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렌체'

(행복이란 무엇인가!. 인생 여정)

해외 영화제에서 3관왕을 차지한 영화 '피렌체'를 관람했다.

영화 제목만으로도 이탈리아의 보석 같은 도시 '피렌체'가 좋았다. 이탈리아로 떠나듯이 관람을 위해 의자에 앉으니 아니나 다를까 석인(김민종)이 비행기를 타며 영화가 시작된다. 나도 모르게 의자를 꼭 잡는다.

아름다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올 로케이션 촬영한 영화, 스크린으로 떠나는 힐링 여행이었다.

해외 영화제에서 작품성까지 인정받았으니 더 뜨겁지 않았겠는가!


공항 가는 길 택시 안, 피렌체로 향하는 중년의 신사 석인의 얼굴이 무겁다. 통화 중에 딸이 아름다운 이탈리아를 즐겁게 이야기하는데도 여전히 얼굴이 어둡다. 왜 그럴까!


직장 생활 수십 년째, 최근에는 매번 연속되는 여러 가지 실수로 인해 타인들에게 지적질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 생활을 계속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자신도 본인이 믿기 힘들어질때가 있다는 걸 느낀다. 딸과 함께 약속했던 부인 산소에 성묘 가는 일 조차도 잊어버렸다. 더군다나 대를 물려받은 젊은 사장과 일하며 받는 수치심은 더할 나위 없다. 한 번도 나가지 않았던 동창 모임에도 참석해 보지만 조롱 당하면서도 말 한마디 못한다. 취중에 귀가하다 차가 보이지 않아 차 키를 찾아야한다며 식당으로 가서 무시당하자 큰소리치고 나와보니 차는 집에 버젓이 주차되어 있다. 시간 가는 줄도 몰라 일요일인지 요일도 잊고 산다. 어제 딸에게 주었던 용돈조차도 잊어버렸다. 그의 행동과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웃음거리가 된다. 마치 최근의 나를 보는 것도 같았다. 더 나이들면 저렇게 될까?


미팅 차, 준비했던 자료를 들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는데 진정 가장 중요한 서류는 빠뜨렸다. 매일로 다시 받아 프린팅 하려다 전에 왔던 수십 통의 메일이 문을 잠근 채 석인을 기다리고 있다. 메일 본지 얼마만인가! , 잊고 지냈던 이탈리아 옛 친구의 메일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래서 친구를 생각하며 비행기를 탔다.

피렌체의 그는 누구일까?

피렌체에서 헤매는데 도와주겠다는 한국 남성을 보며 깜짝 놀란다. 어떤 기억이 있지?


병으로 죽은 아내를 회상한다. 바빠서 함께 진료실에 동행하지 못하고 아픈 아내와 헤어지는 장면 '진료 끝나면 택시 타고 가'라는 말이 가슴을 친다. 바쁘다는 걸 핑계로 아내에게도 따뜻한 남편은 아니었다.

이탈리아 친구 엔조(해리 벤저민)와 함께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을 걸었던 일을 회상하며 그곳을 걷는다. 꽃의 성당에 웅장한 돔과 쿠폴라가 영화의 상징적 배경이다. 주변 광장에서 공연자를 만나 관람하며 피렌체 생활이 시작된다.


영화를 보며 나의 옛 이탈리아 여행을 생각했다. 밖만 둘러보고 사진 촬영만 했던 두오모 대성당, 주인공이 종탑에 오르기 위해 계단을 오르며 회상하는 장면은 마치 내가 지금 직접 오르는 것 같았다. 석인처럼 중년의 고뇌가 느껴졌다. 작년 여름 스위스 여행에서 이태리 밀라노 두오모 성당의 135개 첨탑이 보이는 위를 발로 디뎠었다. 밀라노 시내와 저 멀리 알프스까지 훤히 보였었다. 여름 한낮의 태양이 두오모 첨탑을 달궜는지 시원했던 유럽의 여름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렀다. 등허리에 땀이 솟구치는 무더위 속에서도 첨탑들의 장엄함에 감동이었다. 그런데 성당은 조용히 숨을 쉬는 듯했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지만 우리는 성당의 고요에 힘입어 숨을 천천히 고르며 위를 향해 한 층을 더 걸어 올라갔다. 뜨거운 공기 속에서도 또 한 층을 올라 맨 위 꼭대기에 올라선 순간 시선이 닿은 곳들을 보며 말문이 막혔었다.

