점은, 그것이 과학의 언어를 사용하여 과학을 무력화한다는 데 있다.
석유산업: 의심 제조의 완벽한 복제
담배산업이 발명한 "의심 제조" 전략은 1980년대 석유산업에 의해 거의 완벽하게 복제되었다. 그리고 그 복제의 사례는 담배보다 더 극적이다. 왜냐하면 석유 기업들은 단순히 외부 과학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정확한 과학을 수행한 뒤 그 결과를 은폐하고 정반대의 메시지를 퍼뜨렸기 때문이다.
2023년 하버드 대학 연구진이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논문은 이 사실을 정량적으로 증명했다. 연구진은 1977년부터 2003년까지 엑손모빌 소속 과학자들이 작성한 내부 보고서들을 분석했다.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엑손의 내부 기후 모델은 "놀라운 수준의 정확성과 숙련도"로 지구 온난화를 예측하고 있었다. 그 예측의 정확도는 63%에서 83%에 달했고, 이는 같은 시기 독립적인 학술 모델과 동일하거나 심지어 더 높은 수준이었다.
구체적으로 엑손의 과학자들은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1977년, 엑손의 선임 과학자 제임스 블랙은 경영진에게 화석연료 연소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증가시키고 있으며, 이산화탄소 농도가 두 배가 되면 지구 평균 기온이 2~3도 상승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 이 수치는 40년 후 과학적 합의와 일치한다. 블랙은 "대응이 필요한 시간적 여유가 5년에서 1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1982년에는 엑손의 내부 보고서가 이산화탄소 농도가 2010년까지 400ppm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 실제로 400ppm은 2013년에 돌파되었다.
그런데 1980년대 말부터 엑손은 방향을 완전히 전환했다. 자사의 과학 연구가 확인한 바로 그 결론을 외부적으로 부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1989년, 엑손은 기후과학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 "글로벌 기후 연합(Global Climate Coalition)"을 공동 설립했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연구·옹호 단체들에 1,600만 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1989년부터 2010년까지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에 매주 목요일 "기후과학은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유료 기고문을 게재했다.
담배산업의 "의심이 우리의 상품이다"라는 전략이 여기서 정확히 재현된다. 엑손의 1997년 CEO 리 레이먼드는 세계석유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21세기 이후 기후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 우리가 정말로 모르는 것이 많다는 점에 동의하자." 이 발언은, 자사 과학자들이 그 변화를 10년 이상 전부터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서 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한 거짓말의 문제가 아니다. 엑손은 동시에 두 개의 현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기후변화 과학을 활용하여 사업 계획을 수립했다 — 예컨대 북극 해빙에 따른 시추 기회를 평가하고, 해수면 상승에 대비한 시설 설계를 진행했다. 외부적으로는 바로 그 과학의 신뢰성을 부정했다. 이 이중 운영은 단순한 위선을 넘어서, 인식론 자체를 사업 전략의 도구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 결과 기후행동은 수십 년 지연되었다. 수십 년은 지구 기후 시스템에서 되돌릴 수 없는 차이를 만든다. 엑손의 과학자들이 1977년에 경고한 "5~10년의 시간적 여유"가 지금으로부터 거의 반세기 전의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매년 갱신되는 기온 기록과 극단적 기상현상의 증가를 통해 체감하고 있다.
제약산업: 통증과 이익의 "자연스러운" 연결
담배산업이 "의심의 제조"를, 석유산업이 "과학의 이중 운영"을 보여주었다면, 제약산업의 퍼듀파마(Purdue Pharma)는 정당화 기계의 또 다른 변형을 보여준다: 의학적 선의의 언어로 포장된 체계적 중독 생산.
옥시콘틴(OxyContin)은 모르핀의 두 배 강도를 가진 강력한 오피오이드 진통제다. 1996년 출시 이후, 퍼듀파마는 이 약의 중독 위험이 1% 미만이라고 주장하며 공격적으로 마케팅했다. 3,000명의 의사를 자사 강연 프로그램에 참여시켰고, 영업 사원들에게 "서방형 제형 덕분에 중독성이 낮다"고 의사들에게 말하라고 지시했다. "중독에 빠지는 것은 '중독 성격'을 가진 사람들뿐"이라는 주장을 유포했다.
