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씽크 5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린 Elin Jan 06. 2023

방송계를 점령한 ‘붉은 악마’가 있다?

어느 날보다도 퇴근길 발걸음을 재촉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편의점에 들러 맥주 두 캔을 손에 꼭 쥔다.

빠질 수 없는 치킨을 신중하게 고르고 주문을 한다.

대기 시간이 5시간이다.

아뿔싸, 미리 주문해뒀어야 하는데.

아쉬운 대로 집 근처 닭강정 집에 들러 포장해온다.

집에 고이 접어 넣어둔 빨간색 옷을 집어 들어 입는다.

떨리는 마음으로 TV를 켠다.


오늘은 월드컵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다.





월드컵 시즌이 돌아왔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 단락에서 크게 공감했을 것이다. 

월드컵이 시작되면 너도나도 열을 올리며 “대~한민국”을 외친다. 

이 순간만큼은 국민 모두가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우리나라 국가대표단을 응원하고,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다.




지상파 3사의 ‘중계대첩’ 특명 : MZ세대를 잡아라

선수단만큼이나 이번 월드컵에 만반의 준비를 다한 곳이 있다. 바로 방송업계다. 월드컵 개막 전부터 이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OTT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실시간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지상파 3사 시청률 도합 40%대를 자랑하는 콘텐츠가 있다. 바로, ‘월드컵 중계방송’이다. 물론 시청률 합이 70%를 넘었던 2002 한일월드컵 때보다 확연히 줄어든 수치이다. 하지만 미디어 시청이 보다 개인화된 시대에서 월드컵은 여전히 대중을 동시간에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핵심 콘텐츠로 통한다..



미디어 채널과 콘텐츠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상황에서, 월드컵 중계권을 보유한 지상파 3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차별화된 콘텐츠 제작의 기회를 갖는다. 또한 3사의 ‘중계대첩’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효과적으로 시청자에게 방송사를 각인 시킬 수 있는 기회다. 특히나 ‘스포츠’라는 소재의 젊고 열정적인 특징을 콘텐츠에 잘 녹인다면 그 특징 자체가 방송사의 이미지로 긍정적으로 전이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상파 3사는 저마다의 치밀한 전략을 세웠다. 특히 올해는 MZ세대의 시청자를 확실히 공략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변화가 느껴지는 곳은 KBS다. 공영방송의 보수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KBS는 올해 약 6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축구 전문 유튜브 채널 ‘이스타’와 콜라보를 진행했다. 


SBS는 아예 Z세대 인물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이다. 해설 경험이 전무한 수원 FC의 이승우 선수를 영입하는 과감한 행보를 택한 것이다. 이승우는 우크라이나전에서 재치 있고 위트 있는 해설로 중계 분위기에 젊은 활력을 더하여 성공적인 해설위원 데뷔전을 치렀다.


 MBC 역시 시류를 놓치지 않았다. MBC는 박문성 해설위원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달수네 라이브’와 협업하여, 개막전에 MBC 스포츠국 유튜브 채널 ‘MBC 스포츠탐험대’에서 월드컵을 심도 있게 분석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했다.



축구 예능의 황금기를 맞이하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과 유튜브 콘텐츠가 황금기를 맞았다. 프로그램은 크게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는 콘텐츠, 중계석의 비하인드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 그리고 기존 예능의 월드컵 특집으로 나눌 수 있다. 



월드컵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담은 프로그램의 시초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 코너였던 <김경규가 간다>라고 할 수 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홀로 현지로 날아간 이경규는 이어서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06년 독일월드컵의 현장 분위기를 생생하게 담아내, 월드컵 예능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혔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맞이해 유튜브 웹예능 <RE경규가 간다>로 재탄생하면서, 이경규와 유튜버 오킹이 함께 축구의 현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벌써 시즌3에 도입한 SBS <골 떄리는 그녀들>에서는 월드컵 개막 전에 직접 포르투갈을 방문해 그곳의 축구 문화를 담기도 했다. 또, 카타르 현지로 날아가 열띤 현장의 응원분위기를 생생하게 담아낼 예정이다.



