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왜 시한부 인물의 여름인가
무더운 여름이다. 개들은 혀를 내밀고, 얼굴은 땀으로 찡그려지고, 손안에 든 커피의 얼음 조각은 빠르게 녹아간다. 여러모로 녹록지 않은 계절이다. 그러나 기승을 부리는 더위 안에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신만의 활력을 찾아낸다. 짐을 꾸려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거나 좋아하는 가수를 보기 위해 페스티벌에 참여한다. 짙은 녹음의 생명력은 여름의 매일에 스며들어 우리에게 살아있음을 느끼도록 격려한다. 비록 여름보다 겨울을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생명력의 이미지만큼은 겨울이 아닌 여름의 소유라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 생명력의 계절 안에서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는 정원이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여름의 햇살을 받으며 눈을 뜨는 정원의 아침으로 시작한다. 2학기 개학식에 참여한 학생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정원은 바로 다음 장면에서 병원 대기실에 앉아 아픈 아이와 장난을 친다. 이후 개학식이 끝난 운동장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정원의 모습이 점프컷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시작의 설렘이 담긴 장소와 삶의 끝을 생각해야 하는 장소가 교차하는 편집으로 관객은 정원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임을 짐작한다.
감독은 왜 시한부 인물을 죽음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계절의 한복판에다 둔 것일까? 정원의 마지막 여름을 함께하며, 우리는 죽음을 앞둔 인간의 이미지를 새로이 그려보기로 한다.
1. 우리의 인생에 변화가 찾아올 때
정원은 그의 성향상 변화와 거리가 먼 인물이다. 아버지의 사진관을 물려받은 직업, 어릴 때와 달라지지 않은 거주지, 심지어는 학창 시절 때부터 좋아해 왔던 여자까지. 그는 처음 마음에 둔 것을 쉽게 버리지도, 바꾸지도 않으며 안정된 생활을 해왔다. 그런 정원에게 피할 수 없는 변화가 찾아온다. 애석하지만 그것의 정체는 바로 죽음이다.
사람 좋은 웃음과 몸에 밴 배려로 죽음을 외면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보려 하지만 죽음은 그림자처럼 정원의 뒤를 따라온다. 탄생과 죽음은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운명적 변화다. 정원과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은 죽음이라는 운명적 변화 앞에서 나약해진다. 친구 가족의 장례식에서, 첫사랑과의 마지막 대화에서, 병원 진료실과 영정사진을 찍으러 온 손님의 눈동자에서, 정원은 점점 가까워지는 죽음을 마주한다. 그러던 중, 삭막해지기만 할 것 같던 정원의 일상으로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변화가 찾아온다.
정원이 ‘한결같음’의 대명사 격인 인물이라면 다림은 어디로 튈지 모를 말과 행동이 매력인 인물이다. 이십 대, 하고 싶은 것이 많으나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시기의 다림은 정원이 사는 동네의 주차 요원이다. 그녀는 잘못된 자리에 정차한 차를 움직이게 만드는 일을 맡고 있다. 정원의 삶으로 들어온 다림은 정원의 빨간 스쿠터를 ‘시한부의 여름’이 아닌 ‘첫 연애를 시작하는 여름’으로 돌려놓는다.
한 인물의 동적인 특성을 두고 누군가는 그를 미성숙하거나 변덕스러운 사람으로 해석할지도 모른다. 정원은 그러지 않는다. 정원은 말썽꾸러기 아이들의 천진함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고, 불쑥 찾아와 소파에서 쉬고 가겠다는 다림의 돌발 행동을 웃으며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다. 영화에서 다림의 톡톡 튀는 언행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데엔 옆에서 편안한 안정감을 만들어내는 정원의 너털웃음 덕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정원에게 다림은 사랑이라는 변수가 된다. 죽음이 선택할 수 없는 운명적 변화라면 두 사람의 인연은 정원과 다림이 함께 만들어낸 변화다.
시한부 주인공의 사랑은 멜로 영화에서 흔히 쓰이는 소재다. 죽음만큼 연인 관계를 극적으로 만들 수 있는 소재가 또 어디 있겠는가. <8월의 크리스마스>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 클리셰에 있다. 놀이공원 데이트 후 정원이 다니던 초등학교의 운동장을 달리는 장면에서 정원은 점점 안색이 어두워지며 멈춰선다. 환히 웃으며 앞으로 달려 나가는 다림과 신체의 한계로 그녀 뒤에서 멈춰서야만 하는 정원의 모습은 그들이 처한 상황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관객의 예상과 달리 정원은 다림의 앞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지도, 눈물을 흘리며 병세를 고백하지도 않는다.
정원과 다림의 사랑에서 죽음은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그들은 시한부 남자와 시한부 연인을 둔 여자가 아닌 정원과 다림으로써 사랑한다. 생이 다해가는 인간에게 과잉된 슬픔 대신 새로운 사랑의 설렘을 간직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8월의 크리스마스>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다.
2. 느린 속도에서 더 짙어지는 마음이 있다
1990년대를 지나며 한국에 개인 휴대전화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이후, 우리는 기다림의 시간 없이도 나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현재 전 국민이 사용하는 메신저앱이 된 카카오톡의 경우 하루 평균 수발신량이 100억 건 이상으로, 대다수의 국민이 매일 200건 이상의 메시지를 주고받는다고 한다. 생일 축하 메시지도, 결혼을 알리는 청첩장도, 장례 소식이나 마음을 담은 고백까지 장소의 이동 없이 휴대폰 자판을 두드리는 것만으로 전달이 가능하다.