그러나 법정에 공개된 내부 문서들은, 퍼듀파마의 경영진이 옥시콘틴의 높은 남용·중독·사망 가능성을 이미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회사는 약이 으깨져 코로 흡입되고 있다는 사실을 초기부터 인지했으나, 덜 중독적이고 더 안전하다는 마케팅을 계속했다. 리처드 새클러 — 퍼듀파마를 소유한 새클러 가문의 핵심 인물 — 가 쓴 내부 이메일에는 오피오이드 남용 피해자들을 "무모한 범죄자들"이자 "인간 쓰레기"로 지칭하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었다.
가장 냉혹한 대목은 이것이다. 퍼듀파마는 자사의 오피오이드가 만들어낸 중독 위기를 또 다른 사업 기회로 보았다. 내부 전략 자료에 따르면 퍼듀는 "통증 치료와 중독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Pain treatment and addiction are naturally linked)"고 분석하고, 중독 치료제와 과용량 해독제 시장에 진출하는 계획을 세웠다.
코드명은 "프로젝트 탱고(Project Tango)"였다. 중독을 유발하는 약을 팔면서 동시에 중독 치료제를 파는 사업 모델 — 이것은 더 이상 윤리의 실패가 아니라 윤리의 체계적 부재다.
미국 하원 감독위원회 청문회에서 한 의원이 새클러 가문에게 던진 질문은 이 사건의 본질을 찌른다: "거리에서는 이미 옥시가 한 번 복용하면 중독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거리가 퍼듀 이사회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는 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이사회도 알고 있었다. 다만 "모르는 것"이 수십억 달러의 이익과 정렬되어 있었을 뿐이다.
20년간 45만 명 이상이 오피오이드 과용량으로 사망했다. 위기의 비용은 연간 1조 달러 이상으로 추산된다. 새클러 가문은 2008년에서 2018년 사이에 퍼듀에서 100억 달러 이상을 인출하여 역외 계좌와 신탁에 분산시켰다. 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던 세계 유수의 대학과 미술관에서 그 이름이 제거된 것은, 정당화 기계가 해체된 뒤의 상징적 청산이지만, 그것이 이미 실현된 이익과 이미 발생한 죽음을 되돌리지는 못한다.
기업 사례들을 관통하는 공통 전략
담배, 석유, 제약 — 산업은 다르지만 전략의 문법은 놀랍도록 동일하다. 이 문법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인식론적 공격. 과학적 합의에 직접 반박하는 대신, "불확실성"을 증폭시켜 합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연출한다. 이 전략은 과학의 내적 특성 — 모든 지식은 잠정적이라는 점 — 을 역이용한다. 과학자들이 정직하게 인정하는 불확실성의 범위를, 기업은 "아직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주장의 근거로 전용한다.
둘째, 시간 벌기(time buying). 목표는 과학을 영구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 그것은 불가능하다. 목표는 규제가 도입되기까지의 시간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것이다. 담배산업은 수십 년, 석유산업도 수십 년, 제약산업은 적어도 10년 이상을 벌었다. 그 시간 동안 이익은 계속 실현되었고, 피해는 계속 축적되었다.
셋째, 비용의 외부화. 이익은 기업이 가져가고, 비용은 사회가 부담한다. 폐암 환자의 치료비는 공공 의료 시스템이, 기후변화의 비용은 미래 세대가, 오피오이드 중독의 비용은 지역사회와 가족이 부담한다. 이 비용 전가 구조가 유지되는 한, 기업에게 윤리적 행동의 인센티브는 존재하지 않는다.
III. 기술의 정당화 기계: "혁신"과 "연결"이라는 새로운 외피
국가에게 "안보"가, 기업에게 "과학적 불확실성"이 정당화의 도구였다면, 기술산업은 어떤 도구를 사용하는가? 답은 "혁신(innovation)"과 "연결(connection)"이다. 이 두 단어는 21세기의 가장 강력한 윤리적 면책부로 기능한다.
소셜미디어: 알면서 외면한 피해
2021년 10월, 전직 페이스북(현 메타) 제품 매니저 프랜시스 하우겐(Frances Haugen)이 수천 건의 내부 문서를 유출하며 내부 고발자로 나섰다. 이 문서들은 "페이스북 파일(The Facebook Files)"이라는 이름으로 월스트리트 저널을 통해 공개되었다.