JTBC <뭉쳐야 찬다> 멤버들이 MBC에서 뭉쳤다. <안정환의 히든 카타르>는 캐스터 김성주와 해설위원 안정환 그리고 김용만과 정현돈이 합류해 카타르 현지 중계석의 숨겨진 이야기를 전한다. 현장의 열기와 긴장감이 생생하게 전할 계획이다. 또한, 대표팀의 경기 영상을 통해 상대팀 전력을 평가하고 관전 포인트를 제시할 계획이라고 밝혀 기대감을 한껏 불러일으켰다.



통상적으로 월드컵 경기 시간과 겹치는 방송 프로그램은 결방을 하게 된다. 그러나 운 좋게 방송시간이 겹치지 않는 프로그램 역시 월드컵을 소재로 한 특집을 기획하여 시류에 편승한다. MBC <놀면뭐하니>에서는 지난 11/24일의 우루과이전을 멤버들이 함께 시청하는 모습을 무려 하루만에 촬영 및 편집하여 방송했다. 단순히 멤버들의 경기 리액션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유재석의 ‘유봉두 선생’ 부캐와 상황극을 활용하여 ‘뻔하지 않음’을 추구했다. 또한 패스를 주고받는 각 선수들의 이름을 알려주는 친절한 자막 설명이나, 우리나라의 거미줄 수비를 그래픽으로 표현한 세심한 편집 센스가 ‘축알못(축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콘셉트의 극사실주의를 위해 초반에 아날로그 TV를 도입했지만, 저화질로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아 멤버들이 경기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하자 중간에 선명한 최신형 TV로 바꾼 것은 빠르고 현명한 판단이었다. 덕분에 본격 응원모드에 돌입하여 시청자와 동기화된 멤버들의 생생한 리액션까지 보는 재미가 극대화되었다.



'시청자 pick' 중계방송이 되기 위해선

실시간으로 경기 시청자들의 오디오를 사로잡기 위해선 중계를 얼마나 ‘맛깔 나면서’ 깔끔하고 예리하게 진행하느냐가 관건이다. 우크라이나전 때 MBC의 중계방송 시청률이 동시간대 1위인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MBC의 중계진에 만족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안정환 해설위원은 예리한 경기분석에 더하여 가끔은 시청자의 의견을 속 시원하게 대변해주는 사이다 발언과 위트 있는 멘트로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켰다. MBC는 이를 놓치지 않고 유튜브 채널 ‘스포츠탐험대’에서 안정환의 주요 해설장면만 모아 놓은 <안정환의 말말말>이라는 코너를 따로 만들었다. 해당 코너의 영상들은 매우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단순 경기 하이라이트 장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해설위원의 리액션과 예리한 해설도 함께 볼 수 있어 더욱 몰입감을 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안정환의 말말말>을 ‘숏츠’로도 제작하면 좋을 것 같다. 시기상 월드컵은 알고리즘을 타기 가장 좋은 소재이고, 축구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빠르게 부담 없이 ‘숏츠’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월드컵은 남녀노소를 모두 묶을 수 있는 강력한 콘텐츠였다. 때문에 방송업계에서는 월드컵을 소재로 한 차별화된 콘텐츠 제작을 위해 힘써왔다. 브라질 월드컵을 테마로 기획했던 <무한도전> 응원단 시리즈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도 있었다. 지금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어서 세계인의 축제를 더욱 마음 편히 즐길 수 있기를 바라본다. 


카타르 월드컵은 유례없는 ‘겨울’ 월드컵이다. 카타르의 지리학적 특성을 고려하여 50도가 넘는 여름을 피해 비교적 온화한 날씨인 겨울에 개최한 것이다. 연말이 되어 가슴 아픈 참사가 잇따라 보도되는 현 시점에서, 월드컵은 어쩌면 우리 국민이 잠시 고통과 절망감을 내려놓고 한번 더 희망을 꿈꿔보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더하여, 득점으로 이어지진 못했어도 과정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투지에 칭찬하고 박수 쳐줄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함께하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국내 최초 FIFA가 허락한 월드컵 예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