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 수필
늦게 핀 이름 하나
거의 60년이 지났다.일흔 다섯의 지금에서야 그날의 울음을 조용히 꺼내 바라본다
왜 그렇게도 서럽게 울었을까.어릴 적, 우리 집은 가난했다.그 가난은 늘 내 옆에
바짝 붙어 다녔다.
아버지의 거칠어진 손등과 어머니의 밥 짓는 뒷모습은 말없이 그 모든 것을 견디는
표정 같았다.나는 그 곁에서 허기보다 체면을 먼저 생각하며 자랐다.웃는 얼굴 뒤
에는 감추어야 했던 가난과 삼켜야 했던 울음이 숨어 있었다.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줄 알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프고 억울했다.
때로는 다른 집 부모들처럼 자식 학비를 넉넉히 챙겨주는 부모가 차라리 부러웠다.
누구나 하나쯤은 가진다는 그 졸업장이 내게는 오래된 결핍이었고 지울 수 없는
생 의 훙터였다.
중학교 시절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나의 진로는 줄곧 사회의 가장자리만 맴돌았다.
내가 원하는 직무를 맡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적성에 맞지 않는 일도 묵묵히
붙잡고 살아야 했다.단지,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매일 아침 출근길에 오르며 늘 같은 생각
을 되뇌었다.‘대학교만 나왔어도,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그 물음은 그림자처럼
내 삶 전체를 따라다녔다.
30년 가까운 직장 생활 동안,진급의 계절이 다가올 때면 나는 늘 탈락자 명단 속에
숨어 머물렀다.계장,과장, 차장, 부장대리,부장, 이사보, 이사...등등 후배들이 내 앞
을 지나 승진의 계단을 밟아갈 때,나는 늘 그들을 축하해 주는 사람이었다.
회식 자리에서는 웃었고,돌아오는 골목길에서는 묵묵히 말 없이 울었다.
몸보다 더 무거운 건 자신에 대한 자책과 열등감이었다.‘나는 왜 이렇게밖에 살 수
없었을까.그 질문이 오랫동안 가슴 깊은 곳을 조용히 때리고 있었다.
세월은 흘러 나는 이제 평범한 75세의 노인이 되었다.주름진 손, 느려진 걸음걸이,
‘할아버지’라 불리는 나이.하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어린 시절의 나,그 소년은
살아 꿈틀 되고 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내 안에 오랫동안 눌러두었던 그 소년을 다시 일어켜 깨우기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믿음으로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잊지 못할 열다섯의 어느 날,야간중학교 교실에서"월사금"을 내지 못해 회초리에
손바닥을 내밀던 그 순간마다 나는 눈물로 칠판을 바라보며 조용히 꿈을 키웠다.
그 꿈이 이제야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나는 지금,내 인생을 다시 써 내려가는
중이다.비록 느리고, 비록 늦었지만~~노을이 지는 저녁, 그 붉은 울음 속에서
나는 늦게 핀 이름 하나를 조용히, 그리고 따뜻하게 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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