하우겐이 공개한 내부 연구는, 메타가 자사 플랫폼의 유해성을 정확히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메타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영국 10대 소녀의 13.5%가 인스타그램이 자살 충동을 악화시킨다고 응답했고, 17%는 섭식 장애를 악화시킨다고 응답했다. 내부 프레젠테이션에는 "우리는 세 명 중 한 명의 10대 소녀에게 신체 이미지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문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 다른 내부 조사에서는 페이스북 사용자의 약 12.5% — 대략 3억 6천만 명 — 가 자신의 플랫폼 사용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며, 이것이 건강과 업무와 관계에 해롭다고 인정하고 있었다.
이 데이터는 학술적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 자기보고식 조사의 한계, 인과관계 입증의 어려움 등. 그러나 핵심은 데이터의 결정성이 아니다. 핵심은 메타가 이 데이터를 가지고 무엇을 했는가, 더 정확히는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이다.
하우겐의 증언에 따르면, 메타는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알고리즘을 수정하거나 10대 사용자를 보호하는 대신,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았고, 성장과 사용자 참여를 계속 최적화했다. 하우겐은 미국 상원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충돌할 때마다 페이스북은 이익을 선택했다." 메타는 13세 미만 사용자를 위한 "인스타그램 키즈" 개발을 추진하다가 논란이 커진 뒤에야 "일시 중단"했다. 중단이지, 취소가 아니었다.
"연결"이라는 정당화의 언어
여기서 기술산업의 정당화 기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볼 수 있다. 소셜미디어 기업의 공식 서사는 "사람들을 연결한다(connecting people)"는 것이다. 이 서사 안에서 플랫폼의 성장은 곧 "더 많은 연결" = "더 많은 선(善)"으로 등치된다. 사용자 수의 증가는 단순한 사업 지표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의 지표로 프레이밍된다.
이 프레이밍이 정당화 기계로 기능하는 방식은 담배산업의 전략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담배산업이 "과학적 불확실성"을 방패로 사용하여 유해성 인정을 회피했듯, 기술산업은 "연결의 가치"를 방패로 사용하여 알고리즘의 유해성을 희석한다. "소셜미디어는 이롭기도 하고 해롭기도 하다"는 양시론(兩是論)은, 그 자체로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구실로 사용될 때 정당화 기계의 부품이 된다.
그리고 기술산업의 정당화 기계에는 이전 산업에 없었던 새로운 요소가 하나 있다: 속도의 비대칭. 기술이 윤리적 문제를 생산하는 속도가 규제와 사회적 합의가 그 문제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속도보다 구조적으로 빠르다. 페이스북이 2004년에 출범하고 전 세계 30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반면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사용에 관한 의미 있는 규제는 아직도 대부분의 국가에서 부재하다.
이 속도의 비대칭은 기술기업에게 구조적 이점을 제공한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담배산업식 논변이 기술 영역에서는 실제로 어느 정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사회적 영향은 빠르게 변화하고, 연구는 기술의 진화를 따라잡기 어렵다. 그 틈 — 기술의 속도와 이해의 속도 사이의 틈 — 에서 이익이 실현되고, 그 이익이 충분히 축적된 뒤에야 규제가 도래한다.
이 구조는 긱이코노미(gig economy)에서도 반복된다. 우버(Uber)와 리프트(Lyft)는 "기술 플랫폼"이지 "운송 회사"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정의함으로써 노동법의 적용을 우회했다. 이 분류(classification)의 문제는 법적 논쟁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윤리적 책임의 문제다. 노동자를 "독립 계약자"로 분류하는 것은 최저임금, 건강보험, 유급휴가 등의 비용을 기업으로부터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하는 메커니즘이다. "혁신"과 "유연성"이라는 언어가 이 전가를 가려준다.
IV. 패턴의 종합: 정당화 기계의 작동 원리
식민지배에서 냉전 쿠데타로, 담배산업에서 석유산업으로, 제약회사에서 소셜미디어로 — 시대와 영역을 가로지르며 이 사례들을 추적한 결과, 하나의 반복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구조를 정당화 기계의 작동 순서(operational sequence)로 정리할 수 있다.
