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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May 13. 2022

거리가 美德인 시기- 내 아들의 사춘기

16세를 키우는 초보엄마




중국어에 '距离产生美' 라는 표현이 있다.


풀어 얘기하자면 '거리가 아름다움을 만든다. '라는 뜻이다. 


이제 나와 내 아들 사이에 거리가 필요한 시기가 다가왔다.




지금 우리는 6일째 냉전 중이다. 


내일, 내일모레 시험이 끝날 때까지 이 상태로 보내겠다는 아들의 말을 따르자면 약 8일간의 냉전기를, 아니 침묵의 시간을 가질 듯싶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밥 먹어라, 학원 언제 가냐, 등등의 기본적인 대화는 있지만 아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다.




살갑던 아들이었다. 엄마와의 데이트를 즐기고, 애교를 곧잘 부리던 딸 같은 녀석이었다.


그런 아들이 올해 중 3이 되었고, 소강상태를 보이는 코로나로 인해 전면 등교가 가능해지면서 부쩍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기 시작했다. 부모로서는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또래와의 교류가 늘면서 아들은 나와의 거리를 두기 시작했나 보다.


딱히 전조증상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이토록 억울한 모양이다.


시험 3주 전 주말, 같은 반 여자 친구 두 명과 남자 친구 한 명 이렇게 넷이 스터디 카페를 간다 했을 때에도 나와 아들의 관계가 이렇게 틀어질지는 몰랐다.


지난주 화요일 영어 독해 문제집을 보다가 대충 문제만 푼 아들을 혼낸 게 화근이었다. 시험과 별개로 루틴처럼 푸는 문제집에 모르는 단어 좀 적으라는 말에 아들은 정말 연필로 대충 알아보지도 못할 글씨를 갈겨놨다. 그 태도에 나는 화가 나 혼내기 시작했고 아들은 처음으로 내 앞에서 입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굳게 닫힌 그 입은 지금까지 현재 진행 중이다. 


남편에게 17년 동안 당해왔던 침묵시위를 아들에게 똑같이 당하려니 울화통이 터졌지만, 사춘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은 이번 일에 나도 입을 닫았다. 


그러다 주말이 되어 오래간만에 세 식구가 밥을 먹는 자리에서 남편이 눈치 없이 둘이 얼른 화해하라고, 아들에게는 엄마에게 얼른 사과하라고 채근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시험이 끝날 때까지 하지 않겠다고 딱 잘라 대답했다. 내 면전에서. 엄마 앞에서 말이다.


맛있는 갈빗살을 상추에 싸 먹다가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억울했다. 입안에 욱여넣은 상추쌈에서 쌈장이 튀어나온다는 핑계로 그대로 화장실로 내뺐다. 물색없이 터져 나오는 눈물을 얼른 다시 집어넣고 자리로 돌아왔으나 도저히 밥이 넘어가지 않아 몇 숟갈 뜨다 말았다.


그리고 유튜브로 아들의 사춘기라는 검색어를 넣었다. 


때가 왔단다. 아들과 멀어져야 하는 때가. 아무 말을 하지 말란다. 엄마가 아무 말하지 않으면 아들이 알아서 한단다. 


난 이미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 아무 말을 안 하는 덕에 간섭이 줄었고 그래서 아들은 공부하는 틈틈이 스터티 카페 후 친해진 여자아이와 밤마다 톡으로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억울할 거란다. 물고 빨고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입을 닫고 거리를 두기 시작하려 한다면 엄마들이 억울해할 거란다. 너무 내 얘기라 그 영상을 한참을 봤다.


그리고 댓글을 읽었다. 나처럼 이 시기를 겪은 엄마의 한탄이 있었고, 아직 어린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의 두려움이 담겨있었다. 나중에 정을 뗄 거면 이렇게 예쁘게 굴지 말지, 나중에 어떻게 멀어지냐고 호소하는 엄마들의 목소리였다.


받아들여야 한다.


나에게도 아들과의 거리를 두어야 하는 시점이 왔음을 인정하고 받아 들어야 한다.


머리로는 이해하는 데 자꾸만 억울하고 방정맞게 눈물이 난다. 나에게 입을 닫은 아들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건지, 엄마 맘을 다 할퀴어놓고 여자 친구랑 시시덕거리는 게 서운한 건지... 속상하고 억울해서 어디에 하소연하고 싶다가도 외동아들에 대한 옹졸하고 치사한 사랑처럼 보여 더 구차해지고 초라해 보일까 봐 일부로 약속도 잡지 않았다.


처음에는 시험이 끝나고 아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도 엄마도 속상하니 엄마 기분이 풀릴 때까지 나도 입을 열지 않겠다고 맞대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럼 또 영영 멀어질 것 같고, 그래서는 안될 것 같고.


나는 이 정도 키우면 내가 뭘 좀 아는 엄마가 되어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16세의 아들을 둔 나는 16세의 아들을 처음 키우는 여전한 초보 엄마다.


모르겠다. 어릴 때는 사랑을 주는 게 해법이라 해서 마구마구 퍼줬더니 이제는 그만 신경 끄랜다.


중간에 과도기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날벼락처럼 다가온 아들의 사춘기에 초보 엄마의 마음은 무너진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아들은 지금 누구보다 정상적으로 잘 자라고 있다. 너무나 제 코스대로, 올바르게, 모나지 않게, 제 갈 길을 잘 가고 있다.


근데 그걸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썩 유쾌하지만은 아닌 게 사실이다.


마음을 추슬러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이 와중에 시험 끝난 뒤 체험학습 때 입을 여름 티셔츠를 고르고 있는 내가 한심하기까지 하다.


하아. 


난 언제쯤 육아가 좀 수월해질까.


아니 이제는 '육아'가 아니라, 기다림의 시작인 것 같다.


기다리고 지켜보고 또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의 시작인 것 같다.




이래선 안 된다. 내일 당장 미뤄뒀던 탁구장 강습을 끊어야겠다. 당장 가서 등록해야겠다.


내 눈을, 내 신경을 얼른 다른 곳으로 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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