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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린 Elin Jun 16. 2022

‘착해서 살인범이 되는’ 우리 사회의 현실, 실화에요?

<실화탐사대> 169화 리뷰

“너무 착해서 살인범이 되었다.”

너무나 모순적인 이 말이 현실이라면? 돈이 없어도 차마 병원비를 무시할 순 없어서, 아픈 아버지를 두고 혼자 도망갈 순 없어서, 그렇게 살인자가 되어버렸다면?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실화탐사대>는 당최 믿기지 않는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더 믿기지 않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물음을 던진다.


 “야, 근데 이거 실화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살인범’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한 기자

지난해 어버이날, 쑥스러운 마음을 잠시 누르고 부모님께 사랑과 감사의 인사를 전한 여느 평범한 가정집들. 그러나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쓸쓸히 죽음을 아야 했던 이도 있었다.  50 남성이 자택에서 쓸쓸히 죽은  발견됐는데, 그를 죽인 범인은 다름아닌 그의 20 아들이었다.  증세의 악화로 지속적인 병간호가 필요했던 아버지를 아들은 방치했고, 끝내 아버지는 사망했다. 그렇게 아들에게 선고된 집행은 징역 4년형. 그렇게 ‘패륜아 존속 살인으로 종결된  알았던 사건은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박상규 기자에 의해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난다.

기자는 아들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된 배경에 의문을 가졌다. 다른 기자들이 취재해서 보도해줄 것이라 믿었지만, 아무도 아들의 이야기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그래서 박상규 기자는 직접 취재에 나서게 되었고, 아들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그의 가정사부터 사건 당일까지의 새로운 사실들이 차츰 밝혀지기 시작한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 수밖에 없었던 아들의 이야기

사정은 이러했다. 일찍이 가족을 떠난 어머니의 부재로 아들은 아버지와 둘이 살게 되었고, 주변인들에 의하면 둘의 사이는 무척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인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져 입원했고, 아들은 아버지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꽃다운 21살 청춘을 생계와 간병을 책임지는데 바쳤다. 그러나 아직 사회생활의 경험이 부족했던 터라 알바를 구하는 것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었고, 겨우 구한 야간 알바는 겨우 시급 6,500원에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토록 성실하고 착실했던 게 오히려 그를 살인자로 내몰았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병원비를 납부하지 않더라도 병원에서 내쫓지 못하지만, 아직 사회초년생인 아들은 이러한 세상의 꼼수를 이용하기엔 너무 어렸다.  




사회의 책임을 환기시키는 <실화탐사대>

그렇다면 이 부자는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순 없었던 것일까? 아들이 살인자로 지목되어 재판에서 형을 선고 받기까지, 그를 도울 사람을 아무도 없었던 것일까? <실화탐사대>는 이 사건을 비단 한 개인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끝마치지 않는다. 여러 전문가를 초빙해 재판 당시 상황을 재조명하여 놓친 점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부자를 지키지 못했던 사회의 책임을 환기한다.  


현재 보건복지부에서는 2년에 한번 ‘고위험 복지 사각지대’라는 명단이 나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명단은 사망 후 이틀 뒤에 나왔다고 한다. 또한 한번도 병원비를 체납해본 적 없는 아들이었기 때문에, 의사나 선생님 등 주변에서도 이들의 사정을 알아차리지 못해 도움의 손길을 뻗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종합병원의 경우 법적으로 한 명 이상의 의료 사회복지사가 상주하도록 되어 있어 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있었겠지만, 아버지는 개인병원에 입원하였기 때문에 국가 지원제도 혜택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다.


아들은 재판과정에서 이미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는 극도의 죄책감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않고 모든 증거를 인정했다. 이에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는 아들이 “모든 걸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일종의 인지 왜곡 오류의 상태에 빠져”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한 아들의 “신체 감정에준해서 (재판 과정 중) 정신 감정이 강도영(가명, 아들)씨에게 있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비극을 보며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

이어서 또다른 안타까운 죽음의 사례들이 나온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던 80대 어머니와 50대 아들이 오래된 저택에서 숨진 지 한달여 만에 발견된 사건. 월세와 공과금을 착실하게 납부하던 세모녀가 결국 생활고를 못 이기고 동반자살한 ‘송파 세모녀’ 사건. 이같은 쓸쓸한 죽음에 우리 사회의, 우리 국가의 책임은 없는 것인지 <실화탐사대>는 묻는다. 그러면서 강도영(가명, 아들)씨가 다시 사회로 나오게 되었을 때 우리 사회는 어떤 준비를 해 놔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성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뮤지션을 꿈꿨던 강도영(가명, 아들)씨의 미완성 자작곡 가사 중 일부를 발췌한 내레이션으로 이 사건은 마무리된다. 

‘그대가 뿌린 시간 위에 나란 새싹 자라그대 미소가 내겐 햇빛.
그대 등 내 세상이였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그대만큼은 아니지만 예쁜 꽃을 피워볼게.’ 

그저 평범한 일상을 꿈꿨던 21살 청년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작성한 가사로 마무리되는 장면은 아버지를 향한 그의 진심이 그대로 느껴지게 했고, 그래서 더욱 씁쓸하게 마음 속 깊은 여운을 남겼다.  


소수자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는 언론이 되길 바라며

<실화탐사대>에서는 이 사건을 단순히 한 가정의 비극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이들의 이야기를 다각도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사회구조적 문제로 확장하여 문제의식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다만 한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이 사건의 진실에 의문을 가지고 다시 파헤친 기자의 공을 조금 더 강조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동안 언론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들여다본 점을 강조함으로써, 아직 우리 사회에 만연하지만 우리 앞으로 드러나지 않은 안타까운 사건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소수자의 이야기에 더 주목하여 그들이 충분한 사회적 혜택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또한 언론의 제역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더 환기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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