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속에서 나누던 후배와의 술잔…
겨울눈에 덮인 선술집을 그리다 문득,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십 년전인지, 이십 년전인지... 그러나 여전히 또렷한 밤의 장면이다.
광화문 골목 어딘가~!
발목까지 쌓인 눈이 세상을 온통 집어삼킨 밤이었다.
당시 자주 술의 온기에 기대어 하루를 접곤 했었다.
그날도 퇴근 후,
괜히 집에 들어가기 싫어 함박눈을 핑계 삼아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작은 선술집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자연스러운 ‘혼술’이 그땐 어딘가 멋쩍고 서툴던 시절이었다.
술기운이 얼굴에 오르자 문득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리워졌다.
전화를 건 사람은 이혼 후 힘겨운 시간을 지나고 있던 후배였다.
이걸 인연이라 해야 할까?
서로의 고독이 같은 결로 흔들리던 밤이었다.
후배 역시 친구들과 헤어진 뒤 혼자 귀가하던 길이었다고 했다.
폭설 속에서 택시를 붙잡고
20여 분 만에 도착했을 거리를 두 시간이나 헤매다 도착한 그 얼굴엔 피곤함보다 반가움이 묻어 있었다.
눈밭 한가운데서 다시 만난 우리는 뜨거운 정종과 김이 오른 어묵을 사이에 두고
각자의 외로움과 하루의 무게를 말없이 나누었다.
큰 위로의 말도, 거창한 조언도 없었지만 그날 밤만큼은 서로의 온기가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난로가 되어 주었다.
그림을 그리는 내내 그 당시의 느낌, 그날의 웃음,
눈발 사이로 스며들던 따뜻함이 되살아나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제 그 후배는
회사를 나와 자기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고, 또 첫사랑과 다시 인연이 이어져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그림 속의 장소와 시간, 이미 지나가 버린 장면을 다시 불러와 오늘의 추억으로 기록하는 일을
나는 여전히 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혼자 있어도, 여럿이 함께 있어도 외로움은 빠지지 않고 자리한다.
다만 그 외로움이 어떤 날은 술잔이 되고
어떤 날은 그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