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 수필
99개 꼬리를 가진 여우를 찾아서
<고개 너머에 대한 호기심>
우리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여우
고개’라는 이름을 지닌 고갯길이 있다.
오래전 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그곳에 여우가 살았다고 한다. 혹은
처녀 귀신이 떠돈다 는 전설도 있었다.
어릴 적부터 이 고개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 며 자란 나는, 나이 일흔이 넘은
지금까지 도 그 ‘이름’이 주는 상상력과
묘한 두려움 에 마음 한 구석이 간질
거렸다.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었다.
그냥 지나치듯 말고, 밤에 직접 그 고개
를 넘어보면서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마주 해보고 싶었다.
걸어가기엔 으슥하고 찝찝한 느낌이
있어, 나는 지프차에 올라탔다. 아무에
게도 알리 지 않은 채, 홀로 떠나는 작고
기묘한 탐험 이었다
.
<여우고개, 상상과 현실의 경계>
그날은 초저녁. 산에는 안개가 피어오
르고,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차 안
시계는 밤 9시 30분을 가리켰다.고갯길
에 다다르자 갑자기 길이 어두워지고,
산바람이 귓가를 스치며 스산한 기운이
엄습했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나뭇가지에, 마치
하얀 속치마가 펄럭이는 듯한 형체가
어른거렸다.으스스한 기분에 무언가 등
에 닿는 듯한 감촉이 들자, 나는 반사적
으로 오른손으로 뺨과 목깃을 더듬었다.
벌레 한 마리가 기어오르다 튕겨져 나
갔고,그 순간 누군가 바짓가랑이를 확
잡아챈 듯한 느낌에 나는 몸을 움찔하며
멈춰 섰다.
공포감은 점점 커졌고, 이물감은 얼굴로
이어졌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얼굴
을 감싼 그것은 물컹하고 촉감이 생생
했다.설마, 처녀 귀신의 젖가슴? 아니면
99개의 꼬리를 가진 여우의 장난일까?’
온갖 상상이 뒤엉킨 그 순간, 나는 그
촉감에 손을 대어 조심스레 조물 조물
눌러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전설도, 귀신도 아니었다.
수박밭이나 고추밭에 덮어 두는 검은
비닐이 산바람에 날려 나뭇가지에 걸린
채, 바람에 휘날려 내 얼굴에 찰싹 달라
붙은 것이었다.
허탈한 웃음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차
로 돌아오는 길, 나를 향해 다가오는
차량의 불빛 속에서 “할아버지! 괜찮으
세요? ”라 는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마치 귀신에서 인간 세계로 다시
되돌 아온 듯, 현실로 복귀할 수 있었다.
<여우는 어디에 있었을까>
나는 결국 그날 밤, 99개의 꼬리를 가진
여우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고갯마루
를 넘으며 마주친 그 모든 감각 공포,
기대,허탈, 안도는 나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여우고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그 길을 넘을 때
면 여럿이 함께 간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 고개에는 지금도 귀신이 산다고. 혹
은 여우가 아직 100번째 꼬리를 기다리
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여우는 그 고갯길에 있지 않았다. 어쩌
면 여우는 내 안에 있었고,그 밤은 나의
오래된 상상과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마주한 용기를 확인하는 밤이 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이야기를 조용히
꺼내어 누군가 에게 들려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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