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살아온 생(生)을 관조(觀照)하며

마음의 산책: 수필

by 하태수 시 수필


지금껏 살아온 생(生)을 관조(觀照)하며



고요한 늦은 오후처럼

지금껏 살아온 생(生)을 가만히 관조해

본다.이제는 삶도, 고요한 늦은 오후

처럼 잦아 든 빛 속에 머물고 있다.

내가 보고 듣고,직접 겪은 바에 따르면

삶의 가치관은 서서히,그러나 분명하게

바뀌어왔다


이제 부모와 자식, 부부 간에도 각자의

삶 을 살아가는 ‘별거’는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새 사회의

보편적 풍경 이 되었고, 나 역시 그

안에 있다.


부모와 자식, 부부의 별거는 내게도

이제 오래된 일이다. 그 옛날, 자식들

만큼은 나처럼 살지 않게 하겠다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 먹고 싶은 것도 참고,

아파도 병원 에 맘대로 가지 못하고,

비타민 한 알조차 사 먹지 않으며

살았다.


공직과 사기업을 오가며 힘겹게 버텼고,

남에게 돈 한 번 빌리지 않으려 안간힘

을 썼다. 오직 자식들만큼은 편안하게

살게 해주고 싶었다. 대학까지 보내고,

출가 시키고, 손주들에게도 아낌없이

내어 주었다. 그랬더니… 남은 것은

허무함 이었다.


끝없이 받기만 바라고, 고마움을 모르는

자식들을 바라보는 노부부의 마음은

어느 날 문득, 싸늘하게 식는다. 내가

씨앗 뿌려 만든 덫에, 결국 내가 스스로

걸려든 셈이다.


물론, 부모로서 대가를 바란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식들이 조금만, 아주 조금만

이라 도 감사의 마음을 품었다면, 그

지난 한 세월이 덜 서럽지 않았을까.


이놈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 간다. 이제 칠십을 넘긴 지금,

나는 뼈아픈 반성을 한다. 요즘은 단독

세대. 편안함과 외로움이 교차하는

하루하루다


자식이든 아내든,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아 가는 시간. 그 속에서 외로움은

우울로 번지고, 우울은 다시 활동의

욕망으로 치환 되곤한다. 이제 나는

자본주의의 질서 속에 있다


‘돈만 있으면 해결된다’는 생각이

어느덧 몸에 배었다. 자식에게 인생을

기대하지 않는다. 쥐꼬리만 한 연금으로

기본적인 삶 을 유지하며, 부족하면

그저 참는다.애타게 매달리지도, 빌리러

다니지도 않는다.


사업? 귀찮다.

동창, 친구, 이웃, 이성과의 만남?

처음부터 생각도 없었다

나이 들어선 인간관계가 오히려 잃는

것이 많았다. 지금 나는, 누구에게도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주지 않으며

조용히 살고 싶다.


가식적인 정(情)도 흘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왜 아침이면 여전히 눈을 뜨는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산다.


다만 지금껏 걸어온 생의 길을 조용히

되돌아보며 관조하고, 이제는 나이에

맞게 마음을 조율하며, 내 분수에 맞게

살아가려 한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남에게 이기적이거나 추한 모습 티끌

만큼 이라도 남기지 않고, 그저 고요

하게…그렇게 살다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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