1단계: 이익의 발생. 특정 행위가 특정 주체에게 이익을 제공한다. 식민지배의 자원 수탈, 담배 판매의 이윤, 석유 연소의 에너지, 오피오이드 처방의 매출, 사용자 참여의 광고 수익.
2단계: 윤리적 비용의 인지. 그 행위가 윤리적 비용을 수반한다는 것이 내부적으로 인지된다. 이 인지는 거의 항상 외부 폭로보다 먼저 이루어진다. 담배 기업은 외부 과학자들의 발표와 동시에, 석유 기업은 학계보다 먼저, 제약회사는 규제기관보다 먼저, 소셜미디어 기업은 언론보다 먼저 자사 제품의 유해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3단계: 정당화의 구성. 여기가 기계의 핵심 부품이다. 인지된 윤리적 비용을 무력화하기 위한 서사가 구성된다. 사용되는 수사적 도구는 영역에 따라 다르지만, 구조는 동일하다:
상위 가치 호소: "안보", "자유세계", "문명화 사명" (국가 영역)
불확실성 증폭: "과학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기업 영역)
양시론: "이롭기도 하고 해롭기도 하다" (기술 영역)
필요악 논리: "이 비용은 더 큰 이익을 위해 불가피하다" (모든 영역)
4단계: 윤리 후퇴의 제도화. 정당화가 성공하면, 윤리적 비용의 묵인이 일상적 관행으로 제도화된다. 독재 정권에 대한 무기 수출이 "외교 정책"이 되고, 기후과학 부정이 "기업의 입장"이 되며, 중독 설계가 "사용자 참여 최적화"가 된다. 제도화 단계에서는 더 이상 의식적인 악의가 필요하지 않다 — 시스템 자체가 비윤리적 결과를 자동으로 생산한다.
5단계: 사후적 폭로와 공분. 내부 문서가 유출되거나, 피해가 무시할 수 없는 규모에 도달하거나, 내부 고발자가 나서면서 정당화의 허구가 폭로된다. 대중적 공분이 일어나고, 규제가 도입되고, 때로는 법적 처벌이 따른다.
6단계: 그러나 이익은 이미 실현되었다. 이것이 정당화 기계의 가장 잔인한 특성이다. 기계가 해체될 때쯤이면, 이익은 이미 특정 주체에게 귀속되어 있고, 비용은 이미 사회에 분산되어 있다. 담배 기업의 경영진은 수십 년간 배당금을 수령한 뒤 은퇴했고, 석유 기업의 주주들은 기후변화의 비용이 본격화되기 전에 이미 부를 축적했으며, 새클러 가문은 100억 달러를 역외 계좌로 빼돌린 뒤 파산 신청을 했다.
그리고 이 6단계 순환은 끝나지 않는다. 한 영역에서 정당화 기계가 폭로되어도, 다른 영역에서 새로운 기계가 이미 작동하고 있다. 담배산업의 전략이 폭로된 뒤에 석유산업이 같은 전략을 사용했고, 석유산업의 전략이 비판받고 있는 동안 기술산업이 새로운 버전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정당화 기계는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진화한다.
결론을 대신하여: 그래서, 무엇을 볼 것인가
이 글이 나열한 사례들 앞에서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충분한 반응은 아니다. 분노는 개별 행위자의 악의에 초점을 맞추지만,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악의가 아니라 구조다.
이 사례들에 등장하는 인물 중 상당수는 자신이 악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냉전기 외교관들은 진심으로 "자유세계"를 지키고 있다고 믿었다. 담배 기업의 PR 담당자들은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엑손의 경영진은 "에너지 안보"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믿었다. 소셜미디어 기업의 엔지니어들은 "사람들을 연결하는" 기술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퍼듀파마조차 "통증 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기업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정당화 기계의 진정한 위험이다. 그것은 악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구조적 인센티브와 수사적 프레이밍의 조합만으로, 선의의 사람들이 체계적으로 비윤리적인 결과를 생산하게 만든다.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고 부른 것의 기업적·제도적 확장이다.
그렇다면 이 패턴을 정성적 관찰에 머무르지 않고 정량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가? 윤리가 이익 앞에서 후퇴하는 빈도와 규모를 데이터로 측정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데이터가 어떤 법칙성을 보여주는가?
이것이 3편에서 다룰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