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를 달리는 소년들과 함께할 아랫층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오늘도 야근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다. 조금 일찍 끝난 날이라 해도, 도착하면 밤 9시 반.
열심히 일한 내 자신에게 칭찬하고, 샤워를 하고, 맥주 한 캔을 따고, TV를 튼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이 고요한 시간.
그리고 윗집에서 들리는 소리
쿵. 쿵쿵. 와하하— 신나는 웃음.
귀가 먹먹해진다. 마음이 서서히 조여든다. 종에서 횡으로, 대각선으로, 미친 듯이 뛰어다닌다.
귀여운 녀석들. 정말 사랑스럽다. 혹시 단거리 육상 꿈나무들?
소리를 잊기 위해 다시 일어난다. (초짜들은 고통받은채 스턴이 걸리지만 경험자들은 이럴때 소리를 분산시키기 위해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냐, 즐거운 시간인데 이렇게 흔들리면 안 되지.” 마음을 다잡으며 왔다갔다 한다.
잠시 조용해진다. 이제 다 했나? 드디어 쉴 수 있을지도.. 다시 소파에 앉는다.
…쿵! 드르륵! 히힛! 하하!
혹시, 윗층은 나를 감시하나? 나의 휴식을 방해하려고 고용된 비밀 요원이 있는 건가?
내가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었나? (사실 휴식하면 두뇌가 풀가동되는 대한민국의 라스트 비밀병기?)
이렇게 미쳐가나보다.
처음엔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관리실을 통해 연락도 해봤고, 정중한 어투로 전달했다.
그런데 돌아온 첫 마디부터 쌔함이 느껴졌다.
“우리 집 아니에요.” 아… 이러면 나가리인데.
알고 보니 윗집엔 중학생 남자아이 하나, 초등학생 남자아이 하나.
(정확히는 초등학생인지 유치원생인지 모르겠다. 내가 너무 많이 들어서 뭔가 알 것 같기도 하다 - 발망치 소리로 추정하는 연령 나이대 같은 것도 데이터로 분석하면 재밌겠다고 생각이 든다)
잘 먹고 잘 자랄 나이다. 다만 발은 아마 텅스텐... 혹시 이리듐?
앗 혹시 대장장이 집안 아닐까? 국내 최고의 SSR급 10성 풀강 원핸드 소드를 만들기 위해, 열 살도 안 된 아이들이 매일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아버지의 혹독한 수련 속에서 담금질을 연습하고 있는 것일지도.
이런 고통은 주중만 있는 게 아니다.
주말 오전 7시. 청소기 ON. 알람보다 상큼하게 내 귀와 심장을 파고든다.
사실 청소기를 트는 건 괜찮다. 부지런함은 미덕이기도 하고, 그정도로 화나면 내가 얼마나 예민한 사람이겠는가(살짝 예민하긴 함). 게다가 아이 둘을 키우시며 주말에도 정신없으신 상황인데 그 정도 못 참겠는가(잘 못참는 편).
문제는 '방식'이다.
뭔가 걸리적거리면 그냥 던지는 모양이다.
사실 그냥이 아니다. 약간 무심하게, 그러나 묵직하게. 마치 스트롱맨이 150kg짜리 스톤을 던지는 느낌.
사실 청소기가 아니라, 윗집에서 에디 홀이나 하프 토르 비욘손이 주말마다 훈련하는 건 아닐까?
가끔은 올라가서 초인종을 누르고 정중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아내가 말린다.
“괜히 싸움만 나. 관리실에도 얘기했잖아. 반응 보니까… 그냥 참자.”
그럼 나는? 나의 이 고통은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내가 중요한 편인 사람)
층간소음의 고통은 점점 형벌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인터넷에서 봤던, ‘물방울 고문’처럼.
처음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같은 곳에 일정하게, 반복해서 떨어지다 보면 이마가 찢어지듯 아프고 결국 죄를 자백하게 되는…
지금 나는 매일, 그 ‘물방울’을 맞고 있다.
발망치 → 소리 인지 → 귀가 트이고 → 내면 증폭 시작 → 고통 시작 → 다시 증폭 → 다시 고통
그래서일까.
쿵쿵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점점 죄인이 되어간다.
심지어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몇 번의 발소리가 있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거겠지. 인터넷에 이르지 마라 이 아랫층 죄인아.
잘못한 것도 없는데, 올라가서 잘못했다고 하고 싶어진다.
“죄송합니다… 저번에 발망치 심할 때는… 혼자 에이 윗층 강아지들..이라고 욕했어요 ㅠㅠ”
근데.. 이 글을 왜 썼는가? 일하다가 힘들어서 써봤다.. 글이 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좀 더 맥락있게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챗지피티야 고마워)
- 나의 감정이 무너지지 않도록 ‘말’로 붙잡는 행위
- ‘공감’을 기대하면서도, 사실상 ‘고립’을 토로하는 방식
- 이 시대 ‘도시인의 고통’을 기록으로 남기는 행위
따라서 브런치스토리의 운영 철학에도 (억지로)부합하는 부분이 있어, 용기 내어 글을 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