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by 정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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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오늘 소개할 책은 역사의 상흔과 가족의 사랑을 엮어낸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입니다. 소설은 ‘전직 빨치산’의 죽음 이후 장례식장에서의 3일을 다룹니다. 이야기는 전직 빨치산 딸의 시점에서 펼쳐지고요. 장례식장을 찾아온 방문객과 아버지를 둘러싼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해방 이후 70년 현대사의 질곡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이야기의 스케일은 웅장하지만 이백오십여 쪽에 걸쳐 웃기고도 슬픈 에피소드가 가득 담겨 있어 단숨에 읽게 되는 소설입니다.


2. 해방 이후 70년의 현대사를 이백오십여 쪽에 담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웃기고도 슬프게 그려냈다니. 작가의 필력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전직 빨치산의 죽음 이후 딸의 시점에서 그려내는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가장 궁금한데요.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지는 빨치산과 그 딸에 관한 소개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지리산과 백운산을 카빈 소총을 들고 누빈 빨치산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싸웠지만 처절하게 패배했고요. 동지들은 하나둘 죽고, 아버지는 위장 자수로 조직을 재건하려 하지만 그마저 실패했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자본주의가 주를 이루는 한국에서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았습니다.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생판 초면인 이들의 어려움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딸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조금 우스꽝스럽게 생각합니다. 시골 출신이지만 농사를 지을 줄 모르는 아버지가 <새농민>이라는 잡지를 보며 그대로 농사를 짓자, 그의 아내와 딸은 그것을 문자농사라고 놀리지요. 그리고 참을성 있게 농사를 짓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보탭니다. “아버지에게 노동은 혁명보다 고통스러웠다. 얼어 죽고 굶어 죽고 총 맞아 죽는다는 전직 빨치산이 고추밭 김매는 시간 두 시간을 참지 못해 쪼르르 달려와 맥주컵으로 소주를 원샷 할 때마다 나는 내심 비웃으며 생각했다. 혁명가와 인내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3. 지리산과 백운산을 카빈 소총을 들고 누비며 평등한 세상을 위해 싸운 전직 빨치산 아버지가 <새농민>이라는 잡지를 보며 농사를 짓고, 고추밭 김매는 두 시간을 참지 못해 쪼르르 달려가 맥주컵으로 소주를 마시는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나는데요. 이런 아버지가 죽고 난 후 장례식장에서는 3일간 어떤 일이 펼쳐진 것인지 궁금합니다.

소설은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라는 문단으로 시작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평소 아버지는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생판 초면인 이들의 어려움도 무시하지 않았는데요. 남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아버지에게 지청구라도 놓으려 하면 아버지는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냐”며 딸의 입을 막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 찾아온 이들은 동료 빨치산부터 평생의 원수, 아버지와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지만 친구가 된 사람, 아버지를 담배 친구라고 부르는 열일곱 소녀까지 각양각색의 사연을 늘어놓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3일 동안 조문객을 맞으며 딸은 생각하지요.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4. 동료 빨치산, 평생의 원수, 아버지와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지만 친구가 된 사람, 아버지를 담배 친구라고 부르는 열일곱 소녀.... 아버지의 '오죽하면'에 참 많은 사람이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았던 모양이네요. 에세이스트님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찾았던 수많은 인물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으셨을까요?

모든 등장인물이 살아 있는 듯 생생하게 이야기를 펼쳐내어, 해방 이후 70년이라는 시대를 한 줄로 꿸 수 있었는데요. 그중에서도 저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자신의 형과 함께 셋이 어울려 놀던 이야기를 하는 할아버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화가 잔뜩 난 채로 장례식장에 찾아와 깽판이라도 놓을 듯 행동하지요. 속내를 알고 보니 할아버지의 형은 젊은 시절 죽었고, 주인공인 아버지만 살아남은 것이 못내 서운하고 안타까워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조문객을 받는 딸에게 사진 한 장을 건네고 떠나지요. 딸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진 속에는 십대 아이 셋이 해맑게 웃고 있었는데요. 딸이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고문을 당해 사시가 되기 전의 아버지임이 분명한 소년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세월이 야속하고, 역사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어 한참을 머물며 읽고 또 읽었습니다.


5. 말씀을 듣다 보니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 어릴 때 함께 어울려 자라던 친구들의 삶이 의도치 않게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거라고 짐작하게 되네요. 딸은 아버지를 유쾌하게 그려낸 듯하지만, 실제 아버지의 삶은 녹록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네, 32년 전 정지아 작가는 『빨치산의 딸』이라는 소설을 출간했는데요. 실제 작가의 아버지가 빨치산 경험이 있던 분이라 자전적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헌데 이 책이 출간될 당시 판매금지, 기소 등의 사건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32년이 흘러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간하게 되었고요. 이렇듯 책의 출판을 둘러싼 에피소드를 떠올려보면 우리 사회에서 빨치산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요. 이 소설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생각하던 딸이 진짜 아버지를 만나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기도 합니다. 소설에 나오는 다음 문장이 이 소설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데요.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와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6.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4년 전에 출간되었지만, 아직도 인기가 있는 소설입니다. 그 정도면 스테디셀러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하는데요. 오늘 에세이스트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굴곡진 현대사를 블랙코미디로 그려내 더욱 재미있는 소설이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한국의 70년 현대사와 함께 웃음과 눈물, 환희와 절망이 버무려져 깊고 고유한 맛을 내는 소설입니다. 그 와중에 인상적인 것은 아버지가 모든 사람을 미움이 아닌 사랑으로 일관되게 대하는 모습이었는데요. 그러한 행동의 바탕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격동하는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이 했기 때문에 그 울림이 더 크지 않을까 하는데요. 인생에서 고작 4, 5년을 빨치산으로 살았을 뿐인데, 그 이름이 평생 아버지를 따라다니다가 아버지는 죽어서야 빨치산이라는 족쇄로부터 해방이 됩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도 『아버지의 해방일지』인 듯한데요. 이번 주말 비가 많이 온다고 하는데, 이백오십 쪽이라는 짧은 분량에 역사의 상흔과 가족의 사랑을 블랙코미디로 엮어낸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며 빨치산이었던 한 인간이 전하는 큰 사랑과 감동을 느껴보시는 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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