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오늘 소개할 책은 한국 사회 최초로 중증 뇌병변 장애인의 언어로 적은 생애사인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입니다. ‘나의 이동권 이야기’라는 부제목이 달려 있고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강아지를 안은 채 휠체어를 타고 있는 한 남성의 사진이 담긴 표지가 인상적입니다. 책에는 원인은 알 수 없지만 태어나서 뇌병변 장애를 얻게 된 작가의 어릴 적 이야기부터, 시설에서 생활한 이야기, 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한 이야기, 제주를 여행한 이야기 등 뇌병변 장애인이 아닌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적혀 있습니다. 국회위원 장혜영은 이 책의 추천사에 “이 이야기는 당신이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 놓을 것이다”라고 적었는데요. 저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제 인생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또한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2. ‘뇌병변 장애인’과 ‘생애사’라는 말의 조합이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뇌병변’은 뇌의 기질적 손상으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발생하여 보행 또는 일상생활 동작 등에 제약을 받는 중추 신경 장애라고 알고 있습니다. ‘생애사’는 주로 보통 사람의 삶을 기록한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고요. 신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이 자신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쓰기란 무척 어려운 일일 것 같은데요.
네, ‘뇌병변’과 ‘생애사’에 대해 정확하게 말씀해주셨는데요. 이 책의 작가 또한 휠체어를 타고 집 밖으로 나가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위해 활동하고 있기는 하지만, 손이나 몸을 쓰는 게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작가가 하는 말 또한 시간을 두고 앉아 하나하나 새기며 들어야 이해할 수 있고요. 그러나 그의 삶은 하나의 이야기로서 기록되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2020년대 중반을 살아내고 있는 뇌병변 장애인으로서, 한국 사회의 인권 신장을 위해 애쓰고 있는 시민으로서, 그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을 텐데요. 이 가치를 알아본 사람들이 작가를 돕기 위해 나서주어 책이 완성되었습니다. 현실적으로 글자를 쓰기 힘든 작가를 대신해 주변의 세 사람이 작가의 말을 적고, 부족한 부분은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가 물어서 정리하고, 역사적으로 확인이 필요한 부분은 자료를 찾아 보완하면서 이 책을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3. 알아듣기 쉽지 않은 작가의 말을 적고, 주변 사람에게 확인하고, 역사 자료를 살펴 보완하는 일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한 사람의 인생이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책 한 권에 담겼다고 생각하니,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 통째로 내게 오는 것이다”라는 글귀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장애를 지닌 한 사람의 삶이 담긴 책이라고 하면, 조금은 어렵거나 진지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에세이스트님은 어떠셨나요?
제가 어릴 때는 ‘뇌병변’보다는 ‘뇌성마비’라는 말을 더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에 한 살 많은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는 학교가 끝나면 매일 집에서 놀아야 했습니다. 언니랑 놀기 위해서는 저도 언니의 집으로 가야 했고요. 그 이유는 언니의 오빠 때문이었는데요. 아래층에서 일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언니는 학교가 끝나면 방에 홀로 있는 오빠를 돌봐야 했지요. 그 오빠에게 뇌병변 장애가 있었거든요.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는 뇌병변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동네에 한둘씩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헌데 요즘은 이웃끼리 그 정도로 가깝게 지내지 않아서인지 그런 모습을 보기가 힘들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뇌병변 장애인의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데요. 그 모습이 보기 힘들다거나 괴롭지는 않고요. 오히려 작가의 위트와 치열함이 글에 그대로 묻어나 너무나 재미있고, 때로는 손에 땀을 쥐게 되어 장애인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이규식의 삶을 흥미진진하게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4.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삶에 위트와 치열함을 버무려 담은 책이라고 생각하니 무척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앞서 “이 이야기는 당신이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 놓을 것이다”라는 추천사를 말씀해주셨는데요. 책의 어떤 점 때문에 이러한 추천사가 나오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말씀드렸던 추천사는 순전히 제 관점에서 해석하고 받아들였는데요. 작가는 태어나서 며칠 만에 뇌병변 장애를 갖게 됩니다. 2020년대 중반을 기준으로 작가는 50대 중반인데요. 작가가 어린 시절에만 해도 장애는 치료할 수 있는 병이라 여겨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작가의 부모님은 넉넉지 않은 살림에 집을 헐값에 팔아 작가의 치료비를 마련하기도 했고요. 부모는 돈을 벌러 나가면 작가는 종일 라디오를 듣거나 텔레비전을 보며, 생리적인 현상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방에 있어야 했다고 합니다. 요즘 같으면 나라에서 운영하는 시설에 가는 방법도 있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시설이 충분치 않았고, 시설 운영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도 많았지요. 작가 또한 성장하면서 어쩔 수 없이 집을 벗어나 여러 시설에 머물다 성인이 되고 결국은 홀로 살게 되는데요. 이 과정을 작가는 담담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우리 사회의 편견이라든가 사각지대 등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습니다. 재미있게 쓰여졌지만 결코 쉽게 읽을 수는 없었고요. 내가 당연한 권리로 누리고 있는 모든 것과 두 손에 쥐어진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가질 수 없는, 너무나 갖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하니 한 인간으로서 숙연해지더라고요. 그러한 맥락에서 앞서 말씀드렸던 추천사가 깊이 와닿았습니다.
5. 음, ‘내가 당연한 권리로 누리고 있는 모든 것과 두 손에 쥐어진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가질 수 없는, 너무나 갖고 싶은 것’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한 사람으로서 한 번쯤은 읽어보고 생각해봐야 할 책이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가 아닐까 합니다.
책의 끝부분에는 제주를 여행하는 작가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요. 보행 또는 일상생활 동작 등에 제약을 받는 뇌병변 장애를 지닌 작가가 제주 바다에서 수영에 도전합니다. 그리고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바닷속에 퐁당 빠지는 그 기분이 너무나 좋다. 처음에는 좋으면서도 무서웠다. 스스로 몸을 돌릴 수 없으니까. 한두 시간 배우고 나니 용기가 생겼고, 함께하는 활동지원사와 지인들을 믿었다. 긴장을 조금씩 내려놓자 어느새 나 혼자 바다에서 뜰 수 있게 됐다. 나 혼자 바다에 떠있다니!”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떠 있는 행동 하나에도 이렇게 큰 감동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저의 행동 하나하나가 주변 사람 하나하나가 다시 보였는데요. 노약자분들이 잘 활용하고 계신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들은 리프트를 이용하던 장애인들이 사고를 당하고, 이에 오랜 시간 항의해온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제주 지역을 여행하는 작가를 통해서 제주 지역의 장애인 이용시설이 보완되고 있고요. 그러한 의미에서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우리 사회를 보다 살기 좋게 만들고 있구나, 깨닫게 되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