반면 개인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이전의 시대를 그린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는 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반드시 ‘기다림’이라는 단계가 필요하다. 같은 동네에 살더라도 직접 찾아가 보지 않으면 부재의 여부를 알 수 없고, 자리를 비운 이의 사정이 무엇인지 쉽게 짐작할 수도 없다. 그래서 함께하는 이와의 순간순간에, 마음을 전할 수 있는 편지 한 줄에도 무게가 실린다. 당신과 내가 주고받은 모든 메시지에는 그것을 전달하기 위한 시간과 수고로움이 담겨있다.
정원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계속해서 편지를 쓴 다림의 모습은 영화의 안타까운 정서가 가장 고조되는 설정이다. 정원의 죽음이 이미 예정된 상태에서 관객은 다림의 편지가 정원이 살아있는 동안 무사히 전해지느냐 전해지지 않느냐의 여부를 궁금해하며 결말을 지켜보게 된다.
이때 관객이 다림에게 이입하여 전달되길 바라는 그녀의 활자는 단순한 문장 그대로의 의미를 뛰어넘은 마음이다. 편지지를 사기 위해 가게에 들르는 발걸음과 단정한 글씨를 쓰기 위해 들인 노력, 가장 내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을 고민했을 다림의 모습, 그리고 굳게 닫힌 사진관 안으로 편지를 밀어 넣는 다림의 복잡한 심경까지, 그녀가 문틈으로 밀어 넣는 편지 한 장에 모두 담겨 있다.
빠른 속도와 실용성이 높은 가치로 평가받는 현대에 <8월의 크리스마스>가 표현하는 속도는 낯설지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자동차와 배가 발명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달리기나 수영 경기를 보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라. 빠른 속도감에서는 미처 느낄 수 없는, 느린 속도에서 더욱 짙어지는 마음이 있다.
3. 기억과 기록
우리는 왜 영정사진을 찍을까. 그것도 가장 예쁜 옷을 입고, 환히 웃는 얼굴을 한 채로. 가족들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으러 왔던 할머니는 마지막에 찍었던 자신의 독사진이 영정사진용이었음을 깨닫고 비 내리는 날 다시 초원사진관을 찾는다. 화사한 한복을 입고 미소 짓는 할머니의 얼굴에서 정원은 자신 역시 마지막을 준비해야 할 때가 다가왔음을 인식한다. 흔히 장례식은 남겨진 가족들을 위한 애도 의식이라 말한다. 죽음 이후 이루어지는 장례식과 달리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에 찍어두는 영정사진엔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장 밝은 모습으로 기억되길 기원하는 인간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것은 오롯이 나를 위한 기록이다.
아마 어릴 적 정원에게 사진 찍는 방법을 알려주었을 아버지는 이제 아들에게 녹화된 테이프 재생법을 배운다. 사진과 녹화 테이프 모두 추억의 기록물이라는 점에 집중한다면 두 사람은 오랜 시간을 두고 서로에게 기억의 기록법을 알려준 셈이다.
아버지는 정원의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리모컨 작동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다. 거듭된 설명이 무용지물 해지자 정원은 결국 아버지에게 화를 내며 나가버린다. 눈물과 직접적인 대사 없이도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야 할 아버지의 삶을 걱정하는 정원의 초조함과 착잡함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아버지는 화를 내는 정원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는 대신 정원이 두고 간 리모컨을 만지작대며 배웠던 내용을 다시 시도해 본다. 정원이 떠난 후 그는 아들의 손길이 남은 리모콘을 이용해 어떤 기억들을 되돌려보게 될까.
계절이 흐르며 정원의 몸은 더욱 쇠약해져간다. 정원은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은 채 스스로 영정사진을 찍는다. 그는 비 내리는 날 자신이 찍어주었던 할머니의 얼굴처럼 미소를 띠며 카메라를 바라본다. 관객과 정원의 눈이 오래도록 마주친다. 사진관 의자에 앉은 정원의 프레임이 그대로 영정사진으로 변한다. 관객이 기억할 정원의 마지막 모습은 그가 의도한 기록대로 편안한 웃음을 짓는 얼굴이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정원이 기록한 또 하나의 사진이 나온다. 정원이 떠난 후 정원의 아버지가 다시 운영하기 시작한 초원사진관에는 내려간 첫사랑의 사진 대신 다림의 웃는 얼굴이 걸려 있다. 다림과의 사랑을 추억으로 남기지 않고 간직하겠다던 정원의 말처럼, 사진관에 걸린 다림의 사진은 정원이 떠난 이후에도 내려가지 않았다. 기록은 나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겠다는 다짐이다. 순간의 기억이 정성을 거쳐 기록이 될 때, 그것은 영원한 현재성을 갖게 된다.
어느 겨울날, 정원이 떠난 이후 자신의 사진을 바라보는 다림의 얼굴엔 미소가 띄워져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유일하게 묘사되지 않은 계절은 봄이다. 다림과 우리는 더 이상 정원이 맞이하는 봄을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살아있는 이의 생은 지속된다. 그의 기록이 남겨준 소중한 기억들을 간직한 채로.
정원이 남긴 기억을 안고 새로운 봄을 향해 걸어갈 다림은 어떤 기록들을 남기며 살아가게 될까. 관객이 그녀의 내일을 기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주변인의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의 삶에도 따뜻한 응원을 보내고 있다. 당신의 그 어떤 계절에도 사랑의 기억이 함께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