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오늘 소개할 책은 2024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입니다. 책의 뒤표지에서는 이 소설을 “말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침묵과 눈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빛이 만나는 찰나의 이야기”라고 설명합니다. 말을 잃어가는 여자는 말을 되찾기 위한 희망의 빛을 발견하기 위해 희랍어를 배우게 되고요, 눈을 잃어가는 남자는 독일에 가족을 두고 한국으로 돌아와 희랍어를 가르치게 됩니다. 그리고 둘은 서로의 앞에 침묵을 놓고 더듬더듬 대화해나갑니다.
2. 오늘은 한강 작가의 『희랍어 시간』을 준비해주셨군요. 저도 무척 재미있게 읽은 소설인데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언어이자 사라져가는 언어인 희랍어와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남자의 이야기가 맞물리며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놀라웠는데요. 에세이스트님은 어떻게 『희랍어 시간』을 읽게 되셨을까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일전에 한강의 『흰』이라는 소설을 소개할 때, 앵커님께서 『희랍어 시간』을 추천해주셔서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관련해서 책 정보를 찾아보던 중에 말씀하셨던 지점인 ‘사라져가는 언어인 희랍어’, ‘말을 잃어가는 여자’, ‘눈을 잃어가는 남자’의 이야기가 어떻게 맞물려 펼쳐질지 궁금해서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에, 작품을 칭찬하는 것이 시류에 휩쓸리는 것 같아, 오히려 주저되기도 하는데요. 희랍어와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남자의 조합은 정말이지 기발하고도 매력적인 소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3. 지나가듯 말씀드린 것이었는데, 기억하고 작품을 찾아보셨군요. 작품에서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남자라는 소재는 저 또한 상당히 매력적이었는데요. 두 남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들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에 집중하는 것 또한 상당한 매력 요소였던 것 같습니다. 에세이스트님은 어떠셨나요?
네. 두 남녀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작품은 전개되는데요. 여자는 어떠한 원인도, 전조도 없이 말을 잃습니다. 이것은 처음이 아닌데요. 열일곱 살 겨울 말을 잃고 살던 그녀가 입술을 달싹이게 한 건 낯선 외국어인 프랑스어의 한 단어였죠. 시간이 흘러 이혼을 하고, 아홉 살 난 아이의 양육권을 빼앗긴 여자는 다시 말을 잃습니다. 그리고 낯선 언어로 다시 말하게 되었던 기억을 되살려 희랍어 수업을 듣게 되죠. 10대 시절 가족과 독일로 건너갔던 남자는 십수 년 만에 혼자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아버지에게 병을 물려받은 남자는 앞을 볼 수 없다던 마흔이 가까워짐에 따라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한국행을 택한 것이죠. 그렇게 그는 점점 눈을 잃어가며 희랍어를 가르칩니다. 이러한 둘은 서로에게 다가가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저렇게 희랍어를 배우고 가르치며 각자의 이야기로 끝이 날 것 같았지요. 그런데 한 사건으로 둘이 만나게 되는 뒷부분에서는 완결성을 지닌 이야기의 매력과 힘을 느낄 수 있었고요. 그제야 비로소 작품이 온전히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4. 이 작품을 이야기하자면 『희랍어 시간』이라는 제목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다른 언어와 달리 ‘희랍어’는 가장 오래된 언어이자 사라져가는 언어이기 때문에 더욱 문학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 ‘희랍어’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저도 ‘왜 희랍어일까’를 생각하며 작품을 읽었는데요. 이것이 오래된 언어이자 사라져가는 언어이기 때문에 두 남녀의 상황과 맞물렸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평론가들의 말에 의하면 『희랍어 시간』의 희랍어는 “주인공의 정체성과 기억, 철학적 사유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소통의 복잡성과 인간 존재의 깊은 질문을 탐구하는 데 기여한다”고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런 평은 동의하긴 하지만, 조금 어렵게 느껴졌고요.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는 희랍어에 존재하는 ‘중간태’라는 형태소의 역할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자는 희랍어 수업 시간에 능동태와 수동태 외에도 제3의 태인 ‘중간태’가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중간태’라는 말을 처음 듣고는 이해하기 어려웠는데요. 저는 중간태를 '변화하는 상태에 놓여 있는 문장'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지금은 희랍어 시간이 아니니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요. 희랍어의 중간태를 이용해 작품 속 두 남녀의 상황을 표현해보면 이렇습니다. 여자는 말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나 말을 잃어가는 상태, 즉 중간태인 거고요. 남자는 시력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나 시력을 잃어가는 상태, 즉 중간태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희랍어의 ‘중간태’를 작품 속 남녀에 녹여낸 작가의 역량과 기발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5. 희랍어와 여자와 남자, 라는 세 가지 소재만으로도 이야기할 거리가 이렇게나 풍성한 작품이라니 『희랍어 시간』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오늘 이야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희랍어 시간』을 다시 꺼내 읽는다면, 처음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될 정도입니다.
오늘 『희랍어 시간』에 대해 다소 어려운 말씀만 드린 게 아닌가 우려가 되는데요. 독자로서 문학작품을 읽고 작가의 의도를 완벽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음조차 제대로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 인간인데, 처음 읽은 문학작품을 쓴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기를 바라는 건 무리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게 작품을 읽는 건 좋은 독서 방법도 아니라고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린 건, 청취자분들께서 지나가듯 듣고 잊으시길 바라서인데요. 언젠가 이 작품을 읽다가 오늘 나눈 이야기가 문득 떠오르면 그때의 감흥은 또 다를 테니까요. 내가 읽은 책이 나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는 당시 사회나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겁니다. 오늘 나눈 이야기를 모두 잊고 『희랍어 시간』을 읽더라도 그 감흥은 상당할 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잘 쓴 작품이라고 자부하고요. 이렇듯 재미있고 매력적인 작품을 소개해주신 앵커님께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