석인이 지금 그러고 있다.

첨탑들의 장엄함에 감동하면서 엔조와 올랐던 계단을 지금은 혼자 오르고 있다. 조용히 숨을 쉬는 성당의 계단을 빨리빨리 대신 천천히 오르며 성당의 고요와 엔조의 사랑에 힘입으며 숨을 천천히 고르고 있다. 위를 향해 한층 한 층을 오르며 그와 함께했던 젊음을 되새기고 있다.

중세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베키오 다리는 아르노 강 위에 아직도 아름답게 서있다. 유정(예지원)이 읊은 시구가 아직 귀에 쟁쟁하다. 늦게나마 남편의 영면을 기도하며 읊는 시가 가슴에 남았다.

와인바에 앉은 두 사람, 마리아 칼라스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린다. 자코모 푸치니 작곡 오페라 'Gianni Schicchi' 중에 아리아 “O mio babbino caro”다. 아름답고 감성적인 멜로디가 음악 속에 와인 한 잔이 흔들린다. 행복이 뭘까요? 유정이 묻는다.


밤의 피렌체, 와인 잔에는 그동안 석인과 유정의 시간이 담겨 있다. 낯선 도시 피렌체에 혼자 살고 있던 유정은 와인바에서 흐르는 노래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에 사랑과 상처들이 천천히 지워간다. 유정이 비로소 자기 삶을 마주 본 것이다. 석인도 자기 입장에서만 본 세상을 젊은 날의 선택들과 버리지 못한 것들이 후회로 남으면서 놓아주지 못한 사람들을 놓아 준다.

아내와의 이별~

친구와의 이별~


그렇게 그와 그녀는 피렌체에서 버릴 건 버리고 자신들을 뉘우치며 도망쳤던 사랑 앞에 다시 선다. 그 순간 팬플룻의 음악과 함께 피렌체는 모든 것을 용서하며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유정의 마음을 석인이 풀어 놓았는지 석인의 마음을 유정이 풀어 놓았는지 둘이의 밝아진 모습이 보인다.


영화 좋았다. 남녀노소 모두가 꼭 봐야 할 영화인것 같다.

그 옛날, 이탈리아 여행을 회상하며 나의 젊음을 추억했고 작년에 스위스 여행에서 다녀온 이탈리아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을 생각하며 관람했다. 주인공 석인 역할에 김민종의 고뇌에 찬 모습은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했다. 잔잔하게 가슴을 울리는 영화,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서 느꼈던 상실감 같은 것을 살아 있는 남은 미래에 어떻게 안고 살아야 할지, 어떻게 녹여내며 풀어야 할지, 더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은 마음을 담아 깊게 고민하고 성찰하게 해주는 영화였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표정과 호흡으로 대화하는 출연자들, 그리고 주어진 피렌체의 여러 공간들이 감정을 전해주는 영화였다. 나를 생각하면 울컥해서 눈물이 핑 돌고 나와 함께하는 주변 사람들이 이처럼 쓸쓸하게 지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오래된 도시 피렌체에서 단테와 함께 같은 자리에 앉아서 인생의 의미를 고뇌하는 듯한 힐링 영화였다. 마지막 엔딩곡이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음률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이 곡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


이창열 감독의 영화는 처음이다. 이전 작품인 '그대 어이 가리'도 봐야겠다. 이도 세계 영화제에서 56개 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고 한다. 그래도 역시 '피렌체'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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