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쫓아다니지만 말고 아름다움을 통해 예상치 못한 감동을 느낄 수 있게 감각을 갈고닦아야 한다. 세상을 끝없는 말초적인 자극과 흥분으로 채우지 말자. 우리가 보내는 시간을 끝없는 분주함으로 채우지 말자. 혼자 있는 시간 자체를 소중히 하고, 고독이 찾아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모든 삶은 흐른다>,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드디어 체크인을 했다. 탑승구로 향했다. 저번 해외여행 때 줄이 너무 길었어서 이번엔 일찍 공항에 온 이유도 있는데 이번엔 왠지 한가했다. 엄마나 남자친구처럼 챙겨야 하는 사람(?)과 왔을 때보다 상황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서 화도 안 나고 급하지도 않았다. 어떤 딸이 엄마에게 하는 급해져서 고의는 아니겠지만 짜증이 섞인 뉘앙스의말이 들려서 예전에 엄마랑 갔던 여행이 떠올랐다. 엄마랑 가면 편하고 남친이랑 가면 든든하겠지만 혼자면 차분해지는 점이 좋은 것 같다.
게이트에 들어와서 주변사람들과 연락하고, 면세점을 대충 둘러보았다. 평소에 화장도 안하고 예쁜 가방도 잘 메지 않아서 면세점에선 딱히 살게 없다. 화장실에도 가고 스타벅스에서 물을 950원에 사가지고 와서, 드디어 게이트에 마음 편하게 앉을 수 있었다. 드디어 비행기 타는 구나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더 어렸을 땐 더 많은 감정과 감각을 느끼고 이 게이트들이 더 편했는데 지금은 좀 더 절제되었다.
게이트에 앉아서 조금 전에 샀던 크리스피크림 도넛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고 쫀득한 게 서양떡 같고 , 역시 디저트는 사랑이다.
비행기 밖에 구경하는 걸 좋아해서 항상 window seat을 고수한다. 장거리여도 창가좌석이 좋다. 그리고 창문에 기대서 자는 것도 좀 더 편하다. 날개에 전망이 방해받지 않는 좌석으로 잘 예매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연락 끝내고 이륙할 준비를 했다. 비행기 배경음은 중국느낌의 instrumental music 이었다. 왠지 기분 좋다. 다른 항공사였으면 classical 한걸 틀었을텐데 말이다. 그리고 외항사 비행치고 한국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비행기에서 오랜만에 본 구름과 하늘이 너무 아름다웠다. 화장실이 너무너무 가고 싶어도 3시간을 참았는데 그걸 감수할만큼 창가좌석에서 본 광경이 너무 예뻤다. 평소 집-회사-집-회사에서는 볼 수 없는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구름과 햇빛의 조화를 보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기내식은 내가 좋아하는 치킨라이스, 버터와 빵, 요구르트라 너무 잘 먹었다. 혹시나 와인이 있냐고 여쭤봤더니 카트에는 없는지 따로 가져다주셨다. 주문한 레드 와인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화이트와인이라 홀짝거리기 더 맛있었다. 구름을 보면서 와인 먹는 시간 무엇....진짜 인생 참 행복해
그리고는 라운지에 가서 다음 비행편를 기다렸다. 인천에서 여러 헤프닝 때문에(사실은 나의 안일함과 정보부족 때문에) 라운지를 못 갔지만 뻔한 한국 라운지가 아닌 외국 라운지를 이용해 본 경험이 훨씬 좋았다. 라운지 카드가 생각보다 훨씬 가치 있고 유용하다는 것을 느꼈다. 라운지가 좋았던 이유는 음료를 마음껏 마실 수 있고 안락한 의자와 충전기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라운지에서 먹은 건 물밖에 없긴 하다. 긴 비행에 더부룩하고 싶지 않아서다. 달달한 음료도 속만 안 좋을 거 같고 말이다.
라운지 이용시간이 다 되어갔다. 더 있어도 아무도 신경 안 쓸 것 같았지만 시간 맞춰 나와서 게이트에 앉아 나머지 시간을 보냈다. 약간 몽롱하고, 그리고 늦은 밤에 보는 공항은 낮에 보는 공항과 달리 한산함과 여행자들의 고됨이 느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